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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Jun 28. 2018

런던을 걷는 날

박물관에서 공원까지, 런던 구석구석 걷기

여행을 하다 보면 생각 없이, 정처 없이 걷게 되는 날이 있다. 런던에서는 유독 그런 시간이 많았다. 영국박물관에서 하이드파크까지 관광지를 지나 구석구석까지 참 많이도 걸었다.


# 영, 재미없던 영국박물관

영국박물관은 영국의 상징이자 재산이다.

그 설립 과정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는 할말하않이지만.

다만 대영박물관이라는 말 대신 영국박물관이라 말하는 것으로 생각을 압축해서 대신해본다.

(한마디만 더하자면 영국이 영국박물관에 입장료를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런던에 가서 영국박물관을 안 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실제로 사람이 많다.

다만 영국박물관은 루브르나 바티칸 박물관에 비하면 매력도가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

근처의 내셔널갤러리는 갤러리이기 때문에 유명한 그림이 많고, 루브르박물관은 모나리자라는 불멸의 대표작이 있다.

반면 여기는 유물 위주의 박물관이라 고고학 쪽에 관심 없는 나한테는 쥐약이다.

전시물에 의문도 많이 든다.

대표 전시실인 미라관에서는 왜 시체와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구석 자리에 있는 한국관은 빈약하며, 그리스와 이집트 전시품은 원래 자리를 벗어난 탓에 모조품 같아 보인다. 

보는데 1년도 넘게 걸린다는 박물관이지만 별 재미없이 일찍 나왔다.


# 신에게 가는 계단

세인트폴성당으로 간다.

유럽 도시의 상징과 과거의 권세를 짐작하려면 역시 성당을 봐야 한다.

옛날처럼 성당에 신을 만나러 가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하나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서의 가치는 있다.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세인트폴은 사실 성당보다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식장이나 처칠의 장례식장 등 공사가 다망한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건 환상 속의 세인트폴이다.

직접 다녀온 사람이라면 결혼식의 로맨틱함이 아닌 다른 것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세인트폴의 외관은 꽤 고풍스럽다.

바로 계단.

세인트폴의 외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돔에는 전망대가 있다.

그러나 중세 느낌 그대로 걸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런던의 중심에서 도시를 조망 할 수 있지만 가기까지가 좀 험하다.

그래도 유럽의 다른 성당들에 비하면 등산 난이도는 낮은 편이다.

사실 전망대까지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작은 입구가 있고 사람들이 들어가기에 생각 없이 따라갔는데 가다 보니 이상하다.

알고 보니 전망대 입구였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

이정도 큰 성당에 처음 와보는 터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올라갔다.

설마 계단이 수백 개인 줄은 몰랐다. 

막상 올라가다 보니 오기도 생기고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끝까지 갔다.

덕분에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이 보여주는 예상치 못한 런던을 만났다.

전망대에서 보는 런던도 아름답지만 나는 중간에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성당 내부가 좋았다.

세인트폴은 다른 성당들보다 조금 더 단정하고 단아하다.

조각상의 시선과 울리는 오르간 소리가 그 커다란 성당에 그득하다.

돔의 중간에서 360도로 보이는 성당은 더 입체적이고 성스럽다.

왕가가 있는 나라라는 편견이 있어서인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꼭대기에서는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을, 건물 안에서는 인간을 위한 기도를, 지하에서는 죽은 이들의 안식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세인트폴성당이다.

세인트폴성당에서 보는 런던, 런던아이도 보인다


# 런던 산책

성당에서 나와 돔에서 봤던 방향을 따라 걸으니 런던브리지다.

이 한강대교 반도 못 되는 다리가 유명한 관광지라는 사실이 참 황당하지만 걷다 보니 런던브리지는 다리를 보는 곳이 아니라 주변을 산책하는 곳이구나 싶다.

런던브리지까지 가면서 템스강 주변을 산책하고 이런저런 건물을 보는 재미가 있다.

런던브리지! 라고 써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런던탑이다.

레고 광고에서 많이 본듯한 모양이다.

생각보다 귀여운 생김새인데 세인트폴 전망대를 올라갔다 왔더니 안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그냥 밖의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많이 귀여워하기로 한다.

온종일 걷다 앉았더니 어딘가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다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하이드파크다.

해지는 런던의 공원

잔디밭에 누워 런던답지 못한 햇빛을 받고 있으니 옆으로 다람쥐가 한 마리 나타난다.

영국박물관부터 커다란 성당까지 잘나가던 영국의 모습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하루의 끝에서 등장하는 건 작은 동물이다.

갑자기 도시에서 자연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점차 어두워지는 런던의 하늘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런던의 진짜 모습은 커다란 건물들일까, 아니면 풀밭에서 노는 사람들일까?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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