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운틴부터 포트스테판까지
나 혼자였다면 시드니 안에서 브런치를 먹다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샴페인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다 끝났겠지만 이번 여행은 엄마와 함께다.
엄마들의 여행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납득할 수 없다.
나에겐 늦잠도 일정이라는 걸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침 7시에 출발하는 투어를 예약했다.
블루마운틴투어와 포트스테판 투어는 사실 시드니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시드니 없는 시드니투어지만 이미 시드니관광코스다.
시드니에 오면 다들 하는 투어라 별생각 없이 신청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왜 패키지투어를 안다녔는지를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유럽에서 워킹투어는 종종 다녔지만 이렇게 대형 버스로 단체가 움직이는 관광은 참 오랜만이다.
소그룹 투어에 익숙해서 버스에 한 자리도 없이 꽉꽉 채운 투어는 참 낯설었다.
대형버스인데도 가이드 없이 운전기사 겸 가이드 한 명이 50명 넘는 인원을 통솔하니 인원체크도 잘 안되고 늘 시간이 부족하다.
모든 관광지는 오분 안에 둘러보고 나와야 한다.
심지어 운전 중에 종이를 넘기며 인원체크를 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은 호주에 와서도 안전에 둔감하다는 하는 생각을 했다.
블루마운틴도 돌고래가 헤엄치는 바다도 모두 좋았지만 제대로 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도... 호주의 자연은 좋았다.
이틀의 투어를 하면서 좋았다 나빴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비몽사몽 일어나서 시드니의 교통체증을 견디면 데이투어의 첫 번째 코스 블루마운틴에 도착한다.
첫 번째 포인트는 킹스테이블.
호주의 관광 가치관을 알게 된 장소다.
당연히 관광지다운 모습을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매표소 하나도 없는 단순한 장소에는 작은 간판 하나가 덜렁 있을 뿐 여기가 유명 관광지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시설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산길을 걸어 반대쪽 산이 잘 보이는 너른 바위에 오를 뿐이다.
억지로 만든 관광지가 아니다.
호주에서 자연은 모두의 것이라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노점상이 깔리는 우리의 관광지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야외에서 자리를 펴고 고생해가면서까지 돈을 벌려는 마인드가 없으니 노점도 없다.
그 뒤로 세자매봉과 시닉월드가 나왔지만 모두 우리나라처럼 야단스럽지는 않았다.
케이블카 같은 관광시설이 있었지만 모두 자연을 보기 위해 필요한 수준으로 시설이 절제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신비한 산과 숲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단체투어의 한계로 세자매봉 같은 곳은 볼 수 있는 시간이 10분도 주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세자매봉 같은 곳을 보고, 사진 찍고,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시간이 곽 10분.
조금 무리해도 렌트를 하거나 그냥 개별적으로 찾아서 여유롭게 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는 분명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온갖 신기한 생물을 다 볼 수 있다.
하지만 캥거루와 코알라가 시드니 길거리에서 비둘기 지나가듯 출몰하는 건 아니다.
깊은 자연으로 찾아가거나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시드니 근방엔 타롱가 동물원이 유명하고 크지만 여름 날씨에 엄마를 걷게 하면 화를 내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대신 투어 코스에 들어있는 작은 동물원에 갔다.
이름 없는 미니 동물원 수준이라 환경은 별로 안좋았지만 캥거루와 코알라 딩고 같은 호주에만 사는 특별한 녀석은 물론이고 펭귄까지 있는 꽤 알찬 구성이었다.
호주를 찾은 목적의 큰 부분이 동물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롭게 보고 싶었으나 단체투어의 특성상 관람시간이 1시간도 안됐다.
결국 시간 때문에 태즈매니아 데빌을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친구들을 꽤 많이 봤다.
여행사는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미 지불이 끝나서 다음날도 투어에 참여했다.
역시나 출발 과정이 마음에 안든다.
현지 여행사 중에선 규모가 제일 큰 것 같던데 손님을 무리하게 받은 탓인지 관리가 엉성했다.
가이드는 시간 맞춰 도착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바다에 도착했고 우리가 탈 배를 찾았다.
딱 봐도 제일 싼 배였다.
별 다른 설명을 듣지 못하고 배에 올라서 다들 좀 어리둥절하게 자리를 잡았다.
나도 한쪽에 앉아 돌고래를 보면 용서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돌고래는 우리 앞에 나타났다.
숫자는 적었지만 배 가까이까지 다가와 준 돌고래들과 인사를 나눴다.
돌고래와 인사를 나눈 뒤에는 배 옆에 달린 네트를 내려 수영장을 만들어준다.
큰 배는 크고 깊은 그물을 내릴 수 있지만 배가 작다 보니 얕은 그물을 내려서 수영장 같은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물에 대롱대롱 매달려 파도와 함께 나가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돌고래들은 매일 이렇게 물살을 가르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바다에 사는 포유류가 된 걸까?
내가 보지 못하는 조금 더 깊은 바다에 들어간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식사 후 잠깐 주어진 자유시간 동안 바다를 보면서 이 바다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했다.
남반구에 있지만 그냥 바다인데 왜 생소한 느낌이 드는지가 궁금했다.
답은 바다가 아닌 바다 주변에 있었다.
바다 자체는 평범하지만 호주의 바다에는 공원이 함께 있다.
정박한 요트들 옆에는 잔디밭과 놀이터가 있어서 포장마차가 있는 우리나라 해수욕장이나 파라솔이 있는 동남아의 휴양지 바다와는 다른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 차이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서 사람이 바글바글한 휴양지가 아닌 아이들이 노는 집 앞 놀이터와 같은 일상적인 풍경을 만든다.
그들에게 바다란 날 잡고, 맘 잡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 나와서 즐기는 공원의 일부다.
바다로 뛰어드는 그네를 가진 호주의 일상에 시샘이 났다.
오전에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소금기 가득한 몸을 이끌고 오후에는 사막의 모래 바람을 맞으러 갔다.
사막으로 불리는 포트스테판이다.
호주엔 진짜 사막도 있지만 포트스테판은 사막이 아니라 사막과 비슷한 풍경을 가진 바닷가다.
넓어서 사막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진짜 사막의 광활함이나 적막함은 흉내 내지 못한다.
호주에 오기 전 생각과 가장 큰 차이가 났던 곳이 여기다.
사진으로 볼 때는 다들 진짜 사막처럼 찍던데 실제로 보니 그냥 모래 사장 같다.
물론 해가 내리쬐는 날씨 덕에 진짜 사막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냥 조금 길고 넓은 바닷가다.
진짜 사막을 본 적이 없다면 충분히 사막처럼 즐길 수 있겠지만 진짜 사막을 본 적이 있어서 여기를 사막으로 인정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가짜 사막이지만 이곳에 오는 이유는 빨간 사륜구동 차를 타고 달려 나오는 모래 언덕에서 썰매를 타기 위해서다.
다들 여기서 판을 들고 언덕을 올라 썰매를 타는데 소문대로 힘들다.
고운 모래에 빠지는 발을 들어 올려가며 위로 올라가면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어 썰매를 타고 내려와야 한다.
걷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고 주어진 시간도 짧았기에 썰매 두 번으로 끝냈다.
그렇게 정신없는 투어는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와이너리에 들렸지만 시간 없으니 와인은 사지 말고 화장실만 다녀오라는 가이드의 조급한 말이 있었기에 와이너리투어라고 하긴 힘들었다.
이틀 동안 투어를 해본 결과 느꼈다.
나는 단체관광과는 정말 안 맞는 사람이란 걸.
앞으로도 내 여행은 혼자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