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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Dec 31. 2019

나의 마지막 도시, 이스탄불

한 자리에서 두 가지 이상이 보이는 도시

이스탄불이란 도시의 괴상함, 기묘함, 특별함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다. 겨우 몇 걸음으로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넘나들고, 처음 겪는 이슬람 문화와 온갖 문화가 섞인 옷과 건축물 속에 섞인 역사는 하루아침에 살펴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두 달이 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 이정표 같은 곳이었다. 한두 마디로 표현 불가능한 그 도시는 러시아에서 출발해서 터키에서 끝나는 조금은 특이한 내 유럽여행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알맞은 장소였다.


# 내가 싫어하는 조건을 갖춘, 내 맘에 드는 이상한 도시

이스탄불에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 아닌 숨이 트이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다고 이스탄불이 조용하거나 한산한 도시는 절대절대 아니다.

중심가를 지나는 트램은 어느 시간에 타도 지하철 9호선 느낌이다.

캣콜링과 성희롱을 달고 사는 터키 남자들 때문에 쌍욕을 했던 기억도 여러 번이다.

절대 유쾌하지 못한 기억들을 잊은 건 아니지만 그 도시의 매력 또한 생생하다.

지독한 소란스러움과 낯선 냄새 사이로 보이는 이스탄불의 건물은 특별했다.

이스탄불의 건축물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서양 역사의 흥망성쇠를 말해야 한다.

온갖 역사를 담은 건축물이 사방에 있지만 가장 사랑한 장소는 돌마바흐체다.

찰랑이는 보스프러스 해협에 잔디밭과 함께 펼쳐진 그 하얀 건물은 궁전이라 말하기엔 너무나 동화 속에 있어 보인다. 

바다 바로 앞, 낭만적이고도 로맨틱한 하얀 궁전

돌마바흐체는 예약을 받아 관람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조용한 관람이 가능하다.

떠들썩한 유럽의 궁전과 달리 어쩌면 진짜 궁전이었을 때보다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곳을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사용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스탄불의 공항 이름은 아타튀르크 공항.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가 외국인들에게 공항이름으로 알리고 싶을 정도의 국민 영웅이다.

전쟁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그는 무너져가는 터키를 근대화의 길로 이끈 인물이다.

돌마바흐체의 모든 시계가 그가 죽은 시간에 맞춰 멈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국가에 미친 영향력과 제2의 아타튀르크를 기다리는 터키 국민들의 마음이 보인다.

돌마바흐체는 건물 자체의 거대함과 아름다움도 있지만 아타튀르크라는 인물을 통해 터키인들이 근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알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군대를 이끌었던 이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는 나라.

비잔틴과 오스만의 명성, 그리고 세계대전과 내전.

지리적 위치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고 무수히 많은 것이 섞인 곳.

복잡하고도 찬란했던 그 역사 속에서 터키인들이 원했던 건 그들의 자존심을 세우고 그들만의 터키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였던 것 같다.


# 이스탄불의 랜드마크들

내가 사랑한 곳은 돌마바흐체이지만 그래도 이스탄불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은 역시 부루마블에 랜드마크로 나오는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다.

모두 역사와 건축, 미술 어느 학문에서나 볼법한 건물이다.

실제로 보는 순간 여기가 터키라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야간에 방문한다면 조명이 들어온 블루모스크의 아찔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이스탄불의 야경은 다른 대도시와 달리 높은곳이나 먼곳이 아닌 건물 바로 앞에서 볼때가 가장 아름답다

호텔이 별 개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면 모스크의 위엄은 미나레의 개수로 정해진다.

이슬람 사원에는 미나레라는 첨탑이 있다.

이 미나레는 사원의 규모와 중요도에 따라 수가 많아진다.

보통 크다고 하는 사원에도 네 개 정도만 있으니 여기는 오일 머니로 지은 육성급 호텔쯤 되는 셈이다.

정식 명칭은 술탄 아흐메트 1세 사원인데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푸르고 흰 타일과 스테인드글라스로 햇빛이 비치는 순간의 블루모스크는 현대 건축물이 상실한 신성함을 준다.

그 바로 옆의 아야소피아 또한 만만찮게 아름답다.

아야소피아는 이스탄불의 복잡한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존재다.

성당이기도 교회이기도 박물관이기도 한 아야소피아는 지배하는 민족의 종교에 따라 그 쓰임이 달라져야만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해 쉬지 않고 변화하고 진화한 그 건물은 터키의 역사를 압축 포장하고 있다.

아야소피아 내부는 훼손의 흔적과 복원의 노력, 시대에 따라 달라진 종교와 정권이 마주본다. 성당도 사원도 교회도 아닌 박물관이라 부르는 것도 특정 종교의 편을 들 수 없기 때문.


# 모든 곳이 알고 나면 신비한 이스탄불

주변의 지나치게 화려한 건축물 덕에 조금은 눈에 덜 띄거나 숨어 있는 신비한 것들도 많다.

어쩌면 땅 위에 톱카프라는 거대한 궁전이 있어서 그 아래 숨어 있는 예레바탄 지하궁전까지는 시선이 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예레바탄사라이는 톱카프 보다 신비한 곳이다.

예레바탄 지하궁전과 그 속의 메두사 기둥

용도는 저수지이지만 336개의 기둥이 포근하게 감싼 예레바탄 사라이는 물과 조명이 주는 약간의 안락함과 지하 속 어둠이 주는 적당한 공포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장소다.

옆으로 누운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순간이면 여기가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묘한 세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냥 지나가게 되는 블루모스크 앞 히포드럼 광장은 고대 검투 경마장이자 마차 경기장 터로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서 인간의 백년 정도는 우습게 여기며 바라보고 있다.

히포트럼 광장은 누구나 지나가는 곳이지만 그에 비해 오벨리스크에 주목하는 사람은 적다

그랜드바자르와 같은 바자르(시장)에 가면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와 이국의 물건을 보게 될 것이며, 시르케지 기차역을 지나면 잠시나마 고급스러운 여행을 떠나는 유럽 귀족의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스탄불은 땅 위와 아래, 광장과 골목 모두 상상력을 자극한다.

터키의 길거리와 시장에서 흔하게 보이는 화려한 물건과 먹거리들, 특히 달달한 디저트가 아주 많이 보인다


# 내 여행을 돌아보게 되던 곳 

이스탄불의 역사를 따라가면 유럽대륙과 일부 동양의 역사를 보게 된다.

여러 종교와 민족이 만든 가장 복잡한 땅이 바로 그곳이다.

많은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지식 없이 거닐고 상상하기만 해도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곳이다.

한 자리에서 동양에서 찾아온 상인이 되고, 유럽에서 여행 온 귀족이 되는 기분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도시다.

가볍게나마 유럽 주요 도시를 돌아보고 다시 동양의 어느 작은 나라, 작은 마을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그 어설픈 경계는 가장 적절한 땅이었다.

어느 대륙인지, 어느 문화인지, 어느 민족 인지도 불분명한 그곳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일 뿐이다. 

하지만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그런 이스탄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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