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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May 13. 2021

조용하면 일이 벌어진다.

유치원에서 꽃무지 애벌레를 받아왔다.

흙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환기도 시켜주어야 한다며 매일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뚜껑도 여닫았다.

아무리 봐도 맨 흙만 보이는 것이 애벌레가 있는지 없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온이와 유는 매일 정성을 들였다.


“어휴 애벌레 키우기 힘드네. 신경 쓸게 너무 많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양새가 귀여웠다.

마치 너희를 낳고 처음 마주 하는 것들에 고개를 저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고, 생명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기특하고 예뻤다.


사실 저 흙 속에서 손가락 만한 게 꿈틀 될 거라 생각하니 온 세포가 비쭉 서는 것만 같은데 아무렇지 않은 척 너희와 같이 애벌레 통을 바라보았다.


“이 속에 애벌레가 있다고? 우와 신기하다. 잘 키워서 성충이 되는 것까지 꼭 봤으면 좋겠다. 진짜 기대되는데?!”


“그렇죠! 얼마나 귀여울까”


귀...엽..다니 인정할 수 없지만 동조할 수밖에..


“어 그렇다.”


저녁 준비하는 동안 기척 없이 조용했다.

뭔가 벌어지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


“얘들아 뭐해?”


그러자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모종삽과 분무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엄마 아무래도 꼬물이랑 꾸물이가 집이 작은 것 같아서 답답할까 봐 옮겨줬어! 잘했지?”


“어디에 옮겼어? 옮길 데가 있었어?”


“있지! 베란다 텃밭 상자에 놓아줬지. 꿈틀꿈틀 신나서 쏙쏙 들어가.”


흐엉.. 미치고 환장할 노릇은 이럴 때 하는 말이 분명했다.

애벌레 통에 비하면 텃밭상자는 만주 벌판 급인데.. 어떻게 찾을 것이며, 찾지 못하면 성충이 돼서 막 기어 다닐 게 분명한데. 심란했다.


하루 종일 지끈거리던 두통이 가중되는 느낌이었다.


“안돼. 여기다 놓으면 너희가 관찰할 수도 없고, 언제 성충이 됐는지 알 수도 없는데.. 빨리 찾아봐”


모종삽으로 놓아두었다는 곳을 열심히 파보았는데 그 작은 애벌레는 어디 갔는지 나오지 않았다.

모종삽을 넘겨받아 흙을 살살 걷어내는데 웬 흙먼지는 이렇게 많이 나는지.. 물을 뿌려가며 걷어내는데 텃밭상자는 너무너무 깊었다.

파내고 파내고 자리를 옮겨서 또 파 보아도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파헤쳤을까. 겨우 한 마리를 찾았다.

모든 스포츠의 한일전에서나 봤을 법한 리액션이 베란다에서 펼쳐졌다.

나는 결국 해냈다! 해내고야 말았다. 드디어 이제 한 마리만 찾으면 된다는 희망이 샘솟는데,

온이는 제 손가락을 애벌레를 집어 통에 쏙 넣으며 아쉬운 듯 말했다.


“꼬물아 넓은 데서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지? 촉촉하게 물 뿌려줄게” 하며 흥건하게 물을 적셔 놓다 못해 익사할 정도로 물을 부어 놓았다. 환기도 시켜야 한다며 뚜껑까지 열어 놓고..


남은 한 마리를 열심히 찾고 있는데 온이 통에서 온이가 사랑스럽게 부르던 그 꼬물이가 물에 젖어 흙빛을 벗고 우윳빛깔을 드러내며 월담을 시도했다.

사이즈가 2령 이상은 돼 보였다.


“온아 온아 네 꼬물이 탈출해! 뚜껑 어딨어? 얼른 닫아줘”


“아이구 나오려고 했구나. 물이 많았나? 흙을 좀 더 섞어줄게” 하며 텃밭상자에 있는 흙 한 움큼을 넣어주었다.


누가 애고 누가 어른인지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어디 갔는지 모를 한 마리 유의 꾸물이. 아무리 파헤쳐도 20분이 넘게 파헤쳐도 나오지 않았다.


“유가 찾아볼래? 엄마가 아무리 해도 안 나와”


“네! 제가 해볼게요”

임무를 받은 자는 사명감에 불타 오르는 게 당연한 듯 열심히 파헤쳤다.

신났겠지 당연히. 허가를 받았으니..

한참을 파던 유가 말했다.


“엄마 엄마 드디어 찾았어”


“정말?! 너무 잘했다. 세상에 엄마는 못했는데 너무 잘했어! 근데 어디 있었어?”


“엄청 아래에 있었어. 계속 파니까 숨었나 봐. 다행이지?”


“응 정말 다행이야! 잘했어 고마워”


고맙단 말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꼭 찾았으면 했다. 성충이 돼서 어딘가에 기어 다니고 있을 거란 생각에 짜증이 났었고 화도 났었다. 그런 마음이 분명 말투에 묻어났겠지..

뭔가 해결되고 나니 안도와 함께 미안함은 또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뜻밖에 애벌레의 행적을 쫓았고, 별안간 베란다는 난장판이 되었던 그 날의 오후도 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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