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ada 1
사카다(Sacada) - 누구에게나 뺏기고 싶지 않은 영역들이 있다.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이 때론 당신을 아프게 할지 모르지만, 멈출 수 없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줄 것이기에.
밀롱가에 들어서자, 탱고 음악이 무섭게 우리를 덮쳐왔다. 스피커 너머로 울려 퍼지는 음악이 마치 우리를 압도하는 듯했다. 단지 공간이 바뀌었을 뿐인데,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루크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바(bar)가 있었고, 호스트로 보이는 이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루크는 자신감 넘치게 걸어가 그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그들 역시 루크를 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루크의 모습이 어딘가 인위적으로 보였지만,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엘리아나도 조금은 경직된 표정으로 그의 안내를 따르고 있었다. 긴장한 듯한 우리를 보더니 루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뭘 그렇게 긴장하냐며 어깨를 쳤다. 그런 그의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분위기를 풀려던 의도는 알겠지만, 오히려 더 불편했다. 그는 입장료를 지불하라며 큐알 코드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는 큐알 코드를 촬영해 카카오페이로 입장료를 지불했고, 간단한 확인 절차 후 호스트는 닉네임과 성별 등을 기록했다. 입장이 끝나자,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루크는 우리를 춤추는 공간으로 안내했다. 플로어에는 수많은 남녀가 론다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저 가운데를 론다(Ronda)라고 해요. 론다에서 춤을 출 때는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딪히지 않으려고 각자 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죠. 그게 밀롱가의 매력이에요. 이제 편하게 나가서 춤추시면 됩니다. 나가실 때는 눈짓으로 신호를 주는 걸 잊지 마세요."
말을 마친 루크는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우리를 두고 자리를 떴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까베세오(Cabeceo)를 하기 위해 어느 여성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몇 마디 나눈 뒤, 곧 그녀와 함께 론다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그 공간에 완전히 녹아든 듯 자연스러웠다. 그는 몇 마디 나누더니, 곧 그 여성과 함께 론다로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루크의 몸짓은 이 공간에 완전히 녹아든 듯 보였다. 그는 당연한 그 흐름 속에 있었다.
반면, 엘리아나와 나는 그저 멀뚱히 서서 밀롱가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이런 곳이 홍대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어요."
내부를 둘러보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할머니 밀롱가 이야기를 하셨을 때, 정말 그런 곳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정말 있네요. 신기해요. 서울에 이런 장소가 있을 줄이야. 무슨 동화 속에 나오는 파티 같네요."
엘리아나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춤을 위한 공간이 중심에 뚫려 있고, 테이블이 론다를 감싸듯 배치되어 있네요. 모두를 위한 무대 같아요. 이곳에선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겠죠."
그녀에게 말하면서 감상에 젖어 춤추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그들의 춤은 무언가 달랐다. 마치 그 공간 안에서만 허용된,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춤을 추지 않는 이곳과 음악에 빠져있는 저곳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즐겁게 할까? 그들은 모든 걸 잊고 온전히 춤에만 몰입하고 있었다. 내 삶에서도 저렇게 온전히 몰입했던 순간은 없었다.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춤을 추며 완전히 몰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조용히 옆에 서 있는 엘리아나를 바라다. 그녀도 아무 말 없이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나와 같은 열망이 느껴졌다.
"계속 서 있을 수 없으니, 저쪽에 앉을까요?"
론다에 시선을 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하며, 빈자리를 찾아 함께 앉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탱고를 구경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몸으로 풀어내는 듯, 그들의 춤은 무언의 대화 같았다. 음악과 춤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게 만드는 그들만의 대화.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들 속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탱고 음악이 끝나고 팝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치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을 떠나듯, 하나둘씩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의 순간이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시간 같았다.
춤이 끝나자 루크는 자신과 함께 춤을 추던 여성을 자리로 안내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그들은 만족한 것 같았다. 인사를 마치고 나서, 루크는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쉬는 시간이 따로 있나 보네요."
엘리아나가 다가온 루크에게 물었다.
맞아요. 이런 음악이 나오면 쉬는 시간이에요. 보통 이걸 꼬르띠나(Cortina)라고 하죠. 1분 정도 팝송이 흐르다가 다시 탱고가 시작돼요. 다음 딴따(Tanda) 땐 춤추셔야죠?"
"딴따요? 딴따가 뭐죠?"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루크에게 질문했다. 루크는 잠시 내쪽을 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데이빗 님은 배운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 모르실 수 있겠어요. 딴따는 탱고 음악 세트예요. 보통 네 곡이 한 세트로 나오죠. 그래서 춤을 신청할 때 '한 딴따 추실래요?'라고 묻기도 해요."
루크가 친절하게 설명하며 엘리아나를 바라봤다. 질문은 내가 했는데도 그녀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엘리아나도 잘 몰랐었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이어서 밀롱가에서 어떤 음악이 선호되는지, 발스와 밀롱가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팝송이 끝나고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음 딴따는 루크의 말대로 발스(Vals)였다.
"어, 이거 발스다!"
엘리아나는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몹시 흥분된 목소리였다.
"발스를 좋아하시나 봐요? 저도 발스 좋아해요. 특히 'Desde el Alma'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죠. 뿌글리에세 악단의 연주가 최고예요. 혹시 발스를 좋아하시면, 저랑 한 곡 추실래요?"
루크는 마치 엄청난 우연을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춤 신청을 했다. 그녀는 그의 제안에 솔깃한 듯했다. 그러나 어쩐지 섣불리 하겠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녀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숨을 들이마신 뒤, 그에게 말했다.
"저도 밀롱가에서 춤을 추고 싶긴 한데, 제가 잘 못 춰서…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리드할게요. 그냥 제 리드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첫 밀롱가에서의 첫 춤이라니, 영광이네요."
루크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살짝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론다로 향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보였다. 루크는 능숙하게 그녀를 아브라소로 이끌었다.
나는 조용히 앉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점점 크게 들리는 듯했고, 잠시 눈을 감았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음악 때문에 눈이 피로한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어둠과 함께 음악이 몰려왔다. 그가 말한 'Desde el Alma'라는 노래의 제목을 떠올렸다. 이 노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상해 봤다.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