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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Aug 11. 2018

네 개의 미술관, 파리를 속삭이다

파리에서 만난 미술관들

미술에 대단한 관심은 없다. 하지만 파리에서 미술관을 그냥 지나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뮤지엄패스를 샀고 이틀 동안 4개의 미술관을 갔다.


# 파리의 과거, 미래, 그리고 오늘

다른 사람들은 ‘파리’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생각나는지 궁금하다.

파리는 랜드마크를 하나만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것이 많다.

수많은 매스컴에서 파리를 낭만으로 포장한 대가다.

그래도 에펠탑, 샹젤리제, 루브르박물관 랜드마크 후보 1순위들 아닐까?

그중에서도 루브르는 입장이 힘들 정도의 명소다.

미술관과 어울리는지에 대해 말 많은 이 피라미드를 볼 때 루브르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큰 건물이 작아 보인다.

좀 짧은 줄이 있다고 하는데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아서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미술에 별 관심도 없는 내가 왜 줄을 서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오기로 기다렸다.

지금의 나라면 바로 나왔겠지만, 그때는 파리에 와서 루브르를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들어간 루브르는 생각과 많이 다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미술관임에도 작품감상 기능은 잃었다.

오디오가이드는 사람이 제일 많은 곳으로만 데려다주는 내비게이션 같다.

옛날에는 휴관일에 소그룹 투어가 있었다고 한다. 

몇천만원씩 들었다는데 미술에 관심과 돈이 모두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지금의 루브르는 사람에 가려 모나리자도 눈썹도 보기 힘든 관광지가 되었다.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비너스! 입장 초반에 봐서 거의 유일하게 집중해서 본 작품


# 두 개의 파리

루브르를 나와 센강을 걸었다.

낭만의 대명사지만 센강은 참 작다.

한강 규모에 비하면 신기할 정도다.

퐁네프다리를 지나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한참을 걸으니 퐁피두센터가 보인다.

중세 사람들이 이 건물을 봤다면 피라미드보다 더 신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외관부터 퐁피두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제법 볼거리가 많았던 퐁피두센터

건물 주변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루브르 근처보다 생기가 넘친다.

사람에 갇혀 답답했던 루브르보다는 퐁피두 주변의 지붕 없는 예술관 분위기가 더 좋다.

비록 퐁피두 안 현대미술관에 내가 아는 작가의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은 없지만 모나리자 얼굴 자리에 관광객 얼굴만 보이던 루브르보다 편하게 봤다.

퐁피두센터 앞

파리 안에는 과거의 파리, 오늘의 파리 두 개의 파리가 있다.

오전에는 고전의 끝인 루브르에 있었는데 오후에는 현대예술의 축을 이루는 퐁피두센터에 있다. 

같은 도시, 걸어서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전혀 다른 파리가 있다.

공존한다기보다는 두 구역이 잘 나뉘어 있다는 느낌이다.


# 기차와 그림의 마주침, 오르세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파리는 참 밋밋한 도시일지도 모른다.

관광지의 절반이 박물관과 미술관이다.

만약 미술에 관심은 없지만, 파리까지 왔으니 미술관 딱 하나만 보고 싶다면 답은 오르세다.

관심이 없어도 어디선가 스치듯 본 그림이 많다.

노트나 우산 같은 판촉물에 디자인으로 들어가는 명화의 상당수가 오르세에 있다.

무엇보다 미술관이 아름답다.

그림은 지루해도 건물은 보고 갈만하다.

기차역을 개조한 공간에서 독특한 느낌이 풍긴다.

상상 속에서 기차역이었던 흔적과 오늘의 미술관이 마주친다.

전시실이 가차라면 기차의 창문이었을 자리에 그림이 박혀 있다.

탑승할 기차가 도착하는 플랫폼을 찾아 다녔을 사람들이 이제는 그림을 찾아다닌다.

기차역까지 가족과 친구를 마중 나왔을 사람들은 이제 화가를 배웅하러 다닌다.

기차와 미술이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절묘하게 만난다.

미술관 중앙의 커다란 시계가 이 특별한 건물에 스친 모든 시간과 예술가들의 시간을 모두 말해주는 듯 떠있다.


# 정원이 아름다운 미술관

내가 가본 미술관 중에 제일 기억에 없고, 동시에 기억에 남는 미술관 같다.

길을 잘 못 찾아서 한국대사관까지 발견하고도 한참 헤매다 겨우 도착했다.

기억에 없는 이유는 작품이 별 재미가 없어서다.

작품 감상이란 게 여유 있게 천천히 봐야 하는 건데 매일같이 미술관을 돌아다녔더니 여기 쯤에선 더 이상 뭔가 보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게다가 조각은 그림보다 관심이 없는 분야다.

하지만 정원은 기억에 남는다.

붓으로 그린 그림만 보다 자연으로 그린 그림을 보니 평화가 찾아온다.

사람이 그린 그림은 보면서 최소한 '아름답다', '별로다'라는 생각은 해야 하는데 나무 앞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

며칠 동안 주구장창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얻은 결론이 ‘역시 사람 없는 나무 아래가 최고다.’ 라니.

좀 허망하지만 뭐 어떤가.

로댕의 작품을 뒤로 한 채 뜯어 먹는 빵 한 쪽이 너무나 맛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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