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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가 발리에 나가 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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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사십리터
Nov 11. 2024
발리의 식(食), 발리 의식(儀式)
발리 음식에 대한 고찰
미고랭.
나시고랭.
나시짬뿌르.
사테.
바비굴링.
나시짬뿌르 / 사테
발리에 가기로 마음먹은 당신이 달달 외우고 있을 메뉴들이다.
관광객에게 친숙한 인도네시아 대표 메뉴인 만큼 발리의 어느 식당에 가도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메뉴들.
하지만
당신이
열심히
조사해서
찾아간
맛집에서 먹은
그
메뉴는
로컬
'메뉴'일지언정
로컬
'음식'은
아닐
수 있다.
발리는 관광지고 모든 음식이 관광지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발리에서는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가 아니라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먹었는지가 관건이다.
촛불
켜고
분위기
잡은
레스토랑에서
먹은
나시고랭과
길 가다
발견한
노점의
나시고랭은
같은
음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
뭐가 차이인지 모르겠다고?
일단 둘은 가격이 다르다.
(죄)1,300원 (우) 10,000원 : 같은 미고랭이지만 가격은 천차만별
발리 물가가
저렴하
다고 하는데 막상 인터넷에서 찾은 맛집에 가서 주문하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은 한국보다는 저렴하지만 현지 물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비싼 음식이 대부분이다.
우붓에서 유명한 pison. 그렇게 유명한데, 이렇게 예쁜 레스토랑인데 음식이 너무 맛 없어서 놀랐다.
유명 관광지를 다닌다는 게 이렇다.
특이점이 온 식당들은 완전한 로컬의 맛을 내놓지 않고 외국인에게 팔릴 맛을 만든다.
한식을 명동의 일본어와 중국어 간판 붙은 가게에서만 먹는 것과 같다.
여행 중에 한식을 잘 안 먹는 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몸이 좀 안 좋아서 한식당도 몇 번 갔다. 발리에선 온갖 국적의 음식이 팔리니까.
대부분의 관광객이 진짜 로컬 음식은 위생 문제로 거부감을 느껴서 진짜 먹고 싶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관광객을 위해 준비한 식당이 즐비한데 꿋꿋하게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찾아다녀야 될 이유도 없다.
솔직히 현지 문화를 느끼고 탐구하고 싶어서 발리까지 오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
그냥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분위기 잡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 대부분 아니던가?
그게 나쁜 짓도 아니다.
나만 해도 영어와 한국어만 쓰면서 한 달을
보냈다.
그러니 나는
발리의
로컬 푸드를 체험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발리에서는 참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한식은 물론 온갖 국적의 음식을 팔고 있으니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해진다.
로컬 식당을 가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다.
관광객 거리엔 현지인들의 밥집이 없으니까.
미고랭만 먹다 쌀국수를 먹었더니 어찌나 맛있던지
그러다 찐 로컬 가격 식당을 하나 발견하면 그렇게 기쁘다.
한국인들은 위생을 의식해서 피해간다는데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며칠 시간이 지나 발리에 익숙해지면 약간의 위생불량은 눈 감게 된다. 벽을 타는 쥐만 무시하면 천원짜리 밥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에.
우붓에서 3번 갔던 식당의 볶음국수. 먹는 중에 벽을 타는 쥐를 봐야 했지만 발리에서 그런 건 잘 신경 쓰지 않았다. 천원 짜리 밥에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므로.
반대로
로컬 분위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한국과 같은 가격으로 만원이 넘는 햄버거를 먹고 나오는 길에 현타가 오기도 한다.
13,000원짜리 버거를 먹을 때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그러니 발리의 식사 시간이란 진짜 로컬답게 먹고 싶은 마음과 사진으로 볼 때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의 끝없는 투쟁이다.
길 가다 우연히 사 먹은 과일주스. 3백원에 극락을 봤다.
발리에서 밥을 먹을 때 또 하나 기묘했던 점.
그건 바로 '논' 때문이었다.
발리의 대표 관광자원 중 하나가 바로 논뷰 데이클럽이다.
우붓에는 계단식 논을 배경으로 수영장과 발리스윙이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서양인들은 종일 논을 바라보며 수영을 하고, 동양인들은 사진 찍기 바쁜 그런 곳 말이다.
무조건
관광객이
가기
마련이라
음식값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그런
만큼
전체적인
맛의
퀄리티는
괜찮은 편이다.
라이스 테라스라고 부르는 이 풍경은 서양인들의 눈에 신기하기 때문에 동양인도 따라서 신기한 척하기로 합의를 마친 풍경이다.
솔직히 한국인에게 논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 풍경이겠는가. 그래도 정글을 배경으로 계단식 논이 펼쳐진 모습은 시골에서 자란 탓에 논밭을 혐오하는 나에게도 생경한 풍경이었다.
절벽뷰, 폭포뷰, 논뷰 등등 아무튼 경치 좋은 곳엔 클럽이 있다
이곳을 찾은 전 세계 관광객은 이곳은 환경, 전쟁, 기아 등등 그 어떤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도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움을 합의하고 발리의 축복받은 날씨를 즐긴다.
그곳에서 먹는 메뉴는 깔끔하게 담은 인도네시아식도 있지만 그만큼 양식도 많이 먹는다.
서양인이 많이 오는 만큼 그들을 위한 메뉴를 준비하는 게 발리 식당들의 손님대접인 것이다.
커리, 라멘, 파스타 등등 전 세계 여행객을 상대하는 만큼 발리 식당의 메뉴도 글로벌하다
다들 가는 그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햄버거, 스파게티, 피자 등등을 먹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든다.
농사 목적이 아닌 미관 목적으로 심은 벼를 보면서 쌀과 하등 관계없는 음식들을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우리.
쌀을 보며 밀을 먹고 있는 이 행태의 의미가 궁금한 것이다.
사실 발리도 중국에서 농산물을 수입해다 먹는다고 하니 섬 전체가 농사 아닌 관광으로 먹고 사는 곳에서 논을 늘린다는 건 참 아이러니다.
로컬 시장에 갔더니 중국에서 수입한 품목이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발리를 유명한 관광지로 만드는 것이겠지.
역사적이거나 예술적인 단지 오래되고 크다는 이유로 관광자원이 되는 꺼리가 없는 발리가 관광객을 끌어당기려면 이렇게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서나 조성할 수 없는 형태로 만든 관광자원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나는 라이스 테라스가 신기하진 않아도 그 풍경을 아름답다고 여기며 밥을 먹는 내 모습이 꽤 재미있었다.
관광객에게 현지 물가보다 월등히 비싼 밥 한 끼를 팔기 위해 그들이 개발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논 한 가운데 있는 숙소가 고급 숙박시설이라는 사실이 나에겐 아직도 어렵다
이처럼 발리는 현지인보다 관광객을 먹이는데 진심이다.
밥 한 끼를 먹이려고 정글에 필요 없는 논까지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장 발리다운 식사는 바로 호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타지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짓는 밥.
어쩌면 나시고랭보다 호텔 조식이 발리를 대표하는 메뉴일지도 모른다.
5성급 호텔에서 이렇게 룸서비스를 시켜도 5만원도 안 나온다. 호텔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에 정점을 찍은 건 바로 플로팅 조식 때문이었다.
한때, 그리고 지금도 인스타에 발리를 검색하면 무수히 쏟아져 나올 그 사진.
물속에서 밥상을 끌어안고 찍은 그 사진.
어찌 보면 참 괴랄한 그 사진을 낭만과 로망이라는 카메라로 찍는 곳이 발리다.
인스타로 발리를 배웠다면 이 재밌는 밥을 안 먹을 수 없다.
인스타 사진 좀 찍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예쁜 사진엔 이면이 있다.
럭셔리한 여행 사진으로만 보이는 이 플로팅 조식이란 먹기 전 후로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풀빌라에서 조식을 신청하면 직원들이 이런 바구니를 가지고 나타난다
다들 그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이른 아침 단장을 하고 물에 빠진다.
물속에서 밥 먹는 게 편할 리 없으니 당연히 사진만 찍고 급히 바구니를 꺼내 식탁으로 옮긴다.
정말 오로지 사진 한 장을 위해 밥상을 물에 빠트리는 것이다.
난 인스타나 인증샷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이 사진을 찍는 과정이 상당히 부끄러웠다.
일단 잠도 덜 깨서 수영복을 챙겨 입고 수영장에 뜬 낙엽을 치우는 직원을 맞고, 짐을 한가득 들고 와서 바구니에 꽃을 뿌리고 음식을 올리는 직원들을 무시하지도 못하고 지켜보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과정이 전부 민망했다.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발리 왔으니까 해보지 어디서 이런 걸 하겠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플로팅 조식과 호텔 조식.
너무나 발리스러운 음식이다.
발리에서 꼭 먹어야한다는 스무디볼도 웰니즈를 표방하는 여행객을 위한 가짜 발리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발리다운 밥상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짜낭사리라고 답하겠다.
발리에서 길을 가면 언제나 어디서나 발 밑에 보이는 그것 말이다.
짜낭사리는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시장이나 길 거리 가판대에서 팔기도 한다
짜낭사리는 발리 사람들이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다.
흰두교를 믿는 발리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과 집 근처에 작은 상자 같은 짜낭사리를 바친다.
내용물은 과자와 같은 음식, 꽃, 담배 등이다.
대한민국에서 집 앞에 과자 담은 접시를 내놓으면 민원 접수가 들어오겠지만 발리에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에도 기도하며 새 짜낭사리를 재단에 바치는 직원들을 볼 수 있다.
신께 바친다면서 담배가 들어 있다는 점도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보니 재밌다.
짜낭사리에 담는 과자와 꽃
처음엔 그 풍경이 그렇게 오묘했다.
불교 국가에서 탁발은 몇 번 보았지만 그것과도 결이 달랐다.
굳이 찾자면 한국의 고수레에 가까워 보였으나 이 역시 다른 풍습이다.
다른 것도 아닌 음식과 꽃을 한 그릇에 두고 길에서 나눈다는 이 행동이 내겐 발리를 더없이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일이 잘 안 풀려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식당으로 가는 길에 발 밑에 꽃처럼 피어 있는 짜낭사리를 보면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다.
숨은 짜낭사리 찾기
어느 배고픈 개의 먹이가 되기도 할 음식이 내겐 영혼을 달래는 닭고기 수프가 된 것이다.
미신이니 뭐니 하며 무시할 수도 있지만 공물을 바치는 발리 사람들의 표정을 본 이상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물론 발리니즈라고 매번 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권태로운 마음으로 짜낭사리를 만들겠지.
그저 부모가, 조부모가 시켜서 할 뿐 스스로도 그 풍습을 우습게 여기는 발리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최소한 내게는 한 입의 음식에 담긴 거룩함과 꽃에 깃든 아름다움을 땅에 돌려놓는 그들의 모습이 성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이 행위의 종교적 의미가 무엇인지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그냥 내 해석이 틀리면 틀리는 대로 남기고 싶어서.
한 달간 발리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느라 무수히 고민하고 걸었던 나지만 가장 발리다운 밥상은 항상 길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차려져 있었다.
길리에서 다섯번 갔던 식당. 한 달 동안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게 잘 먹은 건 천원 조금 넘는 나시고랭 한 접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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