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o 5
[정말, 마지막까지 제멋대로네요. 선생님들께 연락이 가게 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일단 알겠어요.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해요.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다시 데이빗 님과 파트너십을 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문자를 확인하자 눈물이 쏟아졌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멈출 수 없었다. 이 눈물은 슬픔도, 감동도, 안도도 아니었다. 오직 참회의 눈물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선택들로 회피해왔던 나 자신에게 흘러나온 참회의 눈물이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짐했다. 더 이상 원망하지 않기로. 책임지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마음속 응어리가 눈물과 함께 서서히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해야 할 일이 선명해졌다. 엘리아나를 만나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과거를 정리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다. 마음속에 휘감겨 있던 덩굴들을 끊어내야 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감정과 구속을 풀어야 했다. 나는 토크 콘서트에서 모든 것을 정리한 뒤, 엘리아나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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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고 콘서트 장소로 향했다.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SNS와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된 덕분인지, 수많은 청년들이 모여들어 관계자들조차 이동이 힘들 정도였다. 자리 배치와 동선을 꼼꼼히 점검한 뒤, 토크 콘서트 준비를 마쳤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네 명의 패널이 대본을 점검하며 최종 확인 중이었다.
"준비 다 되셨나요?"
너스레를 떨며 인사했다.
평소와 달리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성공적인 행사가 가능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대중 앞에서의 발언이 익숙한 분들이라 큰 걱정은 없었지만,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일부러 웃으며 다가갔다.
"준비 다 됐습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진행하겠습니다."
연훈이 자애로운 미소로 답했다.
"스님은 카메라 앞이 익숙하신가 봐요. 이건 일도 아니시네요."
정율이 장난스레 말하자, 모두가 함께 웃었다. 수호와 자윤도 미소를 지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번 콘서트가 잘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점검은 반드시 필요했다.
"동선, 순서 모두 기억하시죠? 입장 순서는 스님, 목사님, 신부님, 교무님 순입니다. 스님이 메인 진행을 맡으시고, 다른 분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궁금한 점 있으신가요?"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며 확인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 완료를 알렸다. 마지막으로 자윤과도 시선을 맞췄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원망이 아닌 죄책감이 스며들었다. 그녀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떨렸다. 티내지 않으려 시선을 피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콘서트가 끝나면 모든 게 정리될 거란 희망을 품고 긴장을 가다듬었다.
무대로 먼저 나가 상황을 점검했다. 극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숨 쉴 틈조차 없었다. 네 명의 성직자에게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분들에게 열광하는 걸까? 무엇이 그토록 힘들고 답답해서 이 자리에 모였을까? 관객들은 모두 지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어쩌면 이들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몰랐다. 나 역시 네 분의 대답 속에서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다. 오늘 그들의 말이 특별히 다르게 들릴 것 같았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입장이 시작되고, 콘서트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패널들이 차례로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그들이 진정한 팬인지, 단순한 예의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각자의 소개가 끝나고 자연스레 이야기가 이어졌다. 진행이 매끄러워 기획자로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이 공개됐다.
"결혼을 생각 중인 여자 사람입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저에게 늘 잘해줍니다. 속 썩이는 일 없고, 직업도 안정적이며 금전적으로도 탄탄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과 있으면 매 순간 불편하고,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합니다. 그 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저를 진심으로 아끼고 챙겨주는 좋은 분입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이 됩니다. 저는 대화가 통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알게 된 다른 사람과는 대화도 잘 통하고 코드도 맞는 듯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끌립니다. 저는 어떤 사람과 결혼을 선택해야 할까요?"
연훈은 사연을 듣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청중도 함께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한다. 현실은 냉혹하고, 이상은 달콤하며 부드럽게 느껴지니까. 나는 수호와 정율의 답변이 어떤 뉘앙스로 전해질지,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사연을 들었으니, 패널 분들의 의견을 들어볼 차례겠죠. 이번 답변은 누가 해주실까요?"
연훈이 패널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물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수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질문은 결혼을 앞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할 문제입니다. 한 분은 조건이 안정적이고 본인을 잘 챙겨주는 분이지만, 함께할 때 불편함을 느끼고 계시죠. 반면 대화가 잘 통하고 코드가 맞는 다른 분에게는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끌린다고 하셨고요.
결혼은 단지 사랑의 감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에는 현실적인 요소들이 깊숙이 관여합니다. 금전적 안정, 신뢰, 책임감, 그리고 함께 그려갈 삶의 비전이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결혼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평안함'입니다. 상대와 함께 있을 때 내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는 결혼을 긴 여정이라 봅니다. 기쁠 때뿐 아니라 어려울 때도 서로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지, 힘과 위로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니 현실과 이상 중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두 사람 모두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할 수 있을까? 어려움이 닥쳐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수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고개 숙여 두 손을 모으고 ‘아멘’이라 읊조렸다. 그의 진심 어린 답변에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훔치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제가 이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율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그녀는 사연자의 무거운 마음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사연을 읽으며 고민하시는 분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느껴졌습니다. 결혼은 단순히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과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일치’와 ‘마음의 평안’이지요.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결혼 생활에 지속적인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화가 잘 통하고 코드가 맞는다는 것은 정서적 소통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결혼 생활을 오래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미 결혼을 약속한 분과 최근 알게 된 분 중에서, 사연자님은 각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신지 차분히 들여다보셨으면 합니다. 사랑은 단순한 설렘만이 아니라 책임과 희생도 포함합니다. 결혼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함께 성장하는 여정입니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것은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흔들리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진정한 답을 찾을 힘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정율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말을 매듭지었다. 그녀의 진심 어린 조언에 모두가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