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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Nov 20. 2019

그리스 여행을 망설이나요?

여행하기 충분한 나라, 그리스

그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그리스를 여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시는 걸음걸음 유적이 뿌려진 이 땅은 이름이 주는 친숙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 비해 여행지로서의 인기는 좀 덜하다. 다들 가보고 싶어 하지만 1순위는 아닌 여행지 그리스. 여행 전부터 그런 점이 이상했는데 가보니 이유를 알 것도 같다.


# 그리스를 선택한 여행자

이탈리아의 어느 민박집 사장님의 친구는 크로아티아에서 한인민박을 하고 싶다 말했다.

나는 두 달 이상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크로아티아가 어디인지 잘 몰랐는데 그는 크로아티아가 아직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너무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처음 유럽에 갈 때만 해도 한국인에게 그 정도 존재감이었던 크로아티아가 이제는 꽤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고, 유럽 끝에 붙은 포르투갈은 물론 이름도 생소했던 조지아 등등 유럽은 기본이고 이제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직항으로 여행한다.

한국은 인구에 비해 여행자가 정말 많다.

그래서 나는 한국사람들이 그리스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아니, 신기했다.

물론 그리스가 딱히 희귀한 여행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수준의 메이저 여행지도 아니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 유럽 여행 처음인데 그리스만 간다는 사람은 못 봤다.

사회교과서 첫 페이지가 고대 그리스 정치를 배우며 시작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신기하다.

직접 가보니 이유를 알 것 같긴 했다.

그리스엔 생각보다 볼 게 없다.

어이없게도 그렇다.

길에서 흔하게 파는 빵. 생각해보니 그리스는 음식도 임팩트가 부족하다. 실제로 그리스음식은 조리 방법의 기교가 아닌 좋은 기후에서 나온 재료의 신선함으로 먹는다고 들었다.


# 그리스는 가기 힘들다

어디서 유네스코 1호 문화유산 파르테논신전 자존심 무너지는 소리가 들릴 말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찾는 관광객 입장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면 그리스는 유럽의 다른 관광 대국에 비해 그리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심하게 찬란한 역사에 비해 작아서 마음먹으면 하루 만에 관광이 가능하다.

물론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며칠을 보내도 부족하겠지만 일반 관광객이 스치며 볼만한 관광지는 아크로폴리스와 그 주변 정도가 전부다.

게다가 존재하는 관광지는 너무나 역사적이라 훼손된 상태 그대로 있는 경우도 많고 전문 지식이 없으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돌덩어리로 보일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그리스 유산의 많은 부분이 영국박물관과 같은 해외에 있다.

아테네의 역사는 흥미롭지만 눈에 보이도록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근교라고 부를 여행지도 부족하다.

일부 세대에겐 '포카리스웨트 자전거 타던 거기!'라고 말하면 알만한 산토리니, 그리스로마신화 좀 읽었으면 동네 교회보다 익숙한 델피 신전 같은 곳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장거리여행도 단기간에 끝내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그리스는 매력도가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비행기 직항이 없어 가는 길도 멀다.

아테네엔 보스급 유적이 슬라임처럼 나타난다. 분명 하나하나 신화에 나오는급의 유적인데 너무 방치된 느낌으로 있어서 관광지로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

그리스까지 가는 길이 험했던 건 유럽을 돌아다니던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었던 나는 바리라는 항구 도시에서 유레일패스로 탑승 가능한 배를 타고 그리스로 갔다.

세계지도만 보고 이탈리아에서 그리스가 바로 옆일 것이라 생각한 일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로마에서 바리까지 가는 기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길에서 한시간 반을 멈춰 지연되었고, 작은 마을인 바리 기차역에서 항구까지 가는 버스는 찾기 힘들었으며, 배는 열여섯 시간을 타야 했으며, 그리스에 도착해서는 아테네까지 버스를 타고 두시간 반을 더 가야 했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길이 맞는지를 의심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환승하는 길보다 어렵고 오래 걸렸다.

이렇다 보니 아테네에 도착한 나는 이미 너절너절해서 첫날은 타이레놀을 삼키고 잠드는 게 끝이었다.     


# 사실 그리스에는 뭔가 있다, 심지어 많이...!

그래도 힘들게 도착한 만큼 아테네엔 대단한 유적이 많았다.

일단 파르테논 신전.

유적계의 신과 같은 존재다.

문화, 건축, 예술 어느 면모로 봐도 봤다고 자랑할 수 있는 유적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엠블럼에 있는 그 신전을 보는 순간이면 힘들게 찾아간 길이 보람차게 느껴진다.

솔직히 유네스코문화유산 엠블럼 실사 봤으면 진짜 많이 본거 아닌가...?

조금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야 하지만 한번 다녀오면 아테네 곳곳에서 시간에 관계없이 보이는 그곳이 매번 신비하게 느껴진다.

기둥의 수학적이고 건축적인 설계나 당시 기술력의 대단함 같은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파르테논은 진짜 신이 머물렀을 것 같아 보인다.

지금은 무너져서 완벽한 신전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아테네를 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조금 더 온전한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이 상상된다.

게다가 이쪽으로 가면 나오는 고대 극장, 저쪽으로 가면 나오는 올림픽 경기장, 사방에 무너져 있는 유적은 여기가 심상치 않았던 도시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최초의 올림픽경기장, 소크라테스감옥, 고대극장 등등 뭔가 진짜 많다


# 그리스의 매력은 지중해에서 나온다

유적 구경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리스의 진가는 섬에 있다.

아테네에서 만난 가이드도 그리스엔 좋은 섬이 많다고 했다.

나는 여러 섬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잘 아는 산토리니에 갔다.

신혼여행지도 인기 높은 이 섬은 이름은 몰라도 하얀 건물에 파란 지붕 사진을 보여주면 다들 광고나 달력에서 한 번쯤 봤을만하다.

사람들이 산토리니에 도착하자마자 보고 싶은 것

내 그리스 여행의 목적도 아테네 보다는 산토리니였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다가가기 쉬운 지역이 아님에도 관광객을 막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배를 탄다면 실제로 산토리니에서 처음 보는 광경은 픽업과 호객의 콜라보레이션

지중해의 강한 햇빛과 절벽 같은 지형 때문에 건물을 계단과 함께 촘촘히, 하얀색으로 지으면서 사진 찍으면 어이없게 예쁜 특수한 마을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섬 전체가 그런 모양은 아니지만 섬 곳곳이 지중해와 햇빛의 축복으로 빛난다.

여행 중 만나는 파란 하늘 중 가장 반가운 하늘을 바로 산토리니에서 만났다.

관광객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 이 섬은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 나온 곳이다.                         

산토리니에서는 폰카 들고 발로 찍어도 이정도는 나온다

"Hellenic Republic : Greece"

나에게 물어도 그리스가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 그리스 여행을 고민한다면 유네스코 엠블럼과 산토리니의 파란 지붕 사진을 보여주며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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