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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Nov 04. 2024

추억을 입자

발리의 의(衣)

여행 전에 짐을 챙기면 제일 먼저 하는 고민.

어떤 옷을 챙겨야 하지?

일 년 내내 더운 곳이라니 반팔만 잔뜩 챙겨가야 하는지.

그런데 또 7월이 발리에선 나름 겨울이라고 하니 긴 옷을 챙겨야 하는 건지.

게다가 화산 투어를 할 때는 패딩을 챙기라는 말까지 하고.

발리에 가기 전 짐을 챙기며 온갖 고민이 들었다.

결론은 그저 자유롭게 입으면 된 다는 것.

여행지에서만 입을 수 있는 옷도 잔뜩 입어도 된다는 것.

그러나 가는 지역에 따라 추위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

이 정도가 옷을 고를 때 신경 쓸 부분이다.

바투르산 투어는 정말 추워서 담요를 빌려 칭칭 감아야 했다

우선 발리가 휴양지라는 점을 명심해서 휴양지다운 옷을 준비하자.

소위 말하는 인생샷을 위한 옷 말이다.

발리의 맑은 날에는 정말 엄청난 사진이 나온다.

물론 나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필요 없으니 생략한다고 문제 생기진 않는다.

그때는 대신 내가 아닌 초록의 옷을 입은 야자수와 파랑의 옷을 입은 바다와 하늘을 많이 찍어두도록 하자.

내가 뭘 입어도 발리보다 예쁠 수 없다, 그냥 지자

옷이란 게 내가 입는 것만 옷이 아니다.

발리가 입고 있는 자연이란 옷, 이국이란 옷, 여행이란 옷이 파리 위크 부럽지 않게 아주 다양하고 매년 다르게 펼쳐진다.

그러니 나 아닌 발리가 무얼 입고 있는지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물론 발리에서도 TPO에 맞는 복장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사원에 입장하거나 종교 시설 때문에 긴팔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긴팔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원 앞에서 사롱을 대여해 준다.

바투르산 투어 때도 돈만 있으면 담요를 빌릴 수 있다.

그러니 발리에서 옷의 길이보다 진짜 신경 써야 하는 의복 상태는 따로 있다.

옷을 대충 입어도 이런 곳에 앉아 있으면 흰 면티만 입어도 사진은 잘 나온다

바로 수영복.

발리에 갈 때 진짜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옷은 수영복이다.

어차피 결국 다 벗고 다닐 텐데 수영복 말고 다른 옷에 신경 써서 뭐 하겠는가.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수영복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각자의 체질에 맞는 수영복이 종류별로 필요하다.

한 달을 지내면서 수영복을 입고 지낸 날이 반 이상이었다.

나는 셀카를 찍거나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몸매 자랑이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다만 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길리에서는 다들 수영복을 일상복으로 입는다.

숙소에서 나올 때 수영복을 입고 나오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은 비키니를 입고 있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상의를 잘 안 입고 다닌다.

비키니가 기본이고 원피스 수영복 정도면 정장을 입은 느낌이 된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래시가드를 챙겨 입어야 했다.

(래시가드 상의와 하의 사이 살짝 뜬 부분에 입은 화상 자국이 여행 N개월이 지난 지금도 흉터로 남아 있다)

어차피 바다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을 텐데 옷이 뭐가 중요할까

하지만 호텔 수영장에서 놀 때는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풀빌라에서는 비키니를 입었다.

그러니 수영복만 비키니, 원피스, 래시가드를 종류별로 다 입은 것이다.

그리고 발리의 의복에 관한 정말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어차피 발리에선 다들 발리만 보니까 남들 눈 신경 쓰지 말자

현지에서 옷을 사도 된다는 것.

우붓의 시장에서 코끼리 바지를 살 수도 있고, 꾸따의 쇼핑몰에서 쇼핑을 할 수도, 스미냑이나 세련된 동네의 숍의 마네킹을 따라 옷을 살 수도 있다.

해외에서 산 옷은 그 자체로 기념품이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있고, 생산은 중국에서 한 H&M의 옷도 발리에서 사면 그냥 발리 옷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데 기념품 노릇까지 하면 더 좋은 일 아닌가.

발리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을 입고 다녀도 좋으니까

그러니 어떤 옷을 챙겨야 할지 한국에서부터 스트레스받지 말자.

가서 사도 좋고, 빌려도 되며, 내가 예쁜 옷을 안 입어도 발리가 충분히 예쁘게 입고 있어서 상관이 없다.

내가 조금 추레하게 입는다고 발리가 발리가 아닌 건 아니니까.

발리에선 발리의 추억을 입자.

누군가 샤넬 향수를 입었다고 말했듯 그날 내 기억 속 발리의 냄새를 입고 다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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