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요람까지

나의 집 얻기 잔혹사

by 사십리터
"내 집은 무덤에서 시작했다. 요람을 찾아 유목생활을 하다 보니 우물 딸린 집, 고시원, 아파트, 원룸, 기숙사 등등 안 살아본 집이 없다."



1. 집을 위한 첫 번째 투쟁

유치원 무렵의 나는 집을 짓는 공사장 노동자였다.

식탁 의자를 꺼내고 눕혀 담요를 씌우고 방석을 까는 공사였다.

의자를 눕혀 등받이가 바닥이 되도록 만들고 인형을 갖다 두면 거기가 내 디즈니 성이었다.

식사시간이면 무너지는 레고 블록보다 약한 성이었지만 식탁 밑은 내 유일한 방이자 집이었다.

증조부, 모 부터 고모들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 속에 내 공간 허락되지 않았다.

반복되는 공사판은 방이 없던 내가 내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처음 내방이 생긴 건 중학교 2학년.

증조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서야 그들이 비워준 틈에 내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분들께 무덤이란 집이 생기고서야 비로소 방 한 칸이란 내 집이 생겼다.

그렇게 내 첫 집은 다소 극단적이고 우울한 방법으로 생겼다.



2. 집을 떠나서 만난 집들

남들보다 늦게 내 공간을 알게 되어서일까?

난 집을 공동의 공간보단 혼자만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집에 룸메이트가 있어도 결국 사적 공간이다.

집이 온전한 내 세상이라 생각하다 보니 집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어쩌다 보니 난 흔히 말하는 '집순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집을 좋아하는 만큼 집 떠남도 사랑한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해서 집과 기숙사 두 집 살림을 시작했다.

기숙사는 또래들로만 가득하고 온갖 규율을 따라야만 생활이 가능하다.

집이 갖는 안락함, 포근함, 편안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갖게 될 내 집은 쉼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대학에 들어와선 두 집 살림을 넘어 셀 수 없이 많은 집을 갖게 되었다.

기숙사 생활은 기본이고 여행이란 걸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 숙소란 이름의 집을 구해야 했고 간접적으로 많은 집을 볼 수 있었다.


숙소 중 가장 재미있는 건 호스텔이었다.

집 없이 떠도는 전 세계인들이 한방에서 국적,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하룻밤을 보낸다는 그 독특함.

베르사유 궁전, 모짜르트 생가, 낯선 누군가의 집을 구경하던 전 세계인이 모여 잠을 자고 다음 날이면 흩어진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최소한, 미니멈 형태의 집이다.

방어 목적으로 동굴에서 수십 명이 모여 살던 원시시대의 집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주거 생활을 몇 달 반복하다 보니 호스텔을 떠돌며 집이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란 생각을 처음 했다.


호스텔보다 신기한 집은 한인민박이었다.

유럽여행 중에 만난 한인민박은 미묘한 동질감을 얻어가는 곳이었다.

민박에선 제로 주거하는 사람들이 남는 방에 떠도는 여행자들을 받아준다.

하지만 집주인 또한 그곳에선 이방인이다.

이방인이 떠돌이에게 당신도 이 나라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허락해주는 기분이었고 그 점에 안도감을 느꼈다.

처음 민박을 이용할 땐 그런 위로를 받고 싶어서 한인민박을 찾았다.

하루 종일 낯선 언어에 치이다 돌아가면 나의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사업장일 뿐이고 한국인 특유의 애국심을 이용한 마케팅이란 걸 알지만 장기여행 중엔 그런 상업적인 집에도 애정을 가질 수 있었다.

만큼 여행을 하고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머물 자리가 절실해질수록 집이 그리웠다.



3. 집순이의 집 생각

돌이켜보면 나는 집 자체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집의 이미지를 좋아했다.

그것도 내가 기준을 세운 지극히 주관적인 이미지를.

떠났던 집에 돌아오는 순간에 온전히 느껴지는 내 집이 있단 생각, 돌아올 곳이 있단 느낌을 사랑한 것이다.

기숙사에서 집으로,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느껴지는 그 향수.

매일 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그리워했다.


그러다 타향살이를 시작하고 드디어 혼자 사는 집이 생겼다.

처음 얻은 집은 나만의 집이 아니었다.

고시원이었다.

절대 혼자 일 수 없는 공간.

새벽 4시에 옆방에 사는 커플이 헤어지면 의도치 않게 생중계를 듣게 되는 곳.

건넌방 사람의 빨래를 외우게 되는 곳.

지하철보다 옆사람이 가까이에 붙어 있는 곳.

같은 침대를 나눠 쓰는 호스텔보다 타인의 체취를 강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공간이 고시원이었다.

고시원에 살 땐 집에 살면서도 집이 그리웠다.

어디 가냐는 물음에는 '집에 간다'는 말 대신 '방에 간다'라고 답했다.


지금은 고시원보다는 좀 나은 원룸에 산다.

이제 옆집 사람이 언제 빨래를 하는 몰라도 되지만 아직 짜장면을 배달시키는지 택배가 왔는지 정도는 알고 지내야 하는 수준이다.

가장 전형적인 자취의 형태를 살고 있다.

침대에서 가스레인지를 마주 보고 빨래를 널면 건조대를 건드려야 화장실에 갈 수 있는 방이 내 집이다.


이렇게 보니 안 살아본 집이 없다.

처음 태어난 집은 펌프식 우물과 사극에 나오는 가마솥은 있지만 욕실은 없는 낡은 주택이었다.

그러다 아파트란 곳에 이사를 갔고 기숙사와 각종 숙박업소를 경험하고 고시원과 원룸으로 흘러들어왔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주거형태를 경험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좀 더 그럴듯한 이상적인 집에 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4. 강제적 미니멀 라이프

요즘 관심사는 집을 없애는 방법이다.

버리며 산다.

미니멀 라이프 같은 그럴듯한 신념 때문이 아니다.

원룸은 월세로 부여잡은 위태한 집이라 이사와 동시에 이사를 걱정한다.

짐이 하나라도 늘어나면 떠나기 어렵기에 여행가방의 무게를 줄이듯 물건을 치우고 버린다.

언젠가 떠나야 할 곳이라 생각하니 비우게 된다.

온전한 내 집이 없다 보니 그런 아이러니한 취미를 갖게 된다.

머물 곳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떠나야 하는 곳이 집이다.

물건을 살 때 버릴 방법을 고민하며 구입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며 ‘그래도 난 소유가 더 좋은데?’라고 생각했던 나지만 버릴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집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유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

집에 살면서 매일 다른 집을 꿈꾼다.

떠남을 생각해야 하는 여기가 정말 집인지 의문이 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고 타향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 혼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점점 많아진다.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사연 속엔 집 한 칸 얻어 거기서 잘 먹고 잘살고 싶은 마음이 보인다.

방송가에 집과 인테리어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꾸준히 기획되고 이케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우연은 아니다.

그들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 중이다.



5. 요람을 찾는 인생

달동네 쪽방도 베르사유 궁전도 집이다.

그 형태가 너무 달라 비교하기엔 민망하지만 결국 누군가 살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원시시대의 움집, 유럽의 사치스러운 궁전, 빼곡한 아파트 단지, 조밀한 쪽방촌, 공동체를 꿈꾸는 셰어하우스.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집이다 보니 생각과 형편에 따라 집의 형태는 무수히 많아졌다.

집의 의미야 100명이 있으면 100명 모두 다르겠지만 기본 속성은 결국 내 몸과 마음을 지켜 줄 안전한 공간이다.

안전에 충실한 집이 제일 좋은 집이다.

집은 나 자신에게 주는 복지고, 한 몸 쉬어가는 데 필요한 요람이다.

증조할아버지의 무덤이 만들어진 순간부터 내 무덤이 세워질 순간까지 나에겐 요람이 필요하다.

이번 요람과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임시 요람을 얻어야 한다.

집 생각을 하루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언제쯤 요람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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