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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May 26. 2019

물고기라 말하고 가족이라 읽는다.

손톱만 한 물고기와  눈곱만 한 물고기

고작 물고기 몇 마리 집에 들였는데,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밥은 잘 먹는지, 잘 움직이는지, 볼록한 배를 보며 새끼를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습관처럼 들여다보게 된다.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나에게, 아니 우리 가족의 일상에 큰 변화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데, 온 식구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작은 어항에 고개를 처박고 물고기들의 안녕을 살피게 된다.

내가 낳은 내 새끼들 걱정에 애가 닳는데, 물고기 걱정까지 더해진 셈이다.


그 덕분에 이제 겨우 다섯 살 된 쌍둥이 아들과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물고기 먹이를 얼마큼 주었는지, 또 몇 번을 주었는지, 어떤 물고기가 잘 먹는지, 

쌍둥이 아들 온이는 꼬물이와 꾸물이, 유는 암컷과 수컷으로 네 마리의 물고기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헌데 이틀전부터 배를 보이기 시작하던 꾸물이가 완전히 배를 뒤집고 가라앉아있었다.

유는 물고기 흉내를 내며 바닥 옆으로 누우며 말했다.


“엄마 물고기가 죽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오늘은 무덤가에 가야 할 거 같아요”


그 말을 듣던 온이가 기분이 나쁜 듯, “아니야! 내 꾸물이는 반듯하게 누워서 쉬는 거야!”라고 유를 몰아세웠다.


고작 손톱만 한 물고기 한 마리만 죽은 게 아니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 같고 기분은 무겁다 못해 우울감이 밀려왔다. 이래서 생명은 함부로 키우는 게 아닌데.. 

온이가 좋아하는 생선은 그렇게 잘도 구워다 식탁에 올렸는데 어항 속에 잠든 녀석을 건져내는 건 정말이지 겁이 났다. 

결국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은 물고기를 건져 휴지로 포개듯 덮어놓고  

“얘들아 오늘 엄마랑 같이 물고기 묻어주고 와” 하며 숙제를 남기듯 출근길에 올랐다.


아침은 정말 밥 한 숟갈 더 먹이는 것도 빠듯할 만큼 시간이 없는데, 언제 묻고 언제 등원할까 싶어 마음은 조급한데 유는 물고기가 죽었으니 당연히 무덤가에 가서 물고기를 묻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1년에 겨우 추석날 한 번 갈까 말까 한 무덤가를 가자는 아들의 말에 헛웃음이 났다가 기특했다가 휴지에 쌓인 물고기를 유치원 하원 때까지 어떻게 잘 가지고 있다가 어디다 묻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리곤 아이들과 아파트 화단 나무 아래에 모종삽으로 흙을 파 구덩이를 만들고 물고기를 묻어주었다.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있어요. 물고기와 헤어져야 하거든요.


그런데 유는 자꾸만, 무덤가에 가야 한다고 그래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떼를 썼다.

엄마는 너희가 묻어주는 이 곳이 이제 무덤이 되었으니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물고기야 하늘나라에 잘 가 안녕” 인사를 끝으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걸음을 멈춘 유는 다시 물고기를 꺼내러 가야겠다고 했다.


“엄마, 생각해보니까 하늘나라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 거 같아요. 땅 속에 들어가면 하늘나라가 너무 멀어서 갈 수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물고기를 비행기를 태워줘야겠어요.”


아이만 할 수 있는 예쁜 생각에 귀여웠다가 또 나름 엄마를 설득하겠다고 애쓰고 있는 유를 보면서 어떻게 져줄까 생각했지만 엄마는 도무지 땅속에 묻어둔 걸 다시 파내서 비행기까지 태우는 건 정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유에게 남은 물고기라도 잘 지키려면 얼른 들어가서 저녁밥을 주어야 한다며 엄마 나름의 기지로 재촉했다. 결국 유는 입이 댓 발 나온 채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한 마리가 죽었던 어항에서 새끼가 열한 마리나 태어나 꿈틀대고 있었다. 엄마도 아주 어릴 때나 물고기를 키웠다가 십수 년 만에 처음인데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 신기하고 기뻤는데 온이도 유도 마찬가지였다.


침울한 표정의 유는 금세 환희 가득한 표정으로 박수까지 쳐가며 온이에게 말했다.


“축하해, 너 물고기가 아기를 낳았어 너 정말 좋겠다! 진짜 진짜 멋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단해!!”


온이는 마치 제가 새끼라도 나은 듯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뭘 이 정도 가지고!” 라며 으쓱거렸다.



손톱만 한 물고기의 죽음에 슬펐다가 눈곱만 한 물고기의 탄생을 보고 기뻤던 날 로부터  한 달 후,  우리 가족은 나흘 정도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을 준비해서 계획적으로 하기보다 급작스럽게 가다 보니 매일 먹이를 줘야 하는 물고기가 걱정이 되었다. '나흘이면 너무 긴 시간인데 죽는 건 아닐까, 누구한테라도 부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여행 간다는 생각에 짐을 꾸리면서도 그야말로 눈에 밟혀서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누구한테 부탁하기도 뭐하고 정말 밥숟갈이 몇 개 있는지까지 잘 아는 이웃이 있다면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아직 그런 이웃이 없어서 부탁할 수도 데려갈 수도 없었다. 이런 감정 때문에 반려인들이 여행 가는 게 어렵겠다는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던 부분을 어느새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흘 후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은 어항을 살피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물고기가 한 마리도 안 죽었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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