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희범 Apr 26. 2024

메디아 루나 - 살리다 7

그는 잠시 기다리라는 듯이 손바닥을 보이며 나를 진정시켰다. 전화를 하는 중이었기에 나도 더 이상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를 기다렸다. 잠시 후 전화가 끝났고 그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사장에게 소리쳤다. 


"사장님, 이건 아니잖아요. 뻔히 사정을 알면서 이런 일을 배정해 주시면 어떻게 해요?"

조금은 커진 목소리로 쏘아대듯 말했다. 


"다짜고짜 무슨 말이야, 제대로 설명해 봐."

언짢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지훈이 형! 형이 여기에 불러서 일을 하게 해 준 건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일을 주시면 어떻게 해요. 제가 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하필 접니까?"


"하, 아진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네가 지금 일을 가릴 처지냐?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는 형이라고 하지 말랬지, 이런 말 하는 거 나라고 편하겠냐? 목소리 낮추고."


"아니 그러니까 제가 이런 소리 안 하게 이런 건 미리 사장님 선에서 정리해 주실 수 있었잖아요."


"아진아, 일단 진정하고 앉아봐. 설명해 줄 테니까."

지훈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소파를 가리켰다. 


지훈의 말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머리로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지훈의 말에 따라 소파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지훈이 물 한잔을 따라줬다. 차가운 물을 한 잔을 마시고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뱉었다. 조금은 진정이 된 듯한 모습을 확인하고 지훈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진아 물론 내가 네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피하고 지낼 거냐. 세상은 생각보다 좁아 만나기 싫다고 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여기서 종교에 가장 밝은 게 누구냐, 너랑 나겠지? 그러니까 나도 이런 일들을 받아오는 거고, 이런 일들이 있다는 걸 알고 들어왔잖아. 언제까지 어리광 피울 거냐. 직장인이 일을 가릴 수 있을 거 같아? 애초에 일을 하기 싫다고 사장실로 들이닥치는 게 일반적인 건 아니다. 그러니까 두말하지 말고 이건 네가 맡아서 해. 조만간 자리 마련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지훈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반론을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 더 그의 말에 토를 달며 반론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잘해보겠다는 말을 하고 사장실을 나왔다.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에 더 이상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라  안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 감정에 못 이겨서 저지른 일이었는데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회사 사람들의 눈치가 보였다. 빠르게 사장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어쩐지 눈이 충혈되어 있는 것 같았다. 


손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하고, 자리로 돌아와서 앉아 다시 한번 이름들을 확인했다. 젊은 종교인들의 고민상담을 에피소드로 하는 에세이에 대한 기획이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천주교, 김수호 바오로 신부, 그리고... 자윤 교무님. 기획서를 뚫어지게 보다가 머리가 뜨거워져서 덮어버렸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인연이란 참 무서운 것이었다. 만남이란 만나고 싶다고 만나는 것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만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만날 거라면 애초에 떨어지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모든 걸 피해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오늘 저녁 탱고 수업 알람이었다. 


"생각이 많을 때는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게 답이지."

마치 답을 찾았다는 듯 혼잣말을 하고선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작가의 이전글 메디아 루나 - 살리다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