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패기였을까. 무슨 깡인지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무턱대고 퇴사를 하고 남편 유학길에 따라나섰다. 쉼 없이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듯 1년 동안을 마음 놓고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좋았고, 이방인으로 지내는 것은 외로움이 아닌 자유로움을 주었다. 하지만 편안함에서 오는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진입장벽이 낮고 소소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보았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열정과 자부심을 갖고 임할 수 있는 내 직업을 갖고 싶었고 지금이 커리어 체인지를 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의 끝에 오래전부터 관심 있었던 분야인 UX 디자인을 해보고자 하였고 그 방법으로 대학원을 택했다. 그 이후로 한치의 고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남편 일로 미국에 오게 되면서 경력단절이 되었으나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싶은 분들의 연락을 종종 받는다. 어쩌다가 여기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을 했는지, 왜 대학원을 갔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곤 해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확신이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패션 디자이너이셨던 엄마는 솜씨가 좋으셔서 어렸을 적부터 내 옷을 지어주셨고 우리 집 곳곳에는 엄마 손으로 만들고 가꾼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에 반해 나는 손으로 하는 것마다 어쩜 그리 서툴고 불안해 보이며 꼼꼼하지 못한 지 모르겠다.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미술 쪽으로 진학을 꿈꾼 적이 있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내 똥손을 다시금 마주하고 금세 포기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렸을 적 꿈을 잊은 채 시간이 한참 흘렀고 미국에서 뭐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UX 디자인 분야를 알아보게 되었다. 내 엔지니어링 전공과 IT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플러스가 된다니. 아니 그것보다 내가 디자인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이만큼 두근거리는 분야는 없었다. 무엇보다 똥손이 나도 툴은 잘 다룰 수 있지 않은가.
UX 디자이너로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대학원을 꼭 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단단한 내 커뮤니티가 절실했다.
한인사회나 남편의 네트워크와는 전혀 관련 없는 나와 같은 관심사와 프로페션을 갖고 있는 사람들. 이 것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될 거라 믿었고 오롯이 나로서 이 곳에 속해야 내 삶이 더 풍요롭고 즐거워질 것 같았다.
또한 학생이 되면 취업 준비 시 훨씬 수월할 거란 확신이 있었다. 대부분의 UX 디자인 인턴쉽은 학생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실제로 회사 측에서 내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 것이 취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몇 년의 한량 생활 후에 뭔가 정말 열심히 매달려서 해보고 싶었는데 대학원 과정 정도는 마쳐야 그 성취감이 느껴질 것만 같았다. 당시 남편이 대학원 과정 중이었는데 ‘나도 한 번 해보지 뭐.’ 같은 단순한 ‘야나두’의 정신도 있었다. 하하
가정이 있으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상황에 따라 오히려 안정적이고 좋은 환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끝이 안 보이는 취준을 하다 지치고 나약해질 때마다 가족의 존재가 정말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당장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고 학위를 하는 데에 파트너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던 것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시간적으로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대학원 진학 결심이 쉬웠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이민으로 경력이 단절되어있던 내 상황이다. 안정적인 직장 또는 익숙한 환경을 포기하고 도전해야 하는 한국에서 유학을 떠나는 이들과 달리 난 잃을 것이 없었기에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지금 돌아보니 엄청나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안정된 스태터스다.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파트타임으로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유연하게 과정을 이어갈 수 있었고 취업에 있어서도 시간적인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나이와 배경을 전혀 따지지 않고 실력만 중시하는 미국 문화가 큰 몫을 하였다. 난 한국을 떠남으로써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었으면 경력 전환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30-40대 인턴이나 신입사원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말이다. 나이, 성별, 기혼 유무가 장벽이 되지 않으며 다양성이 존중받고 오히려 환영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새로운 커리어를 도전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나 어색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와서 HCI 대학원 진학을 결심할 때까지 방황했던 시간이 헛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고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과정인데 난 안타깝게도 10대, 20대에 그걸 경험해보지 못했다. 항상 정신없이 눈앞의 과업을 해내다가 이상적이어 보이는 옵션을 선택하였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기 때문에 고민 없이 치열하게 과정을 해낼 수 있었다고 믿는다.
UX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고 점점 더 다양한 일들로 스펙트럼을 넓혀갈 생각에 설레는 요즘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영어 한 마디 편하게 내뱉지 못하던 내가 미국 테크 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 결혼, 육아, 또는 이민으로 경력 단절이 된 후 정체성의 혼란이 오거나 다시 일을 하고 싶은 친구가 옆에 있다면 무엇이든 일단 도전해보라고 응원해줄 것이다. 도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좋은 아내, 완벽한 엄마 역할에 대한 책임감 등의 이유로 스스로 내 한계를 세우지 말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