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롱가의 추억
밀롱가는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밀롱가가 없다면 우리는 만날 수도, 춤출 수도 없을 것이다. 이곳에는 만남에 대한 기대가 있고, 설렘이 있다. 특별한 만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기대감이 사람을 묘하게 흥분하게 만든다. 어쩌면 당신을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그 설렘이다.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으며 연습할 때는 밀롱가를 꼭 가야 하는 것인지, 그게 그렇게 재밌다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저 탱고를 배우고 추는 게 좋은 것인데, 꼭 그렇게 모르는 사람과 만나서 춤을 춰야 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우연한 만남으로 만들어진 그 아름다운 순간이 가슴에 박히는 순간이 있어. 그게 밀롱가를 가는 이유야.” 그 말이 인상 깊어 밀롱가를 따라가게 됐다.
탱고를 맨 처음 시작할 때, 탱고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말이었다. “네 개의 다리, 하나의 심장.” 하나가 된 심장에서는 어떤 춤이 나올까. 네가 없고, 내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존재의 의미와 존재의 의의를 떠올리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그 매력에 빠져 탱고를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런 기대가 밀롱가에도 있었다.
언젠가 밀롱가에 갔던 그날,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실내는 조명이 어둡게 깔려 있었고, 검은 천 위로 떨어지는 붉은 빛이 사람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사람들은 말없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어떤 이들은 조용히 일어나 론다로 걸어 들어갔다. 까베세오가 오간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저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름 모를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반도네온의 숨결이 조용히 공간을 채우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이 닿는 순간,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모르게 미소와 함께 응답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시간보다,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는 몇 걸음이 더 길게 느껴졌다. 우리는 말없이 마주 섰고, 첫 아브라소를 나누었다. 가까운 거리. 어깨가 닿고, 심장이 뛴다. 그녀의 온기가 내 가슴에 닿는 순간, 나는 잠시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몸이 굳고, 호흡이 불규칙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한 걸음을 내디뎠고, 나도 그것에 반응했다. 딱 한 걸음 만에 우리는 같은 리듬 위에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감각이 아니었다. 음악 안으로 들어가 걷고 있다는, 마치 그 음악이 우리의 몸으로 흘러나오는 듯한 낯선 충만감이었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동시에 이끌었고, 그녀도 내 리듬을 따라주었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같은 감정으로 걸었다.
그러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단지 발끝만이 그 곡 위를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그녀의 몸에서 전해지는 작은 떨림, 아주 미세한 무게 이동이 고스란히 내 몸에 전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춤을 추는 순간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음악을 걸었고, 그 음악이 우리의 숨결이 되었다.
몸과 몸 사이에는 말 없는 온기와 미세한 진동이 흐르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함께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 춤이 끝나도, 이 느낌은 오래 남겠구나,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가 나와 끝까지 이 음악을 걸어갈 수 있도록.
“Tango is a dance of improvisation, where coincidence becomes choreography.”
탱고는 즉흥의 춤이다. 그 안에서 ‘우연’은 곧 안무가 된다.
– Gustavo Naveira
춤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아주 오래전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느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퍼져나오는 만족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족감이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그 사람과의 12분.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존재로서 받아들여졌고, 온전히 하나로 연결됐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어쩌면 탱고가 선물한 건 바로 그 한 번의 충만함이었으니까. 마치 우연처럼 시작된 만남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을 조금 걸어주었다. 너무 빠르지 않게, 너무 느리지 않게. 리듬을 맞추고, 심장을 나누고, 눈을 감고 함께 걸었던 그 시간.
그 이후로 나는 밀롱가가 왜 특별한 공간인지 알게 됐다. 낯선 이들과 함께 걷는다는 건, 어쩌면 내 삶에 잠시 들어와 따뜻한 숨결을 건네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곳엔 말 없는 위로가 있었고, 한 박자 늦은 공감이 있었으며,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리듬이 흐르고 있었다.
그 사랑은 이성적이거나, 섹슈얼한 감정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때 오는 조용한 충족감, 마치 하나가 되었다는 그 감각이 나를 깊이 안심시키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음악을 기다린다. 또 다른 우연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지 모르기에.
내 심장은 여전히, 네 개의 다리로 하나의 박동을 그리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