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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Jan 13. 2021

한강이 얼었다. 그러니까 가야겠다.

한강이 얼었다.

그러니까 한강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살갗은 바람이 닿는 데마다 찢길 것처럼 아픈데 꼭 그래야 할까'

된장을 꼭 찍어봐야 맛을 아는 것도 아닌데, 온이와 유는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베란다만 나가도 까치발을 하고 동동거리는 녀석들이 이럴 때는 추진력이 꽤 좋다.

한 술 더 뜬 신랑은 썰매까지 챙겼다.


한강은 어둠 속에 어슴푸레 잠기는데, 다리마다 조명이 켜지고 꽁꽁 언 얼음은 훌륭한 반사판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여보 나 한강 이렇게 꽁꽁 언 거 와서 보는 건 처음이야."


"나도"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면 구박을 견디지 못했을 텐데, 현명한 대답을 내놓더니 온이와 유에게 거듭 말했다.


"너희 덕분에 아빠랑 엄마도 한강이 이렇게 꽁꽁 얼어 있는 거 처음 봤어."


"우리도 처음 봤어요."


일곱 살 너희와 사십 줄인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하는 게 많아서 좋다. 그 김에 썰매도 타보기로 했다.

편의점 아래 길과 길 사이, 비탈진 경사면마다 시원하게 타고 내려온 듯 매끄럽게 닦여 있었다. (세상은 넓고 부지런한 사람도 많고 앞선 사람도 많다.)


"여기 좋겠다. 여기 눈도 적당하고 경사도 이 정도면 재밌겠는데?"


온이와 유는 아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썰매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눈이 쓸려간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뒹굴어 살갗이 까지지 않을까 썰매가 멈출 때까지 조마조마한 엄마와 달리 온이와 유는 웃음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썰매는 거침없이 내려가고 한 번의 스릴을 위해 썰매를 끌고 올라오는 길에 몇 번을 넘어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없으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또 안달라지 않아서 좋았다.


눈을 처음 보던 때부터 그렇게 바닥에 드러눕더니 형아가 되었어도 여전히 눈밭에 드러눕고 뒹굴기를 좋아하는 온이와 유는 눈썰매도 당연히 좋지만 눈밭에서 구르는 게 제일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썰매 타던 곳은 흙과 눈이 뭉쳐져 딱딱했는데 가로등 밑이나 아무도 밟지 않은 곳은 여전히 눈이 부드러웠다.

올해는 스키복도 안 사서, 입고 간 바지가 축축이 젖어가고 있는데도 철퍼덕 주저앉아 썰매 가득 눈을 담았고 예쁘고 깨끗한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뭉쳐 보아도 눈은 뭉쳐지지 않고 부서져버렸다. 결국 눈사람은 포기하고 어렵게 모은 그 눈으로 눈싸움을 하자고 했다


그리곤 유가 씩 웃으며,

"엄마 엄마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멈추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대충 봐도 무얼 할지 알 것 같은 유의 표정을 보니 나도 장난이 치고 싶어 졌다.

"왜~? 싫은데?"


"아니~ 가만히 있어보면 알아요."


"알았어"


유는 썰매 가득 실은 눈을 번쩍 들고 와 나에게 쏟아부으려 했지만 쉽게 들어지지 않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어.. 이게 왜 이렇게 무겁지, 가벼웠는데.." 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이 꽤 귀엽고, 장난이 치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유가 힘겹게 모은 눈이 담긴 썰매를 번쩍 들어 보이며  "엄마 힘 진짜 세지?" 하며 유를 보며 다가갔다.


"엄마 이제 주세요. 엄마~"


"엄마가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우리 눈싸움할 거지?"


"네"


"좋아 그럼 시작해..." 하고는 그 눈을 들고 유에게 다가갔고,

눈치 빠른 유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요 녀석 컸다고 제법 걸음이 빨랐다. 나도 져주지 않고 잽싸게 다가가 눈을 쏟아부었다.

예상은 했지만 엄마가 진짜로 할 줄은 몰랐던 듯 억울한 울음을 토했다.


"엄마 미워. 엄마가 이렇게 하는 게 어딨어!?"


얼마나 억울하게 울기 시작하는지..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 눈싸움한다고 해서 엄마도 장난쳤는데..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엄마가 너무 진지했지.. 미안해"


"엄마 미워. 내가 얼마나 힘들게 모은 눈인데.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딨어."


유는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게 우는지 한강이 눈물바다가 될 것만 같았다.

이유를 알리 없는 아빠는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고 한 걸음에 달려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고,

추운날 눈물 콧물 쏙 빼는 유를 달래느라 애를 쓰고야 말았다.


재밌자고 한 놀이에 엄마가 너무 진지해서,

즐겁자고 간 한강을 짜디짠 눈물바다로 만들 뻔했다.

이래서 장난은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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