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cada 2
눈을 감고 음악에 집중하고 있던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인기척에 눈을 떠 돌아보니, 에밀리아가 신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이빗 님, 배운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 그렇죠. 이제 막 반년이 되어가... 죠?"
"와, 그런데 벌써 밀롱가에 오셨다니! 용기 대단하시네요."
그녀가 엄지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왠지 부끄러워져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의 장소라는 걸 알았다면, 초보가 오는 곳이 아니란 걸 알았다면,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아나를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걸 무시하고 밀롱가에 들어섰지만,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주눅 들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어? 귀 빨개졌어요."
에밀리아가 웃으며 내 귓불을 가볍게 잡았다. 깜짝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리며 그녀의 손길을 피했다. 귓가에는 아직 그녀의 손끝 감촉이 남아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제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너무 긴장하신 거 아니에요? 긴장 좀 푸세요."
그녀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평소 수업에서와는 다른 거리감에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뵈어서 그런가 봐요. 저도 모르게 긴장했네요."
"그럴 수 있죠. 반가워서 그랬다고 생각할게요. 그런데 밀롱가는 자주 오세요? 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나를 가볍게 밀어내며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녀와 조금 떨어지며 발스에 맞춰 춤추고 있는 엘리아나 쪽을 살폈다. 그녀는 루크와 함께 웃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엘리아나 님이랑 같이 오셨나 봐요? 루크랑 춤추고 있는 거 보니, 루크도 같이 왔고요?"
"네. 루크 님이 한 번 와보라고 해서 같이 왔어요."
"오호, 루크의 작품이군요. 그런데 너무하네요. 데이빗 님을 혼자 두고 둘이 춤추러 가다니."
"괜찮아요.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지금 몇 번째 곡이에요?"
"이제 막 첫 곡이 끝난 것 같아요."
"그럼, 다음 곡에 저랑 한번 춰보실래요?"
에밀리아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망설여졌다. 이곳에서 춤을 출 자신이 없었다. 실수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됐다. 그걸 눈치챘는지, 에밀리아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이미 들어왔는데, 뭘 망설이세요. 제가 있잖아요. 저기 저 중앙에서 연습이라 생각하고 저랑 해봐요."
그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손을 잡아 론다 중앙으로 이끌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서 있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아브라소를 잡았다. 에밀리아는 보란 듯이 상체를 밀착시켰다.
"좁은 밀롱가에서는 원래 이렇게 추는 거예요."
그녀가 내 귓가에 속삭이며 등을 두드렸다. 그녀의 행동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긴장 탓에 음악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귀에는 내 심장 소리만 울려 퍼졌다. 결국 두 곡이 지나가도록 스텝도, 리듬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세 번째 곡이 끝나고 팝송이 흐르자,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나를 향해, 에밀리아가 다가와 포옹했다.
"잘하셨어요. 밀롱가에서의 첫 춤을 축하드려요."
그런 그녀의 말에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마침 루크와 엘리아나도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을 만든 원흉이 루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곳에 있다가는 더 큰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자리에 돌아오자 에밀리아는 엘리아나와 루크에게 인사했다. 루크도 에밀리아를 보며 반가운 듯 인사했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졌지만, 곧바로 무시했다. 어느새 에밀리아는 일행처럼 우리 자리에 앉아 함께 시간을 가졌다. 웃고 떠들며,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편해 보이고 재밌어 보였다. 나만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데이빗 님, 괜찮으세요?"
엘리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 오늘 일이 많아서 그런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네요."
"밀롱가가 처음이라 긴장하신 것 같은데요?"
루크가 끼어들며 말을 보탰다.
"그런 건 아닌데, 약간 피곤하긴 하네요."
"혹시 아신 건 아니죠?"
엘리아나가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감기라기보다는, 아마 루크 님 말대로 긴장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이, 설마 일찍 가실 건 아니죠? 데이빗 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크가 장난스럽게 물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 말에 엘리아나도 깜짝 놀라며 물었다.
"벌써 가실 거예요? 이제 막 들어왔는데?"
"아니요, 그럴 리가요. 춤은 추지 않더라도 앉아 있을 겁니다. 아직 파트너가 남아 있으니까요."
파트너란 말에 루크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 두 분이서 파트너십을 계속하기로 하신 거예요?"
"네, 그렇게 됐어요. 앞으로 함께 탱고를 더 열심히 배워보려고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이 타이밍에 파트너십이라는 건…, 혹시 두 분 대회 준비 중이신 건가요?"
루크의 말에 속이 뒤틀렸지만, 담담하게 대답했다.
"엘리아나 님 제안으로 함께 준비해 보기로 했어요.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잘 됐네요. 그럼 두 분 뉴스타 부분 나가시는 건가요?"
이번엔 에밀리아가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저희는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니까요."
엘리아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에밀리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다.
"데이빗 님이 키가 크시고 다리가 길어서, 피스타(탱고) 부분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두 분 키도 잘 맞고, 정말 잘 어울리세요."
에밀리아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응원 부탁드려요. 선배님들의 조언도 기대하겠습니다."
엘리아나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잠시 두 사람의 표정이 어딘가 묘하게 흔들렸다.
"두 분은 대회에 안 나가세요? 뉴스타 같은?"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그들에게 물었다.
"뉴스타... 그립네요. 전 출전 자격이 안 돼요. 시작한 지 3년이 넘어서요."
루크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루크 님, 뉴스타 2등 출신이에요. 꽤 자랑할 만하죠."
에밀리아가 웃자, 루크는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둘은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다.
그들의 웃음 사이, 엘리아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에밀리아의 말에 그녀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