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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범 May 03.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8

한동안 탱고에 미쳐있었다. 다가오는 시간들이 마치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심지가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더러운 기분을 잊기 위해 더 탱고에 집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은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  벌어질 일들은 반드시 벌어진다, 운명처럼. 거짓말처럼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업무를 미룰 수 없었기에 미팅을 위해 한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달 후에 참여하는 작가님들과 미팅을 가지기로 했다. 네 분의 작가님들과 소통하며 책을 디렉팅 하는 건은 약속대로 내가 진행하기로 했다. 책과 함께 잡지에도 인터뷰가 실릴 것이었기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이 인터뷰를 토대로 책을 만들어야 했다. 머리 아픈 일들 투성이었다. 그때마다 끓어오르는 화기를 잠재워 준 것이 탱고였다.


 끝나면 습관처럼 탱고를 연습했다. 혼자 연습실을 빌려서 연습을 하거나 강습실에 수업 시간보다 일찍 가서 탱고연습을 했다. 탱고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아보면 음악에 집중하게 되고,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졌다. 아카데미에 가서 강습을 듣는 날은 아쉽게도 매주 한 번 밖에 안 되었기에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할 뿐이었다. 탱고를 출 때면 난 자유로웠다. 

물론 때때로 명상을 하며 그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시물레이션 하는 시간도 가지긴 했지만 그럴수록 명상에 집중하기보단 잡념이 많아져 오히려 머리가 더 아파졌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다. 아침 시간을 제외한 시간에는 더 이상 명상을 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시간들을 쪼개어 탱고 음악을 찾아 듣고, 영상을 찾아보는 시간이 늘게 됐다. 그렇게 탱고에 스며들어갔다.

 

하지만 항상 혼자 연습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혼자서 탱고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아쉬움이 커져갔다. 이제 겨우 한 달을 조금 넘긴 사람이 탱고 동작을 얼마나 알겠는가. 영상 속 댄서들의 알 수 없지만 멋있는 동작들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때때로 그 동작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혼자서 연습을 할 때도 있었지만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탱고는 함께 추는 춤이었기에 혼자서는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함께 춤을 추며 느끼는 그 충만감이 필요했다. 그 충만감에 대한 욕구가 커서였을까. 매주 금요일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한 주가 시작되면 금요일에 대한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특히 금요일이면 그녀와 함께 춤을 출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강습이 시작되면 돌아가면서 파트너를 잡기 때문에  온전히 그녀와 춤을 출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아브라소를 하고 춤을 추면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충족감 같은 것이 있었다. 박자에 맞아떨어지는 우리의 걸음과 얼마 되지 않은 동작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춤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때면 어지러운 세간의 일들이 잊어지는 듯했다. 오늘도 다행히 강습이 있는 날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 거리는 듯했다. 떨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며 수업에 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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