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신파의 혁명)
턱시도를 입은 탱고, 살롱의 문을 열다턱시도를 입은 탱고, 살롱의 문을 열다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기는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찾아온 호황 속에 거리는 자동차와 네온사인으로 번쩍였고, 사람들의 거실에는 축음기와 라디오가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급격한 변화의 바람을 타고, 뒷골목의 거친 춤곡이었던 탱고 역시 낡은 옷을 벗어던집니다. 땀 냄새나는 항구의 선술집에서 추던 춤이, 향수 냄새 은은한 상류층의 살롱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라 가르디아 누에바(La Guardia Nueva, 신파)’*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탱고에 ‘격조’를 입히고, 춤추는 다리보다 듣는 귀를 즐겁게 했던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1920년을 전후로 탱고는 일종의 ‘성형수술’을 감행합니다. 이전 세대인 ‘라 가르디아 비에하’가 본능적이고 리듬 중심의 댄스곡이었다면, 새로운 세대는 탱고를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 격상시키려 했습니다.
이 시기 탱고는 파리를 거쳐 역수입되면서 상류층의 사교 문화를 파고들었습니다. 더 이상 거친 싸움꾼들의 음악이 아니었기에, 소리 또한 세련되어야 했죠. 음악가들은 더 정교한 화성과 치밀한 편곡을 도입했고, 연주자들은 개인의 기교를 뽐내기 시작했습니다. 탱고가 비로소 턱시도를 입게 된 것입니다.
이 혁명의 최전선에 훌리오 데 카로(Julio De Caro, 1899–1980)가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그를 주저 없이 "가르디아 누에바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데 카로가 탱고 역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섹스테토 티피코(Sexteto Típico)’*, 즉 표준 6중주 편성을 확립한 것입니다.
2대의 바이올린
2대의 반도네온
1대의 피아노
1대의 콘트라베이스
이전의 플루트나 기타가 들어간 가벼운 소편성에서 벗어나, 이 여섯 악기의 조합은 웅장하고 관현악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습니다. 데 카로의 악단에서 바이올린은 성악가처럼 노래했고, 반도네온은 그 사이를 파고들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단순한 A-B 반복 구조를 넘어선 복잡한 화성과 구조는 탱고를 실내악의 반열에 올려놓았죠.
“탱고, 이제는 춤추지 않고 들어도 좋습니다.”
데 카로의 음악은 묵언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일화: 살롱에서 울려 퍼진 노동자의 노래 ‘보에도(Boedo)*’
데 카로의 음악적 깊이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Boedo」(1927)는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의 노동자 거주지이자 좌파 문학 그룹의 아지트였던 ‘보에도 거리’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되고 귀족적인데, 제목은 노동자와 민중의 거리를 호명하고 있었죠. 이는 상류층 살롱 문화와 거리의 민중 문화를 음악으로 잇고자 했던 데 카로의 상징적인 제스처가 아니었을까요?
데 카로가 음악적 깊이를 추구했다면, 오스발도 프레세도(Osvaldo Fresedo, 1897–1984)는 탱고의 상업적 성공과 대중적 확장을 이끈 인물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서민 동네 ‘라 파테르날’에서 자란 그는, 두 계급의 정서를 모두 이해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의 별명은 “라 파테르날의 소년”이었지만, 그의 음악은 누구보다 귀족적이었습니다.
프레세도의 탱고는 부드럽고 유려했습니다(Legato). 거친 리듬을 덜어내고 현악기의 비중을 높인 그의 사운드는 상류층의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습니다. 그는 이미 1920년에 미국 뉴저지에서 녹음을 남길 정도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죠.
그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1920년대 중반, 밀려드는 연주 요청을 감당하지 못한 프레세도는 자신의 악단을 무려 네 개로 나누어 동시에 서로 다른 클럽과 라디오에 출연시켰다고 합니다. 이는 탱고가 더 이상 변두리의 하위문화가 아니라, 도시를 지배하는 메인스트림 엔터테인먼트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1920년대, ‘라 가르디아 누에바’의 문이 열리며 탱고는 비로소 ‘예술’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훌리오 데 카로가 만든 표준의 틀 위에서, 오스발도 프레세도 같은 스타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탱고는 황금기(Golden Age)를 향해 질주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넘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1920년대는 탱고가 ‘발’(춤)에서 ‘귀’(감상)로 이동한 결정적인 시기였습니다.
라 가르디아 누에바: 1920년 무렵 시작된 탱고의 신파(新派) 운동. 정교한 편곡과 연주 기교를 중시했습니다.
섹스테토 티피코: 훌리오 데 카로가 정립한 6인조 표준 편성(바이올린2, 반도네온2, 피아노, 베이스). 탱고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오스발도 프레세도: 탱고를 상류층 살롱과 라디오의 주류 음악으로 안착시키며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끌었습니다.
라 가르디아 누에바 (La Guardia Nueva)*: ‘새로운 경비대’ 혹은 ‘신파’라는 뜻. 1920년대부터 1940년대 황금기 직전까지, 탱고의 음악적 형식미와 예술성을 끌어올린 시기를 일컫는다.
섹스테토 티피코 (Sexteto Típico)*: ‘전형적인 6중주’라는 뜻. 현대 탱고 오케스트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악기 편성이다.
보에도 그룹 (Grupo Boedo)*: 1920년대 아르헨티나의 문학 그룹.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대변하고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으며,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한 ‘플로리다 그룹’과 대비되는 성격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