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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Jan 22. 2021

요녀석들 많이 컸네.

'엄마'

'가정주부'

여전히 낯선 타이틀.


바깥일.

사회생활.

만만치 않게 낯설어진 타이틀이다.


일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글 쓰는 일에 감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그 감이 참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문학이 되는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되는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닌데.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더 이상 작가가 아니니까 나는 경단녀일 뿐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애들 보면서"


"일은?"


"나? 안 하지. 경단녀잖아."


"아니 작가가 경단녀가 어딨어!"


"여기"


자칭 경단녀. 누가 봐도 경단녀. 사회와 단절된 육아하는 아줌마.

생전 처음 살림이라는 걸 시작해보니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때그때 겨우 애들 밥 챙기고 하루를 간신히 넘기다 보니 그게 벌써 몇 해가 지났다.


'나'라는 사람이 했던 일과 '나'라는 사람이 지나온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고, 누구누구의 엄마라고 불리는 게 익숙해지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당연히 점점 사회와는 멀어지고.

그 사이 나는 읽은 책이라고는 육아서와 에세이, 뉴스라고는 가십거리에 달린 댓글들..

이러니 당연히 감이 떨어지고 글발은 막히고,  뭔가 해볼까 하는 생각마저 수그러들었다.

발맞추기 위해 지내던 사회 속에서 한 발짝 빼고 보니 나는 그냥 아줌마였고, 요지경이라던 세상에서 떨궈진 기분은 덤이었다.


그런 내게 기적처럼 알바가 들어왔다.

하루 일하는 것 치고 페이가 괜찮았고, 현장감도 느끼고 싶었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또 기적 같기도 했다. 마치 처음 일을 했을 때처럼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

'설레고, 들뜨고, 잘할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했나?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할까?'

고작 하룻 일을 가지고 고민하다가 나는 마치 끌리듯 나섰다.


오랜만에 대본을 고치고, 몇 번의 리허설과 두 시간 남짓 방송을 하면서 희열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내가 했던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고 가슴 뛰는 일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사회생활의 틈바구니에 잠깐 껴있었던 그 날의 하루는 마치 하룻밤의 꿈처럼, 마치 어제 같았던. 그때의 내가 된 것 만 같았다. 수고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긴장했던 하루를 보내고 늦잠을 자던 이튿날 아침.

남편도 해주지 않는 뽀뽀를 두 아들이 번갈아 가며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엄마 고생했겠다."


"엄마 힘들었겠다"


나는 이미 잠에서 깨었지만 녀석들의 사랑스러운 표현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두 눈을 꼭 감고 아이들이 해주는 뽀뽀도 포옹도 온전히 다 받았다.

그리곤 내가 잠에서 깰까 나를 사뿐히 넘어 거실로 나가는 온이와 유의 뒷모습을 보는데 엄마를 찾지 않고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준비하던 내게 유가 와서 말했다.


"엄마 일하러 가면서 왜 우리한테는 말 안 하고 갔어?"


"미안. 미리 말 안 하고 가서."


"일 하러 가는 건 좋은데 다음엔 말하고 가. 알았지?"


"응"


가지 말라고 떼라도 쓸까 봐, 가지 않겠다 하고 몰래 갈 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가야겠다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재택근무 중인 아빠까지 있으니까 마음 놓고.

그런데 이렇게 아침부터 야단을 맞을 줄이야..

기분이 나쁘지 않고, 미안한 마음보다 뭔가 고맙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이 컸구나 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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