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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Jul 15. 2018

시간을 느끼는 시간

시간이 시작되는 곳, 그리니치 천문대

과거 영국의 권세를 딱 한가지로 표현한다면 그건 그리니치 천문대가 아닐까? 전 세계의 시간까지 지배하던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


# 커티삭역에 내려 커티삭에 가면 커티삭 범선이 있다네

영국과 차(Tea)의 관계를 구구절절 말해서 무엇할까.

그냥 영국 국민들이 하루에 소비하는 티가 165백만 컵이라는 한마디면 되지 않을까?

이런 홍차의 역사를 짐작 할 수 있는 것이 ‘커티삭(Cutty Sark) 범선’이다.

커티삭역에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만나는 이 범선은 중국과의 차 무역에 이용했던 배다.

영국인들은 커티사의 역사를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이 배를 전시하고 있다.

전 세계를 주름잡던 과거가 담겨 있으니 자부심 느낄 만 하다.

커티삭 범선!

이런 배 한 척이 오갔다는 이유로 시대가 바뀌고 사건이 벌어졌다.

배는 확실히 크지만 그 시절의 거대한 역사를 담기엔 작아 보인다.

역사가 크다고 그 잔재까지 커다랗지는 않은가보다.

커티삭역 주변


# 천문대도 식후경

커티삭 주변을 맴돌다 그리니치마켓에 갔다.

런던 시내의 마켓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먹을 것이 많다고 들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규모지만 한쪽에 늘어선 먹거리는 침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소문대로 음식의 국적이 아주 다양하다.

그리니치마켓

뭘 먹을지 고민하다 커다란 딤섬에 눈길이 간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만두 모양의 음식이 맛없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진짜 중국인들이 바쁘게 만들고 있는 딤섬이라니!

기대하며 중국 만두를 샀다.

하지만 여긴 영국이었다.

고든램지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화를 내는 건 맛없는 걸 너무 많이 먹어서 같다.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없는 만두를 먹었다.

이름 모를 채소와 속에 들어간 재료들이 거슬린다.

결국 하나밖에 못 먹고 버렸다.

영국음식 맛없다는 말이 이렇게 진실성 있는 말인 줄은 몰랐다.

끔찍했던 중국 만두...

영국 음식에 대해서 여러 썰들이 있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영국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맛이 없으면 억울하다.

비싼 가격도 더 맛없게 느끼는데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떨어진다.

결국 시장에서 이것저것 먹어보려던 계획은 접고 맥도날드로 갔다.

영국은 방대한 문화유산을 만들면서 왜 식문화에 대한 투자는 버렸을까.

영국이 식민지를 만들었던 이유가 먹을 것 때문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 시간의 중심에서 사람을 외치다

범선 커티삭이 있는 이곳의 역이름은 커티삭역이지만 보통 커티삭 하나를 보려고 커티삭에 오지는 않는다.

이곳의 진짜 주인공은 그리니치 천문대다.

시간의 중심점, 경도 0도가 바로 그리니치다.

‘GMT’라는 말 자체가 그리니치평균시라는 뜻이 아니던가.

런던 시내와 거리가 있는 곳임에도 꼭 오고 싶었던 이유다.

그리니치 공원을 지나면 그리니치 천문대가 나온다

그리니치 공원을 지나니 의외로 아담한 천문대가 나타난다.

물론 지금은 천문관측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박물관처럼 쓰인다.

안에는 온통 시간과 관련된 자료다.

경도 0도를 나타내는 라인부터 전 세계의 시간 위치를 설명하는 자료들, 그리고 온갖 시계가 있다.

그리니치 최고의 기념품은 시계다. 

서울 아래 시간에 발을 올려본다

그리니치와 서울의 경도를 찾아 경도 0도 위에서 사진을 찍어본다.

시간의 중심에 런던까지 오면서 너덜너덜해진 신발을 올려본다.

여행을 위해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걸어가며 런던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 한 달.

몇백 년 전 영국인들은 내가 왔던 길을 반대로 갔을 것이고 그 결과 이곳에 경도 0도, 시간의 중심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곳에 오니 자연스럽게 시간의 중심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된다.

‘대영제국(British Empire)’,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전 세계에 빈틈없이 식민지를 거느렸던 영국을 일컬어서 하는 말이다.

아직 왕실이 존재하고, 유럽연합에 들어 있던 시기에도 파운드를 포기하지 않았던 걸 보면 아직 그들의 생각이 자존심과 자만심 사이에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런던 곳곳에 남아 있는 방대한 문화의 흔적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쪽이 당연해 보이기는 한다.

거리 곳곳에 남은 건물과 근대화의 흔적, 영국박물관, 그리고 그리니치 왕립천문대.

세상의 중심을 만든 경험은 자존심을 세상의 가장 위로 올려두었다.

식민지였던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들이 식민지배의 자존심과 문화적 자부심을 잘 구분했으면 하는 자존감 부족한 마음이 조금은 생긴다.

식민지의 역사란 알면 알수록 인류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한반도에 사는 사람으로서 약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들의 역사를 볼 때 그들이 조금만 더 인류애를 가졌더라면 식민지란 없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낭만을 갖는 순간이 있다.

있을 리 없는 세상의 중심에 서보니 그런 생각들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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