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리터 Sep 15. 2019

빈(Wien)궁(Palace)한 여행

빈의 궁을 구경한 여행

빈에서는 쇤부른과 벨베데레 두 개의 궁전을 봤다. 하나는 역사를, 하나는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 첫 번째 빈(의)궁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먼저 찾은 관광지는 쇤부른 궁전이었다. 

사실 첫날은 관광 없이 공원이나 거닐까 했지만 빈은 생각보다 심심했다.

주요 거리를 빼면 사람도 안보이고 하다못해 소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금세 지루해져서 어딘가 구경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안좋은 탓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모레바람이 몰려다니며 맨살을 따갑게 치고 다녔다.

공원에 가도 사람 대신 바람만 지나가고 을씨년스러워서 결국 쇤부른으로 갔다.

도로시가 오즈로 날아가듯 바람에 떠밀려 들어간 쇤부른은 오즈의 세계처럼 기이한 체험을 시켰다.

예술의 도시로 알았는데 첫인상은 음산했던 빈의 거리

쇤부른에선 어딘가 베르사유가 보였다.

궁과 정원의 엇비슷한 생김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꾸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른거렸다.

쇤부른에서 자랐으나 베르사유에서 커야 했던 어린아이가 궁전 곳곳을 웃으며 돌아다니는 것 같다.

어린애일 뿐이었던 어느 공주를 엿보다 갑자기 파리에서 봤던 콩코드 광장 한복판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소가 떠오른다. 

불편한 관계의 두 왕가 사이에서 가장 불편한 역할을 도맡은 고작 열네 살의 여자아이는 서양 역사에서 가장 불편한 소리를 듣는 악녀 이상의 여자가 되었다.

나는 항상 그녀를 불편하게 평가해야 했던 상황들과 편파적 역사가 불편하다.

역사는 잘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왕족이나 귀족은 보통 사치스럽게 살았다.

과연 그녀 수준의 사치 없이 산 왕족이나 귀족이 있었을까?

물론 베르사유는 매우 사치스러운 궁전이지만 그건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달라고 한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두 왕가 사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존재였다.

어느 정도 사치는 그녀가 원치 않아도 따라온 희생의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사실 그녀의 삶은 사치보다는 검소한 생활에 가까웠다고 한다(물론 왕족 기준이다).

망해가는 그 왕가에 그녀가 사치할 정도의 돈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심지어 사건의 중심인 다이아 목걸이는 소문만 무성한 채 산산조각 나서 전 유럽에 팔렸다고 하니 실체도 알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작 귀족의 사랑이었지만 집안끼리 사이가 나빠서 비극으로 끝났다.

하물며 가장 사이 나쁜 두 왕조의 만남인데, 사랑 그것조차 없었으니 결말은 뻔하다.

심지어 남편이 훌륭했단 말은 한마디도 없고 못생기고 무능했단 이야기만 잔뜩 있는데 공주님이 보기에 얼마나 못마땅했을까.

반대로 루이 16세가 오스트리아로 장가가서 쇤부른에 살았다면 희대의 나쁜새끼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일단 나라가 망한 이유는 왕이 무능했기 때문일 텐데 여자인 왕비한테만, 심지어 외국인 여자만 나라를 망가뜨린 범인으로 몰렸다.

노재팬이 한창인 요즘, 관계를 개선하겠다며 일본 공주가 한국의 왕자(왕정국가였다면)와 결혼하더니 국민들에게 오늘부터 우리는 화해하기로 했으니 보이콧도 그만하고 앞으로 일본 공주의 품위유지를 위한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과연 좋아했을까?

일본 공주의 들숨에 촛불을, 날숨에 폭탄을 들었을 걸?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를 ‘오스트리아년’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그녀에 대한 분노가 ‘외국인’, ‘여자’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건 사실 같다.

이상할 정도로 왕이 아닌 왕비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하니 마녀사냥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민 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민중의 분노였다.

민중의 분노는 위를 향했고 귀족들은 위에서 가장 아래 있었던 희생양을 던져줘야 했다.

왕가의 일원이지만 입지가 약한 적국에서 온 외국인 여자.

그녀는 완벽한 미끼였다.

어린 공주와 그녀의 어머니이자 합스부르크 왕가 계승권을 얻어낸 유능한 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가 보였다.

왕실의 책임이란 무엇인지, 정치란 무엇인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다 죽었는지 궁금해진다.

역사, 정치,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쇤부른

아름다운 샘물이란 뜻의 쇤부른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화와 예술이 꽃피던 도시 빈답게 쇤부른에는 왕족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유명인들의 일화가 많이 남아 있다.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던 방! 

한 문장으로 흥미를 방이 쇤부른에는 곳곳에 있다.

하지만 저마다 사연을 품은 방 보다 마음에 들었던 장소는 정원이다.

베르사유에서도 궁보다 정원을 좋아했는데 베르사유를 본떠 만들었다는 이곳도 아름답다.

오히려 기차까지 타며 돌아봐야 하는 베르사유 정원보다 그럭저럭 걸어서 볼만한 이쪽이 인간적이다.

물론 비교 대상이 문제고 쇤부른의 정원도 하루 만에 보기 힘들 정도로 크다.

돈이 모자라서 작게 지었다는데 이 정도면 돈도 충분히 들었을 것 같다.

나무를 가꾼 반듯한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베르사유는 궁에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쇤부른은 정원에서 궁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낸다.

베르사유였다면 궁이 있었을 위치에 있는 글로리에테로 올라가 봤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궁과 정원이 예쁘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던 곳에서, 나는 마음껏 여행의 기쁨을 누렸다.

가운데 작고 어설프게 찍힌 글로리에테


# 두 번째 빈(의)궁

오스트리아에서 꼭 봐야 할 한가지는 그림이다.

오스트리아는 클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한 미술관에 불과하다.

다소 건방진 말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클림트의 그림은 강렬했다.

그림 자체가 멋지기도 하고 미술관 입구에서 그림까지 걸어가는 벨베데레궁전의 길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쇤부른을 본 뒤라 크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외관 장식이 마음에 들고 정원을 사이에 둔 상궁과 하궁의 전경이 퍽 어울린다.

정원이 넓은 쇤부른에 비해 궁전 자체가 돋보여서 아름다움이 가깝게 느껴지는 듯하다.

연못처럼 자리 잡은 작은 분수를 바라보며 짧은 산책을 즐기다 궁전에 들어가면 쨔라란!

상궁과 하궁 사이에 산책하기 좋은 정원이 있다

클림트의 그림이 등장한다.

클림트 전용 미술관은 아니기에 다른 좋은 작품도 많지만 역시 이곳의 주인공은 클림트다.

방 하나가 클림트의 그림에 맞춰져 있다.

금빛을 느끼기 가장 좋은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정말 ‘짠’하는 소리가 들린다.

금빛은 요란하고 화려한 소리를 내며 눈 속으로 파고든다.

아마 클림트의 키스를 20세기 이후에 빈을 벗어나 외국에 대여해주지 않는 이유는 그 매혹적인 금빛을 느끼기 위해서는 정원과 궁전을 지나 깊고 어두운 방에 들어오는 과정이 필수조건이기 때문 같다.

한 가지 색에 그토록 빠져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클림트는 어떤 키스를 해보았기에 키스에 그런 금빛을 담고 그런 표정의 유디트를 그려낼 수 있었을까?

클림트의 그림은 아무런 미술 지식 없이 봐도 아름답고, 직접 봐야만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화가다.

어쩌면 보는 순간 설명 없이 느껴지는 그런 아름다움이 현대미술에서는 조금 부족해진 미술의 가치 같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한다.

정말 좋은 그림을 보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체스키의 크룸로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