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o 8
“말씀하신 대로라면, 사랑이 지속되는 건 결국 노력과 의지의 문제라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노력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잖아요? 아무리 가꿔도 다시 꽃이 피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사랑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노력해도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게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말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의 말은 단순한 반문이 아니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연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응시했다. 그의 표정이 더욱 진지해졌다. 그 침묵 속에서 청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런 노력이 언제까지 유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청중 역시 숨죽여 그 대답을 기다렸다. 모두가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사랑을 지키려는 노력은 언제까지 유효한가? 이제, 연훈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했다.
“질문자께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연훈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운을 뗐다.
“사랑은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사람, 내 사랑이기에 의미가 있는 거죠. 내 사람이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더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의 목소리엔 불안함이 묻어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 사연이 있으신가 봅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연훈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나 청년은 주저하는 듯했다.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듯, 생중계되는 무대의 부담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깊은 숨을 내쉬고, 단단히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한 여자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아직도 가장 중요한 기억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다잡으려는 듯했다. 청중도 숨을 죽였다.
“대학 때 만나 7년을 연애했어요. 처음엔 완벽했죠. 같은 꿈을 꾸고, 같은 미래를 그렸고, 결혼도 당연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를 위한 노력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저는 꿈을 좇아 해외에 나가고 싶었고, 그녀는 안정적인 삶을 원했죠. 사랑한다 믿었기에 끝까지 함께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줄어들었고, 이해하려 애쓰는 대신 침묵이 늘었어요.”
그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결국 헤어졌습니다. 그녀가 먼저 이별을 말했죠. 제가 붙잡았어요. ‘사랑하니까,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죠. ‘사랑하는데도 헤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너무 잔인한 걸까요?”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끝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서로의 길을 존중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여전히 아름다웠고,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녀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무대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 순간 깨달았어요. 나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녀와 함께했던 내 청춘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구나. 사랑이 끝난 게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 끝난 거구나.”
그는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사랑은 정말 노력으로 지속될까요? 끝내지 않으려 애썼다면 지금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사랑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감정일 뿐인가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묵직했다.
“정말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네요.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아직도 많이 아프신가요?”
연훈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다. 청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말이죠. 사랑은 너무나 많은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보고 싶다. 잘 보이고 싶다. 함께 하고 싶다. 무언가를 주고 싶다. 이런 생각과 감정이 들면 사랑인 거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과 내 경계를 허물기 시작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같은 경계 안에 있는 사람, 혹은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때 우리는 이 사람이 '내 것'이라 믿습니다. 내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연훈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차근차근 말했다. 그는 연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에서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사랑에서 모든 아픔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며 아픈 이유는 상대를 ‘내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갈등이 비롯됩니다. 그래..."
연훈이 계속해서 말을 이으려 하는데, 갑자기 청년이 그의 말을 끊다.
“그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돼요. ‘내 것’이라 생각하니 잘해주고 챙겨주고, 무엇이든 주고 싶은 거 아닙니까? 내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면 누가 사랑을 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그 외침은 어딘지 절규 같았다. 그런 그를 보고 연훈은 더 짙어진 미소를 머금으며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