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give up
포기는 “여기까지만”이라는 절벽이고, 느끼기는 “여기서 같이 듣자”는 시작이다. 초대를 건네는 춤은 계속되고, 절벽으로 치닫는 춤은 멈춘다.
어려운 상대, 어려운 딴다 앞에서 우리는 자주 흔들린다. 론다가 좁아지고 음악이 가팔라지면 마음은 쉽게 무너진다. 여기까지만 하자. 하지만 탱고에서 느낀다는 건 도망이 아니다. 손을 놓지 않은 채 힘을 덜고, 두 사람의 축이 설 자리를 비워 주는 일이다. 포기는 단절을 의미하고, 느끼기는 여백을 남긴다. 여백은 둘이 숨을 돌릴 자리다.
언젠가 밀롱가에서 사람이 많을 때, 앞 커플이 멈춰 서서 필에 잠겨 있던 적이 있다.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돼 주변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좋았으나 그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론다가 멈춰 버렸다. 그때 뒤에서 압력이 밀려온다. 당연히 흐르는 론다에 멈춰진 돌멩이는 밀려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압력과 힘은 바로 뒷사람이 다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선택해야 했다. 그들처럼 돌멩이가 될 것인가, 어떻게든 흐름을 만들 것인가. 잠시 의욕은 사라지고 스텝은 멈췄다. 아브라소의 압력을 반 박 줄였고, 움직임은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의미 없다는 마음으로 상체를 반 바퀴만 돌렸다. 그러자 함께 춤을 추는 팔로워가 에너지를 실어 히로를 완성했다. 그 순간 파트너의 호흡이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회전한 힘으로 작은 공간 속에서 어떻게든 음악 위에 올라탔다. 작은 걸음으로 춤을 마무리했고, 포기하지 않은 채 서로를 느낄 수 있었다. 포기라는 절벽 위에서 나를 끌어올린 건 상대의 초대였다.
또 언젠가는 낯선 파트너, 낯선 음악에서 포기하고 싶어졌던 때가 있다. 간초를 예고했지만 답이 없고, 박자를 쪼갰지만 따라오지 않는다. 상대는 함께 춤을 만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지 자기가 듣는 정박으로 스텝을 밟을 뿐이었다. 속이 타다 못해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의 나였다면 이미 속으로 닫았을 것이다. 그때 히로를 만들어 준 그녀가 떠올랐다. ‘포기’라는 말을 접어 두고 상대에게 다시 다른 방법의 대화를 건넨다. 어려운 동작 대신 정박과 멜로디를 따라 깊고 느리게 에너지를 쓴다. 동작에서 망설임이 들리면 즉시 회수한다. 반 박 뒤 그녀의 축이 준비되면 낮은 플라네오로 조용히 춤을 같이 만든다. 상대를 내 춤 속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로 질문을 건네니 대답이 도착한다. 탱고의 문장은 하나의 문체만 고집되지 않는다.
또 다른 장면. 실수가 겹치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었다. 마치 음악은 멀리 있고, 발은 제자리만 도는 것 같았다. 그때 반도네온이 길게 들이쉬는 숨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한 치 낮추고 그 길이에 내 숨을 얹는다. 여기까지만 헤매지 말고, 여기서 같이 듣자. 그렇게 호흡을 맞추며 스텝을 제자리로 돌린다. 탱고는 크게 이기는 춤이 아니다. 내 춤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함께 음악 속에서 한 박을 끝까지 느끼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느끼기는 기술보다 태도에 가깝다. “내가 보여줄게”가 아니라, “내가 서 있을게, 네가 들리도록.” 그래서 느끼기 전에 반드시 스스로가 서야 한다. 내 축이 흔들리면 감각은 과장으로 변하고, 상대의 신호는 잡음이 된다. 상대의 말이 잡음이 되는 순간 탱고는 혼자서 하는 운동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상대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 상대의 언어가 어떤 형태인지, 서로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어떤 춤을 만들어 가는지 경청하고 집중해야 한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공허한 론다만 남는다. 포기는 쉬운 것 같지만 텅 비어 있고, 느끼기는 가벼운 것 같지만 단단하다.
때때로 상대가 내 감도에 바로 응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공간이 없거나, 음악의 결이 거칠거나, 오늘의 몸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그럴 땐 문장을 바꾸면 된다. 간초가 아니면 바리다, 회전이 아니면 걷기, 길게가 아니면 짧게. 질문은 그대로 두되 문체를 바꾼다. 탱고의 매너는 춤의 다양성과 기술로 판명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은 존중에서 시작된다.
또 다른 밤, 욕심이 론다를 달렸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르자 상체가 과하게 돌았고, 상대의 발끝이 가볍게 떠올랐다. 호흡이 반 박 어긋나며 춤이 툭 끊겼다. 그 잠깐의 멈춤과 함께 상대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는 이미 말을 잃었다. 조용히 목례로 사과한다. 다시 다리에 힘을 실어 축을 세운다. 상대를 숨 막히게 하는 아브라소의 압력을 한 치 낮춘다. 반도네온이 조용히 내려앉으며 공기를 묶어 준다. 보여 주고 싶은 욕심을 덜어 낸다. 느낌의 세계가 론다를 침식하도록 공간을 채운다.
포기는 책임을 내려놓지만, 느끼기는 책임을 나눈다. 느낀다는 건 상대에게 미루는 게 아니라, 내 몫을 책임지며 함께 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딴다라도 끝까지 완성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완성은 화려함에서가 아니라 끊기지 않음에서 태어난다. 실수해도 좋다. 실수도 탱고다. 실수라고 모든 과정을 결과로만 만드는 순간, 모든 가능성은 닫힌다.
마지막 프레이즈가 사그라질 때, 우리는 손을 풀기 전에 한 번 더 서로의 호흡을 확인한다. 눈빛으로 묻고, 눈빛으로 답한다. 여기까지만? 아니, 여기서 같이 느끼자. 반도네온의 벨로우즈가 작게 접히고, 홀 안 공기가 사각 하고 자리 잡는다. 느낌표로 끝내지 않는다. 대신 다음 문장을 위한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 위에서 다시 선다. 그리고 안다. 어떤 상대든, 어떤 딴다든—포기하지 않고 느낄 때 춤은 계속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