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루나 2 - 히로 9

Giro 9

by 양희범

“사랑은 ‘내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것이겠죠. 질문 하나 드릴게요.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요?”

연훈이 미소를 유지한 채 질문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사랑이 어디에 있냐니?”

질문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사랑을 ‘내 것’이라 표현하셨기에 여쭤봤습니다. 사랑이 어디에 있길래 ‘내 것’이라 하셨는지, 실체가 있다면 꺼내 보여주실 수 있는지, 지금 없다면 어디에 보관하고 계신지 정말 궁금합니다. 아마도 질문자님께서는 그걸 꺼내 보여주실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연훈의 미소가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 되자, 장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그럼 제가 느꼈던 감정은 무엇인가요?”

질문자의 얼굴에 혼란이 스쳤다.


"의아하실 겁니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럼 내가 가지려고 했던 그건 무엇일까. 사실, 답은 질문자께서 다 해주셨습니다. 본인이 한 말에 답이 다 있었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실은 그녀에 대한 기억을 사랑하고 있던 거라고 말이죠. 맞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게 아니라 본인이 사랑이라 생각하 상대를 사랑했던 것뿐이죠. 그게 질문자께서 한 사랑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시죠?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이라 할 때 무엇을 사랑한다고 하나요? 누가 답해 주실 분 있나요?”

연훈이 한 사람을 응시하며 질문했다. 그 사람은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분노에 찼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그때,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상대를 보고 느끼는 좋아하는 감정, 안고 싶다는 욕구, 갖고 싶다는 욕망, 그 일련의 과정이 사랑 아닐까요?”

스탭에게 마이크를 뺏어 말했다. 연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이쪽을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모였다.


"맞습니다. 대답이 이쪽에서 나올지는 몰랐지만, 정확하네요. 그럼 여기서 문제입니다. 그럼, 그 사랑의 대상은 무엇일까요?”

연훈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연히 상대방이겠죠."

그 미소에 대꾸하기 싫어 표정 없이 답했다.


"우리의 아픔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정말 상대방을 좋아하는 걸까요? 이 손가락을 보세요."

연훈은 갑자기 말을 하다가 말고 검지손가락을 들어 곧게 뻗었다. 모두의 이목이 그의 손가락에 집중됐다.


"이건 뭘까요?"


"손가락, 검지손가락이네요."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의 손가락을 보며 어떤 선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했던 것처럼 나도 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검지손가락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손가락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라 하나라는 뜻을 표현한 겁니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아시겠나요? 이게 바로 우리가 사랑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합니다. 내가 보는 사랑과 상대가 느끼는 사랑이 다르다는 점, 이게 바로 사랑에 대한 오해의 시작입니다.”

연훈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어딘지 그의 표정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반항심이 들어 퉁명스럽게 답했다.


"아실만한 분께서 제게 설명할 기회를 주려고, 이렇게 또 자리를 만들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우리 질문자 분을 위해서도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으니, 더 이어서 말해보도록 하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저는 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우리 편집자 분은 검지손가락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뜻은 그게 아니라 하나였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각자의 이해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오해가 쌓이는 원인도 여기에 있죠.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이죠. 사랑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시겠습니까? 소유, 희생, 배려, 무엇을 이야기해도 맞고, 무엇을 이야기해도 틀립니다.

왜냐고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만날 수 없기 때문이죠. 사랑이라 이야기하지만 서로는 다른 걸 바라보며 사랑이라 이야기합니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 것이죠.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세상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기에 상대를 맞추려 하죠. 자, 그러면 무엇을 사랑하신 거죠? 질문자께서 사랑하신 대상은 무엇입니까? 그 여자분입니까? 그 여자과 함께했던 기억을 사랑하신 건가요?"

질문은 내가 했음에도 연훈은 끈질기게 질문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질문자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연훈의 말에 대답했다.


“그녀의 기억이라고 말한 건, 지금의 그녀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이제 없다는 생각에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변했다고 해서 사랑했던 사람이 사라진 건 아니죠.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녀에게 다시 연락해 애원한다면, 기회가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연훈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질문자님이 원하는 것은 그녀인가요? 아니면, 그녀와 함께했던 그때의 감정인가요?"

그의 질문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있는 듯했다.

질문자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향했던 자신의 감정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요?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이 사실은 과거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연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사랑은 결국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그 순간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거죠. 그러나 상대도 나도 변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 됩니다. 집착은 사랑이 아닙니다.”

연훈의 마지막 장내에 울려 퍼졌다.


질문자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어쩌면 오히려 많은 대답이 오간 듯했다. 나 또한 더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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