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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Mar 23. 2021

먹고 싶어서 텔레파시를 보냈다.

온이와 유는 저녁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고프다고 했다.

출출한 모양이다.

지난 1년 간 활동량에 비해 위를 늘려 놓아서인지, 아니면 키가 크려고 하는 건지.

밤마다 야식을 찾았다.

야식이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한 맛인지 엄마는 너무 잘 알아서 너희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데, 너희는 야식을 원하고 있었다.


"엄마 피자 먹고 싶어요. 엄마가 치즈피자 사 오면 안돼요?"


"엄마 나는 팥빙수도 먹고 싶어요."

뭐가 먹고 싶은지 자꾸만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러다 "엄마 우리는 집에 있고 엄마가 가서 사 오면 안돼요?"

라고 했다.


"어 안돼."


"왜요?"


"어린이만 두고 가면 안돼"


"택배 왔습니다. 하면 문에 두고 가주세요 라고 할게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문 열어 달라고 하면 지금 부모님 안 계시니까 나중에 오세요 라고 할게요. 그러니까 엄마 갔다 오세요."라고 했다.


어차피 먹을 거 1분이라도 빨리 먹이는 게 나을까, 나도 나가기 귀찮으니 우유 한 잔 마시고 자라고 할까, 하는 사이 신랑에게서 퇴근한다는 연락이 왔다.


"얘들아 그러면 우리 아빠한테 텔레파시 보낼까?"


"오! 좋아요"


"눈 꼭 감고 아빠한테 들리게 크게 말해야 돼!"


"네!"

녀석들은 양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동시에 "치즈피자! 치즈피자 치즈피자"를 외쳤다.

텔레파시는 아빠랑 통하는 게 아니라 너희 둘이 통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엄마는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충실히 아빠에게 전했다.


'여보 애들이 피자가 먹고 싶대요'


'사갈게요.'


'삐비비빅'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언제나 그렇듯 온이와 유는 우당탕탕 숨기 바빴다.

아빠가 찾을 때까지 기다리던 녀석들에게 호들갑을 떨며,

"우와 얘들아. 이게 뭐지? 우와~아빠가 뭘 사 오신 거 같은데?"


우당탕 숨었던 온이와 유는 우당탕 나오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껏 흥분된 목소리로,

"아빠! 텔레파시 받았어요?"


"우리가 텔레파시 보냈는데! 우와 진짜 피자야!"


아빠랑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생각한 너희는 먹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관자놀이를 누르고 외쳐댔다.

덕분에 아빠는 퇴근 길이 바빠졌다.

텔레파시를 보내면 아빠가 척하고 내놓으니 아빠가 얼마나 대단해 보일까.

어떤 날은 케이크가, 어떤 날은 핫도그가, 어떤 날은 과자, 아이스크림, 피자.. 매번 메뉴가 바뀌었다.


한 번은 유가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관자놀이에 손을 갖다 대더니" 아빠 케이크 먹고 싶어요. 케이크. 아빠 케이크이요."

하며 텔레파시를 보냈다.

나는 얼른 톡을 보냈다. '여보 유가 케이크 먹고 싶대.'


"온이도 텔레파시 보냈어?"


"응 마음속으로 보냈어."


"마음속으로? 뭐 먹고 싶다고 했어? 엄마도 알려줘"


"아빠가 받았을 거야"


"엄마가 온이랑 같은 게 먹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엄마도 알려주라 응? 아빠한테 두 개 사 오라고 하게"


"엄마도 텔레파시 보내면 되지. 엄마도 빨리 보내"


마음속으로 보내는 텔레파시는 지금까지 없던 거였다. 알려달라고 해도 아빠는 자기 맘을 다 알고 텔레파시도 받았을 거라고 했다.


그날 밤. 결국 일은 터졌다. 

아빠는 늦은 퇴근길에 빵 집에 케이크가 없어서 세 군데를 갔다가 허탕을 치고 겨우 조각 케이크를 사 왔다.

아쉽지만 텔레파시가 통했다는 생각에 기쁜 유는 저녁을 안 먹은 것처럼 케이크를 먹었고,

온이는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온이를 달래며 물었다.

"온아 왜 어디 아파? 부딪쳤어?"


"아빠가 내 텔레파시만 안 받았어. 내 거만 안 사 왔어."

속상한 온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러움에 숨이 넘어갔다.

맞다. 온이가 마음속으로 텔레파시로 보낸다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서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나도 집안일을 하느라 돌아서며 잊어버렸던 거였다.

온이 입장에서는 서러울 수밖에 없었다.


"온아 뭐가 먹고 싶다고 보냈어? 아빠가 회사에서 일이 너무 많아서 집중하느라 못 받았나 봐"


"양파링"


"아빠가 집중해서 일 하느라 놓쳤네. 미안해"


"아이고 우리 온이 얼마나 서운 했을까. 엄마라도 서운 할 거 같아.. 우리 온이 양파링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내일 유치원 마치고 데리러 갈 때 사갈게. 엄마가 꼭 기억하고 있다가 사줄게"


"응"


재미로 시작한 텔레파시 보내기를 온이와 유는 철떡 같이 믿어 버렸고,

쿵작만 맞으면 아이들이 이렇게 신난다는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을 짓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의심의 여지도 없이 자기네들 마음을 알아주는 최고의 아빠는 이제 엄마의 짱짱맨에서 너희들만의 짱짱맨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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