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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Jul 13. 2020

여행에서 만난 댕댕이

여행과 동물

여행도 좋아하고 개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만 댕댕이 없어'의 '나'를 맡고 있다.

집 떠남과 개 키움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므로.

여행 중엔 어디서 개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집에 도착했을 때 꼬리를 흔드는 댕댕이는 없지만 대신 여행 중에 자연발생하는 동물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긴다.

낯을 가리는 여행자에겐 어설픈 영어와 어설프게도 못하는 제3국의 언어에 바디랭귀지까지 섞어서 대화해야 하는 상대 보다, 귀엽다고 말해도 상관없고 큐트하다고 말해도 노상관인 길 가는 개가 편하다.

개들은 어느 나라에 살아도 귀여우니까.

스페인 론다 투우장의 동상. 동물은 도시나 국가의 상징으로 많이 쓰인다

여행지에서 동물 만나는 일은 즐겁다.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간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건 길에서, 사막에서, 정글에서 울다가 웃다가 우연히 마주친 동물들이다.

물론 동물원과 달리 길 위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은 제한적이다.

주로 개와 고양이, 그리고 새가 우연을 가장한 기다림 속에서 만나는 동물의 대부분이다.

동물이란, 특히 인간 속에 섞여 사는 동물은 생각보다 인간에 대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말도, 거짓말도 못 하는 그 애들은 각국의 역사와 환경을 보여주는 대변인이다.

길을 돌아다니는 개와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에는 전반적인 국민성이 투영된다.

스페인 네르하 길 곳곳을 점거한 고영들

처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그리스여행이었다.

그곳의 개들은 어딘가… 나 같았다.

개가 나 같은 건지 내가 개 같은 건지 아직도 구분은 안되지만 그리스의 개들은 참 게으르다.

신전이나 유적 같은 관광지 주변에서 커다란 개들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다.

그리스 관광지 그늘은 개들이 지배한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국가에서 먹이도 주고 관광객들도 간식을 주니 저렇게 개팔자가 상팔자인 삶이라고 했다.

하지만 몇 년 후에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그리스의 유기견이 늘었다는 기사를 보니 역시 개팔자는 함부로 논할게 아니구나 싶다.

나를 햇빛 알레르기의 길로 인도한 남부 유럽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낮잠을 자는 유기견들.

얼핏 보면 느긋한 팔자지만 속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품은 그리스 사회의 모습 같았다.

개팔자란 국가의 사회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리스에서 처음 생각했다.

방콕과 이스탄불에 널려 있던 애들

그 이전에 열개가 넘는 유럽 국가들을 방문했지만 동물의 삶과 국가의 관계를 고민해본 건 처음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생각해보니 다른 유럽 국가, 특히 서유럽에서는 유기견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노숙자는 걸을 때마다 봤어도 유기견은 못 봤다.

서양권에서 개를 본 기억은 목줄을 차고 주인과 산책 나온 개나 노숙자들이 끌어안고 있는 개들이 대부분이다.

금문교가 보이는 바다에서 산책하는 댕댕들. 이게 서양권에서 많이 보는 풍경.

최소한 내가 돌아다닌 관광지 안에서는 주인 없는 들개를 만날 일은 드물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산책하는 개도 있지만 야생의 바다사자도 있지

길바닥을 차지하고 늘어진 개들은 주로 동남아에 있다.

동남아의 많은 곳이 애완견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와 다르니 유기견이라는 개념도 모호한 듯하다.

사원 도시 바간에서는 사원 사이로, 마당으로 개들이 스윽 지나간다

개뿐만 아니라 소, 돼지, 닭 등 많은 동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물론 부촌에 가면 애완견이 문제가 아니라 애완동물원을 만드는 부유층도 있지만 내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길 위의 동물들이다.

소, 돼지, 닭이 길을 달리는 혼돈의 동남아(소는 라오스, 돼지와 닭은 베트남)

사료를 먹어본 적 없을 동남아 시골의 개들은 어딘가 처연한 분위기를 낸다.

챙기고 기르긴 하지만 온전한 생명 취급은 아니다.

미얀마 바간에서는 나무막대기로 개를 두드려 패고 있는 동네 꼬마애들을 말린 적도 있다.

그 동네의 개들은 사람을 보면 짖지 않고 겁내고 도망을 갔다.

동남아 개들은 잘 보면 피부병이 기본이다


개와 고양이를 빼고 우연히 마주치기 좋은 동물은 새다.

우리 모두 지하철과 같은 뜻밖의 장소에서 등장한 비둘기를 보고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외쳐 본 적이 있다.

비둘기가 그렇듯 새들은 여기저기에서 자주 출몰한다.

미국새와 유럽새. 난 갈매기가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동물이라고 생각해.

보통 새들은 양아치다.

터키 베벡의 스타벅스에서도 스페인 파라도르의 조식당에서도 나는 참새들한테 공물을 빼앗겼다.

참새는 작기라도 하다.

터키에서 내 빵 훔쳐 먹은 참새랑 스페인에서 내 조식 훔쳐 먹은 참새. 먹이를 훔쳐간 너희를 잊지 않겠다.

호주에 도착한 첫날 시차 적응을 못해서 몽롱한 내 정신을 깨운 건 시드니 한복판에서 나를 감싸는 화려하고 무서운 익룡 같은 새였다.

리스본 상조르제 성 안에서 맘대로 돌아다니는 공작새, 시선강탈 분야 갑.

동물과 길에서만 만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동물과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지만 동물원에 못 가봤을 리는 없다.

호주에서 갔던 동물원은 직장상사의 소개로 억지로 잡은 소개팅 같은 만남이었다.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에 끼어 있어서 들어갔던 아주 작은 동물원이었다.

동물원 안을 걸어 다니면 캥거루가 슥 지나가고 나무에 코알라가 붙어 있고 딩고가 뛰고 있다.

한 여름 동물원에서 얼음팩을 받은 코알라. 동작이 너무 느려서 아픈 줄 알았는데 그냥 원래 느린 애들. 마치 나같이.

호주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라 신기하긴 했다.

조금 요염한 캥거루님과 알비노 캥거루

하지만 호주에서 제일 신기한 건 역시 야생의 진짜들이다.

야생의 돌고래가 나타나는 바다에서 수영도 가능하고, 야생의 펭귄이 눈 앞에서 뽀짝거리기도 한다.

펭귄 보호구역에서 마주친 그 조그마한 생명체는 절대 잊을 수 없다.

이런 배경에서 펭귄이 서식한다. 오른쪽에 작게 보이는게 진짜 야생의 펭귄. 펭귄 퍼레이드도 있는데 플래시 때문에 밤에는 사진 촬영 금지.

왜 이런 시골에서 차가 막히지 싶어서 밖을 보면 어느 농장에서 탈주한 염소가 지나가고, 운전 중에 도로를 점거한 왈라비 정도는 한두 번쯤 마주친다.

시골운전을 해서 고라니 정도는 익숙한 나한테도 생경한 풍경이었다.

동물원 그늘 밑에서 계모임 중인 캥거루들과 딩고. 딩고 앞에서 한국인들 전부 딩고 어디있냐고 물어 봄.

사실 관광과 동물은 떼기 힘든 관계다.

동물원의 쇼, 관광용 꽃마차, 코끼리 트레킹 등등 말 많고 탈 많은 동물 관광도 많다.

나는 그런 쪽에는 별로 경험이 없다.

동물 착취 같은 도덕적인 개념 문제는 둘째고 '딱히… 돈을 내면서까지 뭐 저런 걸?' 싶어서다.

숨은 원숭이 찾기. 하롱베이 크루즈를 타면 돌 틈 사이에서 원숭이를 찾게 된다.

물론 경험은 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낙타를 타지 않으면 다음 코스가 진행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와 미얀마 바간에 새벽에 혼자 떨어져서 마차투어 밖에 갈 곳이 없었을 때,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개썰매를 탈 때였다.

낙타나 마차는 이동수단으로 선택했다면 개썰매는 진짜 호기심이었다.

노르웨이 트롬쇠에 오로라를 보러 갔을 때였다.

순록 썰매, 개썰매 등등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관심은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낮에는 자고 밤에는 오로라 찾아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니 몸이 근질거렸다.

결국 개썰매의 유혹에 걸렸다.

설원에서 대기 타는 썰매견들. 생각 보다 작은데 힘은 오지게 세다.

너무 재미있었다.

개들은 개신나서 뛰어다니고 눈을 퍼먹었고 나는 개처럼 눈 밭에서 끌려다녔다.

원숭이쇼가 인간의 재미를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느낌이라면, 개썰매는 개들이 달리기 위해 인간을 써먹는 느낌이었다.

다 끝나고는 개들이 달리지 못하면 힘들어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래 봐야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겠지만 최소한 설원에서 달리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은 제 이름이 붙은 집을 가지고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달리고 눈 밭을 구르는 중. 업무 끝나면 이름표 달린 집으로 복귀.

동물과의 만남이 항상 기쁜 건 아니다.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원인이다.

시장 바닥의 좁은 우리에서 헐떡거리는 동물을 볼 때가 대표적이다.

한국도 아닌 타국에서라면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찝찝하게 지나가게 된다.

미얀마 길에서 팔던 새. 무슨 용도로 팔고 있었을까.

이보다 더 화가 나는 건 직접적인 괴롭힘을 볼 때다.

베트남 무이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스폿인 요정의 샘을 걸을 때였다.

한국인 남자 세명이 구석에서 새끼 강아지를 물에 빠뜨리고 있었다.

멀리서 보고 다가갔을 때 그들은 재미 삼아 막 태어난 어린 생명을 건드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욕 정도는 해주고 싶었으나 타국에서 처음 본 성인 남자 셋을 상대로 내가 하는 말이 아무 힘이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대체 왜 이런 애들을 물에 담갔을까...?


나는 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특별한 관심도 없다.

그저 평범하게 귀여운 것들의 귀여운 사진을 보면 즐거워진다.

여행은 즐거운 일이고 동물은 귀엽다.

두 가지가 함께하는 순간에 생각이 많아지고 여러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다음 여행에서는 어떤 동물과 인연이 닿을지 기대된다.

지옥펀이라 불리는 대만 지우펀 뒷골목의 개. 혼란한 거리에서 잠들어 있는 이 아이를 봤을 때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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