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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Jan 08. 2021

덕분에, 아주 잠깐. 코로나를 잊었다.

눈이 내렸다.

저녁 준비를 하다 주방창을 바라보는데 쉴 새 없이 내리고 또 쌓여가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눈이었나.


"엄마 겨울인데 왜 눈이 안 오는 거예요? 참 이상하다 옛날에 나 썰매 타고 그랬잖아?"


"맞아 그랬었어. 그게 아직 기억나?"


"응. 어린이집 갈 때 엄마가 썰매 태워줘서 썰매 타고 갔잖아."


"우리 이번 겨울에도 눈 오면 꼭 썰매타자"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어요."


온이와 유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이 흩날리다 못해 퍼붓고 있었다.

저녁 준비를 하다 말고 거실 커튼 앞에 서서 마치 대단한 선물을 준비한 듯 말했다.


"애들아. 있잖아. 엄마가 이 커튼을 열면 엄청난 게 있다? 너무 놀라지 마?"


이제껏 베란다를 오가며 놀던 아이들은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면서도 선뜻 움직이지 않고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뭐예요?"


"와보면 알게 될 거야. 엄마가 이거 이제 연다?"


커튼을 힘차게 걷고 베란다로 나가 창을 바라보면서,

"얘들아 봐봐 창밖에 한 번 봐봐"라고 말하자 발 시리다고 까치발을 하던 온이와 유는 눈이 휘둥그레 지더니 발을 동동 구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엄마 나가요 나가요."


이미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저녁밥은 먹지 않고 당장 나가겠다는 아이들을 식탁에 앉혔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허둥지둥 먹더니 재빠르게 옷도 갈아있었다. 근래에 보기 드문 기동력이었다.


출장을 다녀온 아빠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그 마음 알 리 없는 온이와 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와 같이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우리 가족 다 같이 나가서 눈싸움해요? 네?"


"아빠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까?"


"같이 가야지. 우린 가족이잖아."


가족이니까 같이 해야 한다는 온이와 유의 말에 어렵게 발을 떼고 나가게 된다.

아이들의 말은 피곤한 아빠를 일으킬 정도로 이렇게 힘이 센 거였구나..


그동안 집안에 들 있느라 보이지 않던 꼬마들이 죄다 나와있었다.

온이와 유는 뛰쳐나가자마자 갑자기 눈밭에 구르기 시작했다. 데굴데굴 구르고 눈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얼마 만에 보는 풍경인지 모르겠다.

내일 출근 걱정하는 아빠와 이 눈을 다 언제 치울까 걱정하시는 경비아저씨의 모습 뒤로 행복해 죽겠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을 뭉치고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세상에 뿌려진 눈을 죄다 담을 기세로 썰매 가득 모았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근육이 찢어져라 썰매를 끌었다.

내일은 정말 근육통에 몸살을 앓겠구나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온이와 유를 태우고 각자의 루돌프가 되었고, 더 빨리 달리란 말에 참 열심히도 달렸다.

썰매를 잡아 끄는 손가락이 아프고, 어깨가 욱신 거렸다. 숨을 몰아쉬며 뛰었더니 마스크 위로 나온 입김에 속눈썹이 얼었다.


힘들다고 멈췄더니 한기가 들어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온이와 유는 그저 행복했다.

꼬꼬마 때랑 같은 모습으로 썰매 가득 눈을 쓸어 담고 뒹구는 모습을 보니 그 사이 참 많이 컸단 생각이 들었다.



온이와 유가 기억하는 썰매 탔다는 그때.

그러니까. 세 살 어린이집 다닐 때 이렇게 눈이 많이 왔던 적이 있었다.

온이와 유는 그때도 오늘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똥개처럼 신이 났었다.

한 걸음 걷다 눈 속에 누워버리고, 또 한 걸음 걷다 쌓여있는 눈을 다 모으느라 주저앉아버렸다. 덕분에 어린이집은 점심 먹을 때쯤 도착하고 말았었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운전하는 게 겁이 났고, 유모차도 소용없을 것 같은 길바닥 사정을 보고 눈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둘을 한 썰매에 태우고 썰매를 끌었다. 그때도 그다음 해에도.

힘에 부쳐서 엄마 등에 땀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더 세게! 더 빨리요!"를 외치던 온이와 유에게 엄마는 눈이 내리면 항상 루돌프가 되었었다.

등원하러 가는 길이 먼 것도 아니었는데, 등원을 하러 가면서 노느라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때는 늦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계절을 느끼며 자라왔고,

전염병을 마주하며 자라 가고 있다.

볼과 귀는 빨갛게, 속눈썹은 하얗게 얼어있던 너희의 오늘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주 잠깐. 코로나를 잊을 만큼 계절을 온전히 느낀 오늘이 완전한 일상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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