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o 6
대답을 들으며 자윤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반응도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은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다.
나 또한 그들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그 조언들이 너무 고상하게 느껴졌다. 사랑을 단지 ‘책임’이라는 말로만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감각적인 감정일 텐데. 나는 그들의 답변을 내 기준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야 느끼는 그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책임, 그 단어가 갖는 단어의 무게가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과연 나는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책임을 져본 적이 있을까? 자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책임을 지려 하기보다는, 그녀가 나를 책임져 주기를 원했다. 내 삶에 맞춰 그녀가 변화하기를 바랐다.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맞춰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인생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했고, ‘내가 네 인생을 책임질 테니 나와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을까? 준비도 되지 않은 내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을 얻었을까? 생각할수록 자괴감만 밀려왔다. 이제야 두 성직자의 말이 내게 깊이 와닿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무게를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때, 한 남자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질의응답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듯 손을 들었고,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의 돌발 행동에 연훈이 반응하지 않고 넘어가길 바랐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다르게, 연훈은 그를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아직 질의응답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손을 드신 분이 계시네요. 뭐가 그렇게 궁금하셨길래 급히 손을 드셨을까요. 저분께 마이크 부탁드립니다."
연훈의 말에 나는 서둘러 손짓하여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전달하라고 사인을 보냈다. 스태프 중 한 명이 황급히 마이크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마이크를 받은 그는 잠시 숨을 가다듬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저는 네 성직자님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청년입니다. 목사님과 신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고,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어 손을 들고 질문합니다. 신부님께 묻겠습니다. 정말 사랑을 ‘책임’이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사람의 외모, 목소리, 말투, 성격 등 다양한 매력에 끌립니다. 사랑에는 기한도 있고, 마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다정했던 사람이 난폭해질 수도 있고, 멋져 보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 변할 수도 있죠. 마음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사랑은 서로가 행복해야 좋은 관계인데, 사랑을 ‘책임’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너무 무겁고, 저 같은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성직자분들이시니까 할 수 있는 말씀 아닐까요?"
질문은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궁금했다. 김수호 신부가 어떤 답변을 할지, 그를 통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주목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수호가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이네요. 사랑은 참 여러 가지 형태를 띱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즐거움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행복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희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거대해서, 그 모든 의미를 포함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이 사랑이 어떤 환경 속에서 존재하는가’입니다.
사연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분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인 상대가 있습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일반적인 연애라면 더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났을 때 새로운 만남을 고려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결혼을 앞둔 신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결혼이란 단순한 연애와는 다릅니다. 결혼이란 인륜지대사이며,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하나의 삶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결혼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 뜻 없이 두 사람이 만나지는 않았겠죠.
즉, 두 사람의 만남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축복이며, 동시에 책임입니다. 모든 만남에는 뜻이 있습니다.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에 휩쓸려 새로운 만남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결정이 아닙니다.
질문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은 항상 한 순간의 모습만 보고 평생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실제 빙산의 크기를 당장 확인하기란 어렵습니다. 배우자의 모습도 마찬가지죠. 지금 당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것 역시 찰나의 모습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만약 그때가 되어 또다시 새로운 사람에게 끌린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
그러니 섣부른 판단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할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질문하고, 주님의 뜻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수호의 표정은 확고했다. 그의 말에 장내에는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신뢰가 가는 그의 답변에 나도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관객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느끼기에 답변은 좋았으나, 콘서트의 분위기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분위기를 살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말에 감화를 받은 듯했다. 다행이었다. 그를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느새 수호는 질문자를 바라보며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질문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추가 질문은 없었다. 무대를 채우려는 침묵 속에서, 연훈의 차분한 진행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