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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Jul 31. 2018

베르사유의 나

궁전보다 아름다운 것

만화는 말 그대로 만화다. 현실에 등장할 수 없는 상상의 전유물. 만화 속의 것들은 상상 속에서나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런데 만화 속에 나오던 오스칼님의 궁전은 실존하며 심지어 만화에서 본 것보다 화려했다.


# 베르사유의 장미, 그리고 궁전

나에게 프랑스라는 건 말하자면 꿈의 도시였다(과거형).

스물셋이란 나이는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만한 나이였다.

파리 정도는 가봐야 여행 좀 해봤다고 말할 수 있으며 유럽여행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리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내 스물셋은 파리가 특별할 것 같은 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에게 있다는 '파리병'이라는 게 나에게도 조금 있었던 듯하다.

그 이유의 절반은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 때문이다.

베르사유 궁전!

초등학교 때쯤 베르사유의 장미를 봤다.

내 세대의 만화는 아니었지만 케이블 tv에서 방송해주는 그 애니메이션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흔들었다.

프랑스혁명을 알기도 전에 오스칼을 알았다.

(물론 초등학생의 시선으로 봤던 그 만화의 인물들의 실체를 알았을 때 동심은 와장창창이었다)

제목답게 애니메이션의 주 배경은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내 세대의 다른 만화들과는 다른 다소 투박한 그림에서도 화려함은 진하게 풍겼다.

나에겐 파리가 곧 유럽이었고, 유럽은 아주 화려한 곳이란 편견이 생겼다.

어린 시절에 생긴 고정관념이란 참 무서운 것이어서 파리에서 첫 일정은 당연히 베르사유 궁전 방문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하나 사들고 동화세계로 떠났다.

지하철역에서 산 오늘의 도시락. 나중에 넓은 정원에서 지친 입에 꾸겨 넣었다.


# 베르사유의 궁전? 베르사유의 정원!

베르사유는 궁전 이름이 아니라 도시 이름이다. 

파리 중심이 아닌 근교다.

RER 종점이기도 한 베르사유와의 첫 대면은 참 복잡했다.

부정할 수 없는 화려함 때문에 어릴 적 본 만화 생각이 나려다가도 많은 인파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유럽의 궁전의 표본다운 모습이다.

한 달 정도 유럽을 다니며 이런저런 건물을 봤지만 베르사유는 압도적이다.

죽 늘어선 줄이 무서워서 일단 정원으로 갔다.

그곳엔 베르사유궁전이 아닌 ‘베르사유’가 있었다.

일단 시작이 이정도

베르사유의 진가는 궁전이 아닌 정원에 있었다.

이 정도로 잘 가꿔진 정원이 있다는 건 반칙이다.

이런 정원을 매일 보고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불공평하다.

이런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한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아름다운 걸 보며 사는데 타인의 삶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만화 속 대사들이 이제야 이해 간다.

오스칼이 서민 소녀에게 베르사유를 보여주며 그런 말을 했다.

베르사유는 성이 아니라 도시라고.

그렇다.

기차를 타고 돌아봐야 할 정도로 넓은 정원과 별궁, 쭉 뻗은 운하, 말이 사는 초원까지 포함한 마을 일대가 전부 베르사유다.

역사적인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베르사유는 천국이다.

네모네모 멈뭄미가 있을 것 같은 엄청 공을 들인 베르사유 정원

반듯한 정원보다는 자연스러운 정원을 좋아하지만 베르사유는 예외다.

네모반듯한 나무 사이를 걷는데도 숲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궁전은 그냥 그 가운데 있는 건물에 불과하다.

여기는 참...

베르사유는 입을 다물게 만드는 곳이다.

어느 나라든지 왕과 궁전이 나오는 시대에 사치와 향락이 빠지는 일은 없다.

하지만 동양의 궁전에서는 사치까지는 보여도 향락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사치와 향락을 안 보이게 즐겨야 했던 문화 때문이리라.

자금성이야 워낙 규모가 커서 조금은 그렇게 느껴졌지만 동양 건축 특유의 평화로운 느낌 때문에 극단적인 향락이 보이지는 않았다.

경복궁에서 유희를 즐긴 흔적이라고 해봐야 한눈에 보이는 건 경회루 정도가 아니던가.

겨우 포석정에서 술 먹고 놀던 것을 사치라고 말했던 나의 수준을 되돌아보게 된다.

베르사유는 달랐다.

베르사유에서는 이 정도를 '소박'이라고 말한다...

궁전은 금빛으로 번쩍이고, 운하에서는 뱃놀이를 하고, 거울의 방에는 샹들리에가 흔들린다.

당시의 귀족들은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에서 그들이 사는 세상을 만든 거다.

왕은 모든 부와 아름다운 것들을 들고 파리를 떠나 베르사유로 갔다.

시민을 떠나고 국가를 버렸다.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건 민중이 아닌 왕이다.

물론 진짜 왕이 살던 시대의 물건은 사라지고 새로 채운 가구들이지만 충분히 당시 베르사유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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