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루나 2 - 히로 2

Giro 2

by 양희범

단호한 그녀의 말과 달리 걸음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걸음은 저절로 빨라졌다. 골목을 벗어나려는 찰나,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그녀는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비로소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아니, 정말 잘못했어요.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한 번만, 딱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나를 보지 않는 그녀에게 간절히 말했다. 그녀는 감정이 복받친 듯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눈물을 닦느라 대답이 없었다.


"모든 걸 다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제게도 힘든 일이 있었어요. 감정을 드러내면 불편할까 봐, 그래서 피한 거였어요. 파트너십을 하기 싫거나, 엘리아나 님에게 싫증이 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믿어주세요."

나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거칠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딸꾹질이 새어 나오고, 숨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그 진동이 전해졌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도 참지 못했던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 왜 제가 이렇게 우는지, 하나도 모르시잖아요. 데이빗 님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더 할 말 없어요. 이거 놓으세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모든 것이 내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죄책감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러지 말고, 제발, 이야기라도 들어주세요. 변명 같겠지만, 이유는 있었어요. 적어도 이것만은 들어주세요."

그녀의 손목을 놓지 못한 채 간청했다.


"이유가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아요. 이미 일은 벌어졌고, 저는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너무 피곤하고, 너무 지쳐요."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말보다 감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녀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 내면 깊은 곳에서 울렸다.


"제발, 단 한 번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변명일지 몰라도, 그래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요!"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려는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나는 무릎을 꿇었다.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나조차 놀란 행동이었다. 그녀 또한 당황한 듯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빌게요. 기회를 주세요!"


거리에 울리는 목소리. 그제야 그녀의 흐느낌이 멎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인접한 도로 때문에 행인도 많았다. 그녀는 당황한 듯 나를 급히 일으켜 세웠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자 그녀가 급히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의 손길에 나는 순순히 몸을 일으켰고, 그녀는 나를 이끌고 다시 골목 안쪽으로 향했다. 인적 없는 주차장 쪽으로. 이번에는 그녀가 앞장섰다.


"정말 무책임하고, 치사한 분이네요, 데이빗 님은."

그녀의 눈은 부어 있었고, 여전히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약간의 틈도 보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도 이런 식으로밖에 행동하지 못한 제 자신이 싫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진심이에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부탁드립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며 진심을 전했다.


"이렇게 넘어갈 거였으면,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무릎까지 꿇은 당신에게 이런 말해서 미안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마음 없습니다. 더는 따라오지 마세요. 연락도 안 하셨으면 좋겠고요. 수업 때도 사적인 대화는 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인사까지입니다. 고생 많으셨고, 좋은 파트너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말 속에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조용히 고개를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더는 붙잡을 수 없었다. 그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걸음은 슬퍼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또다시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다시 떠나보낸 걸까. 마음이 휑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리듯 불어왔다.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누군가의 탓이 아니었다.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면, 그건 결국 내 책임이었다. 멍하니 바람을 맞고 있는데, 문득 스승님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들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항상 자존심 때문에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았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떠오른 이름은 밀러와 조이였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후에야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내게 탱고의 길을 열어준 이들, 내게는 그들뿐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밀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잠깐 찾아뵐 수 있을까요? 제가 모든 일을 망쳤어요. 도움이 필요해요.]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화면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근처에 있어요. 스튜디오로 오세요. 와서 이야기해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 따뜻한 안도감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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