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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Nov 10. 2017

규슈 축제 이야기 2

일본의 축제 '사가 벌룬 페스타'

# 사가 국제 벌룬 페스타 (佐賀インターナショナル・バルーンフェスタ)
100기 이상의 열기구팀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열기구 국제대회다. 수많은 열기구가 푸른 하늘 위로 한꺼번에 솟아오르는 장면이 압권이다. 인기 캐릭터 모양의 벌룬이 전시되는 벌룬 판타지아도 있고, 어둠 속에서 음악에 맞춰 열기구의 불을 뿜어 반짝거리는 캐릭터 벌룬을 볼 수 있는 야간계류도 펼쳐진다. 많은 방문객이 찾는 행사이기 때문에 논밭 한가운데 벌룬사가역이라는 임시역을 설치해서 축제 동안 행사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기차가 다닌다.


드디어 사가로 가는 기차에 탔다.

첫차가 다니기 전이라 새벽길을 20분 정도 걸었다.

그래도 벌룬을 생각하면 즐겁다.

무사히 기차에 타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자다 일어나 커튼을 열었더니 하늘에 벌룬이 있다!

멀리서 봐야 더 예쁘다, 벌룬이 그렇다

벌룬 자체가 꿈, 희망 같은 심볼이다.

한, 미, 일 드라마를 비교하는 농담 중 한드는 쓸데없이 흥분, 미드는 쓸데없이 진지, 일드는 쓸데없이 열심히 한다는 말이 있다.

일본의 감성이 감동, 교훈, 꿈, 희망을 좋아하기 때문 같다.

벌룬이란 그런 일본의 국민성과 참 잘 어울린다.

첫 레이스가 끝난 뒤 벌룬판타지아 순서

이미 벌룬 레이스가 한창인 시간에 방문한 나는 기차에서 황홀한 광경을 봤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 커다란 풍선이 떠 있다.

판타지 세계나 공상과학적 동화 속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들뜬 마음이 한 번에 가라앉은 건 기차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인파 덕이다.

내가 방문한 날은 축제의 마지막 날이자 일요일(이날이 제일 많은 볼거리가 있는 날이라 개막식을 포기하고 마지막 날에 갔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축제 현장에 모여 있는 것 같다.

기차보다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이 훨씬 많다.

길면 기차가 아니라 길면 기차 기다리는 줄로 노래 가사를 바꿔야겠다.

전부 포장마차인데 이보다 많은 포장마차가 반대쪽에 또 있다

기차에서 내리면 왼쪽은 열기구를 계류하는 장소고 오른쪽은 야타이(포장마차)다.

이 야타이의 끝이 어디인지 확인을 못 했다.

10분 넘게 사람에 치이면서 앞으로 가봤지만 끝을 못 찾았을 정도로 많다.

제일 푸짐해 보이는 야끼소바를 서 벌룬이 가까운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 옆에 앉아 야끼소바를 먹으며 벌룬 판타지아를 봤다.

열기구가 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야끼소바를 다 먹었을 쯤에서야 모든 풍선이 형태를 갖췄다.

강변을 따라 쭉 걸어가니 갖가지 캐릭터 벌룬이 보인다.

사가의 특산물 사가규, 일본의 신 에비스, 포켓몬 나옹이, 톰과 제리의 제리 등등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

흥분한 어린아이들이 지르는 순수한 소리가 들린다.

열기구로 유명한 카파도키아의 열기구가 타기 위한 것이라면, 사가의 벌룬은 보기 위한 것이다.

카파도키아에선 기괴한 땅의 모습을 하늘에서 보기 위한 목적이지만 사가에서는 하늘의 벌룬을 본다.

그렇다 보니 실용성보다는 디자인에 신경 쓴 열기구들도 있다.

벌룬 판타지아는 특이한 모양의 벌룬이 모이기 때문에 벌룬 페스타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서 같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티셔츠를 겹쳐 입었지만 돗자리도 없이 잔디밭에 앉아 있기는 힘들다.

결국 호텔을 예약해둔 사가로 갔다.

사가로 돌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기차를 타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벌룬판타지아 이후로 오후 3시까지는 열기구를 띄우지 않기 때문에 행사장에 계속 있기는 무리다.

쓰러져 있던 벌룬이 뿅 일어서는 순간!

간신히 사가에 도착했더니 벌룬 페스타에 오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혼잡 그 자체다.

커피와 점심을 먹고 다시 벌룬사가역으로 갔다.

열기구들이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행사 중 마지막으로 열기구를 띄우는 순서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기대 중이다.

첫 번째 열기구가 올라가고 두 번째 세 번째 열기구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열기구 항해사가 손을 흔들어주자 관람객들도 모두 손을 흔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잔디밭에 누워서 레이스를 벌이는 열기구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햇빛 때문에 눈이 따갑지만 기분이 좋다.

레이스를 조금 보다 잠이 올 것 같아서 다시 사가에 돌아왔다.

호텔에 체크인한 뒤 조금 쉬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보러 다시 떠났다.

부풀어 오르던 열기구 하나가 불이 나서 찢어지는 중...

가장 기대했던 야간 계류엔 사람이 정말 많이 모였다.

전문 장비를 갖춘 카메라맨들은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 촬영을 준비하고 벌룬 가까운 자리엔 나 한 사람 들어갈 자리도 없이 빽빽하게 돗자리가 깔려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바람이 차오르는 벌룬을 봤다.

30분 넘게 마지막 벌룬까지 빵빵해지기를 기다렸다.

모든 벌룬이 완성되자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벌룬에 불이 켜진다.

재빠르게 열을 뿜어서 반짝반짝하는 효과를 만든다.

그냥 야간에 캐릭터 벌룬에 불을 켜놓는 줄만 알았는데 예상외의 강한 공격이다.

너무 예쁘다.

판타지적 상상력과 동화적 미학이 가미된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카메라를 안가지고 다니는 걸 후회한 순간...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날 때도 잔디밭 때문에 엉덩이가 젖어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평범한 열기구는 몇번 본 적 있지만 열기구로 이렇게 동화적인 풍경을 만든 건 처음 본다.

환상에 취해 하늘을 보니 별도 빛난다.

별과 달, 그보다 반짝이는 벌룬, 그 모든 것이 담긴 까만 밤.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축제 끝무렵엔 불꽃놀이도 한다
사가에 돌아가서는 시내의 라이트업 행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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