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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Nov 01. 2021

불쑥 제주도.

우리는 또 불쑥 제주도를 다녀왔다.

제주도 가고 싶다고 운을 던졌더니, 신랑은 덥석 물었다.

실행을 염두하지 않고 던진 말에 신랑은 일사불란하게 예약을 마쳤고 나에게 일정을 짜보라고 했다.

(언제나 관대한 당신이 고맙다.)

노형동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는 것, 조천에 사는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계획이었고 나머지 빈 공간에 어딘가를 가면 될 것 같았다.

제주도는 어딜 가나 좋고, 먹을거리도 어딜 가나 많으니까 상황에 맞춰서 말이다.


그런데 신랑은 비가 올 경우와 아닌 경우를 생각했고, 실 내외 활동을 적절히 섞어 미술관과 체험을 하루 일정에 골고루 배치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면서 계획적이기까지 했다.

신랑은 구체적인 동선을 체크하고 싶으니 가고 싶은 장소를 공유하자고 했다.


"오름이나. 숲에 가고 싶은데? 시간 되면 바닷가도 가고 말이야"


"그래서 구체적인 장소는 어딘데?"


"음. 그건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이렇게 달랐나? 우리가?

나와 다르지만 이런 꼼꼼한 면이 마음에 든다.

나는 내가 이렇게 즉흥적이고, 무계획을 즐기는 줄 몰랐다.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쩐지 실망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여행 가는데 기쁘고 재미있고 신나게 가야지. 그래 결을 맞춰보자.'

나는 빈 메모장에 가고 싶은 곳. 아니 아이들이 가면 좋아할 곳을 막 적어보았다.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사려니숲길.

곶자왈.

비자림.

쇠소깍.

이중섭미술관.

김영갑 갤러리.

돌고래 투어.

배낚시


만족스럽다.


그런데. 일기 예보는 비. 비. 비. 비.

비가 오면 정방폭포.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한 일정이었다.


나는 특별한 계획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계획은 필요했다.

비 예보는 온 데 간데없고 다시 여름 속으로 되돌아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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