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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May 14. 2018

봄에 보는 눈, 5월에 걷는 눈의 장벽

일본의 알프스 다테야마 알펜루트




연휴가 되었고, 3일이 생겨 버렸다.

‘여행이 가고 싶다.’

3일 동안 갈 수 있는 여행지.

거리상 일본과 중국 정도가 전부다.

문득 언젠가 사진에서 본 설경이 떠올랐다.

일본의 알프스, 다테야마 알펜루트.

설벽에 둘러싸인 풍경이 스쳤다.

연휴가 휴가의 전부인 친구들을 모았다.

비행기표를 사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5월 5일에 눈 속으로 떠났다.



# 도야마? 거기가 어디?

일본의 눈이라 말하면 삿포로의 혹독한 겨울이나

혹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속 니가타가 떠오르기 쉽다.

그에 비교해 도야마의 지명도는 크지 않다.

하지만 도야마엔 눈 이상의 풍경이 있다.

단순히 눈이 많이 오거나 쌓이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벽이 만들어진다.

여기까지도 특별한 게 아니다.

도야마성의 야경.

도야마 설벽은 4월에 생긴다.

지구 반대편도 아닌 비행기로 2시간 거리, 가장 가까운 해외인 일본의 봄에 눈이 쌓인다니.

이 눈을 따라가는 관광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었다.

그리고 2018년의 5월에 나는 도야마에 도착했다.

일본이 늘 그렇듯 처음엔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 기다렸다.

도야마 공항에 도착!

일본에 처음 온 친구는 작은 차들이 즐비한 도로가 귀여운 모양이었으나 나에겐 버스 밖으로 만년설만 보였다.

멀리 가야지만 눈 쌓인 산이 있는 줄 알았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이미 설국이 시작되었다.

농사가 시작되어 물이 가득 찬 논 멀리 보이는 눈 쌓인 산.

언제나 보던 풍경에 이질적인 존재가 박혀 있었다.

일상 속에 박혀 있는 특별함이라니 이 얼마나 설레는 순간인가.

처음은 아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들.

나는 이때부터 눈을 기대했다.

도야마 시내에는 트램이 돌아다닌다. 귀엽다.

다음날 도야마역에서 다테야마 알펜루트를 시작했다.

설벽과 주변을 감상하는 이 코스는 보통 도야마역에서 시작하고 하루를 꼬박 쓴다.

하지만 연휴에 몰리는 사람들과 나의 저질 체력을 감안하여 그냥 조금 늦게 출발해서 반만 보는 방식을 택했다.

어차피 내 목적은 눈.

그렇다면 구로베 댐은 버린다.

눈 녹은 것이 물인데 물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쪼고만 덴테츠도야마역에서 알펜루트를 시작한다


# 알펜루트의 시작

도야마역에서 표를 사고 줄을 섰더니 금세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줄이 길어진다.

이 시기 도야마를 찾는 사람들이란 목적지가 하나이기 마련이다.

바로 옆 도야마역에는 신칸센이 달리는데 여기 덴테츠도야마역에는 지극히 오래된 지방철도가 기다린다.

기차는 매우 덜컹거리고 시끄러웠으며 에어컨에서는 냄새가 났다.

평소라면 짜증부터 나겠지만 기대감이 더 컸다.

친구는 어느새 잠들었지만 나는 기차 밖으로 보이는 청명한 풍경을 포기할 수 없었다.

미세먼지에서 자유로운 고장의 논에는 모내기 철이라 물이 찼는데 논 설산이 비쳤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도, 물에 비치는 산도 모두 환상 같았다.

허름한 역을 지난 기차는 어느새 숲속을 달렸다.

기차를 타고 가는 길 풍경

기차역과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고 거기서 또 버스를 타야 눈의 세계 ‘무로도’에 들어간다.

버스를 타고 산에 올라가는 길에 나무 근처 흙에 뭔가 하얀 것이 뿌려져 있다.

땅에 소금을 흩뿌려 둔듯한 풍경이다.

무엇인가 싶었는데 올라가다보니 정체를 알겠다.

눈이다...

이미 나는 5월에 눈이 남아 있을 정도로 높은 곳이었다.

산 중턱 쯤엔 눈이 많이 녹아서 눈 사이로 풀이 보인다


좁은 산길을 달리는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커브를 돈다.

말이 커브지 거의 유턴을 반복하는 수준이다.

소금인 줄 알았던 하얀 것들은 버스가 길을 급하게 꺾을수록 높이가 높아진다.

점점 눈이 쌓이더니 정말 벽이라 할만한 풍경이 시작된다.

도착했을 때쯤 눈은 버스의 두 배 높이쯤으로 쌓였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눈길도 아닌 눈벽을 걷고 있다.

온통 하얀 풍경 속에는 햇빛만 들어왔고 선글라스 없이는 걷기 힘들다.

눈벽에 낙서를 하며 따라가니 15m라는 간판이 보이는 도보로 이동 가능한 끝이 보인다.

눈이 이토록 하얀 것이었는지, 빛나는 것이었는지 다시 알게 된다.

무로도의 전경

눈.

눈이 내리는 순간, 눈이 쌓인 길, 눈이 만든 세상 모두 봤지만 눈의 벽은 처음이다.

켜켜이 쌓인 눈이 크레이프 케이크 같다.

이 풍경을 케이크처럼 잘라 먹고 싶다.

꼭꼭 씹어 내 머릿 속, 기억 속, 추억 속에 달달하게 넣어두고 싶다.

태어나 눈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 속을 걸었다.

내려가는 길에 밖을 보다 갑자기 뭔가 이질적인 것이 보인다.

다가가니 곰이다.

설벽 위에서 곰이 걸어가고 있다.

대체 얼마나 자연 그대로이기에 곰이 걸어가고 있는가.

이 정도면 곰알바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황당했다.

15미터짜리 설벽 사이를 걸을 것도 비현실적인데 그 위를 걷는 곰이라니.

여행의 목적이 현실을 떠나는 것이라면 나는 확실히 목적을 달성했다.

여기 도야마, 설벽에서.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 가운데 점 두개가 곰!



# 도야마 여행 팁
-구로베까지 가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하루 만에 보기엔 빠듯하다. 시간이 있다면 1박 이상하면서 온천에서 하루 자며 여유롭게 경치를 보면 정말 멋진 여행 코스가 될 것 같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사람이 많아서 대기 시간이 매우 길다. 1년 중 2~3달만 보는 풍경이라 관광객이 몰린다. 계속 교통수단을 바꿔 타야 하는데 그때마다 기다리기 때문에 혼잡한 날은 구로베까지 가려면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알펜루트 공식 홈페이지에 혼잡예상도가 있으니 참고하자.
-지점마다 기념품점이 있는데 구매는 밑에 내려와서 하자. 가격과 종류는 똑같은데 위에서 사서 내려오면 들고 다니기 힘들다.
-알펜루트를 통과하기 위한 교통수단을 주제로 한 기념품이 많다. 각 교통수단의 배지, 교통편을 그린 케이크 원통형 케이크, 맥주 등 지역에서만 구입 가능한 것들이 있다.
-눈이 녹는 과정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벽은 눈이지만 바닥은 물이다. 장화를 신는 사람도 있지만 번거로우니 양말 정도를 챙기면 좋다.
-구로베까지 가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하루 만에 보기엔 빠듯하다. 시간이 있다면 1박 이상하면서 온천에서 하루 자며 여유롭게 경치를 보면 정말 멋진 여행 코스가 될 것 같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사람이 많아서 대기 시간이 매우 길다. 1년 중 2~3달만 보는 풍경이라 관광객이 몰린다. 계속 교통수단을 바꿔 타야 하는데 그때마다 기다리기 때문에 혼잡한 날은 구로베까지 가려면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알펜루트 공식 홈페이지에 혼잡예상도가 있으니 참고하자.
-지점마다 기념품점이 있는데 구매는 밑에 내려와서 하자. 가격과 종류는 똑같은데 위에서 사서 내려오면 들고 다니기 힘들다.기념품 내용은 알펜루트를 통과하기 위한 교통수단을 주제로 한 기념품이 많다. 각 교통수단의 배지, 교통편을 그린 케이크 원통형 케이크, 맥주 등 지역에서만 구입 가능한 것들이 있다.
도야마 기념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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