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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Jun 14. 2017

스팸 메일에 섞인 추억

유럽여행  이야기 프롤로그


# 단상1

스팸 메일 속에 숨어 가끔 추억을 두드리는 놈들이 있다.

알 수 없는 러시아 글자로 가득한 메일.

5년 전 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입했던 러시아 철도청에서 보내는 메일이다.

내용은 안 봐도 스팸이겠지만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여행의 관문이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생각나게 한다.

남들 다가는 유럽여행을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가고 싶어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출발한 첫 유럽 여행.

기억은 가물거리고 옛날에 꾼 좋은 꿈이 아닐까 싶은 순간, 메일 한통이 내 여행이 현실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 단상2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유럽 배낭여행을 가란 말을 수시로 했다.

우리 집 벽엔 아빠가 가져온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고, 인형 옆엔 지구본이 있었다.

그렇게 크다 보니 난 유럽여행이 당연히 가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여행을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나에게 배낭여행이란 언젠가 해야 할 통과의례쯤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여행을 준비했고, 떠났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익숙하지 못하고 요령도 없을 때라 참 서툴렀다.

하지만 즐거웠다.

좀 더 능숙한 여행이 가능해진 지금 같은 곳에 가도 더 즐거울 자신이 없다.

얼마나 많은 곳에 어떻게 다녔는지 잘 모르고 떠돌았던 그 여행.

세계지도 어플을 받아 그때 다녔던 곳을 표시해보니 참 많이도 다녔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진짜 꿈으로 남기 전에 그 기억을 기록으로 옮겨보려 한다.



# 단상3

미리 말해두자면 이 여행은 5년쯤 전의 일이다.

기억을 더듬어 쓰는 글이다 보니 각색이 많다.

좋은 기억은 더 좋게,

나쁜 기억은 더 나쁘게,

하지만...

기쁜 일은 그대로 잊어버리기도

슬픈 일은 기억을 미화해서 기억하기도 하며

그렇게 내 마음껏 기억한 이야기들이다.


사실 그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일이 인생에서 몇 개나 있을까.

게다가 나에게 유럽여행이란

하루하루, 매 순간이 아닌 '유럽'이란 한 덩어리로 기억된다.

불행한 순간이 있었더라도 전체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난 그 순간을 행복으로, 추억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빈틈없는 생활계획표 같은 기행문은 쓰지 못한다.

희로애락으로 기억되는 강렬한 순간들만 남길 예정이다.



# 단상4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본다.

무섭다.

당연히 두려움이 있지만 공포심에 앞선 기대감과 설렘이 있을 뿐이다.

기대보다 공포가 큰 사람이라면 여행을 떠나지 않는 쪽이 좋겠지만 난 떠났을 때 얻는 기쁨이 더 큰 사람이다.


사실 내 유럽여행을 정리하자면 '겁이었다.

간신히 성인이 된 20대 초의 여대생이 대범해질 수 있는 순간은 많지 않다.

겁이 너무 많아서 뭘 해도 조심하고 여유 있게 정해야 했다.

해가 지기 전에 무조건 숙소에 돌아오고 밤엔 나가지 않았다.

안전하고 여유 있는 여행이 내 목표였다.



# 단상5

내 유럽여행 루트는 조금 괴상했다.

일반적인 유럽 배낭여행 코스라면 파리나 런던 in, out이 정석이다.

하지만 내 in, out 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 이스탄불(터키)이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이 코스를 들으면 신기한 기색을 보인다.


이런 괴상한 코스가 탄생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난 무조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려면 러시아를 거쳐야 했기에 첫 번째 도시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톡이었다.

두 번째로 난 비행기를 싫어한다.

공포증이 있거나 몸이 아픈 건 아니지만 그 좁고 답답한 의자에서 10시간 넘게 앉아 있는 건 정말 싫었다.

비행기를 최소한으로 타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유럽인 러시아와 터키를 이용했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는 항공사 마일리지로 터키에서 돌아오는 편도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었기에 기차표와 편도 항공권 한 장을 들고 두 달이 넘는 여행의 서막을 올렸다.



# 여행루트

0. 동해항

1.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 이르쿠츠크 - 모스크바) / TSR

2. 핀란드

3. 스웨덴

4. 노르웨이

5. 네덜란드

6. 영국

7. 프랑스

8. 독일

9. 체코

10 오스트리아

11. 이탈리아

12. 그리스

13.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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