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 도시

여행이 시작되었던 곳, 끝맺을 곳

by 사십리터


양곤에 돌아간다는 건 마지막이 가깝다는 것. 마지막이란 조금 서글픈 그런 것. 서글픔을 느낀 건 여행이 끝나서였을까 돌아가기 싫어서였을까?




1. 마지막 야간버스를 기다리며

양곤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JJ버스 사무실을 찾아 야간 버스의 긴 밤을 지새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하지만 사무실 화장실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먹다 남은 미지근한 생수로 겨우 양치만 하고 주변을 서성였다.

버스가 와야 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다.

출발 시간이 한참 지나서 도착한 버스는 탑승까지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인레에서 양곤까지 가는 버스는 야간버스 치고는 출발시간이 이르다.

5시 밖에 안 되는 시간에 출발하기 때문에 버스에 타자마자 잠들지는 못했다.

오늘을 위해 아이패드 영화를 준비했지.

하지만 초저녁부터 피곤이 밀려온다.

별로 한일도 없는데.

약간의 체기도 돈다.

육해공 어디에서도 멀미 없는 체질인데 오늘은 좀 다르다.

아마 인레를 떠나기 싫어서 멀미가 오나보다.


인레를 떠나 양곤에 간다는 건 일정이 끝나간다는 말이다.

끝내기 싫다.

여행 중에 집에 가고 싶어서 힘든 사람들도 있다는데 난 긴 여행일수록 끝이 아쉽다.

아주 잠깐 머물렀을 뿐인 미얀마란 나라에 향수를 느껴버린다.

그것이 향수인지 돌아가기 싫다는 마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자유에 끝이 있단 사실이 믿기 싫은 걸까?

고작 2주도 안 되는 시한부 같은 자유.

내게 혼자 떠나는 여행이란 생활계획표를 1초도 빠짐없이 자유로 채운 시간이다.

초등학교 때 방학 전에 학교에서 쓰게 했던 생활계획표.

잠자기, 밥 먹기, 숙제 시간 등등을 빼고 가장 열심히 그린 칸이 자유시간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 동그란 생활계획표 전체에 '자유'라고 쓴 기분이다.

여행 중엔 그 어떤 스케줄을 만들고 계획을 세워도 그 시간까지 자유시간이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마저 온전한 자유다.

그런 시간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멀미가 시작되나 보다.

20170113_091653.jpg 잊기 싫은 인레의 풍경




2. 휴게소의 짧은 식사시간

JJ버스가 출발할 때 주는 빵 도시락을 주지 않더니 휴게소에 내려 밥을 먹인다.

휴게소라기 보단 식당 겸 매점 같은 곳이다.

버스가 출발할 때 식사 주문을 받았는데 도시락이 아니라 이곳에서 밥을 주는 모양이다.

이유 없이 느글거리는 속 때문에 식욕은 전혀 없었지만 테이블에 앉았다.

실수다.

내가 왜 볶음국수를 주문했지.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내 속이 나빴다.

도저히 먹을 수 없다.

함께 주는 탄산음료만 먹고 먹다 만 누들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자 동네 개들이 모여든다.

테이블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며 애교를 핀다.

음식에서 닭고기만 골라 주니 잘 먹고 다른 테이블로 사라진다.

30초짜리 애정이다.

잠이나 푹 자야겠다 싶어 음식을 남겨두고 세수를 한 뒤 차에 올라탔다.

양곤을 생각하며 억지로 잠을 청한다.

IMG_0393.JPG 야간버스의 저녁 식사로 먹은 볶음국수




3. 양곤 도착

언제 도착할지 막막했는데 도착해보니 금방이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눌러 담고 버스에서 힘들게 내렸다.

눈이 무겁다.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로 붓고 얼어서 커진 눈꺼풀이 묵직하게 동공을 누른다.

피곤과 추위가 눈 속에 갇혔다.

그래도 씩씩하게 짐을 들었다.

여긴 대체 어디길래 내려준 건지 주변을 살피는데 아무것도 없다.

터미널도 아니고 여긴 어디람.

버스회사의 직원인지 어떤 아저씨가 우르르 내린 손님들에게 택시를 잡아준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한국인들이 있어서 택시를 셰어 했다.

양곤의 외곽인 듯 한가한 길을 가던 택시가 갑자기 멈춰 선다.

택시기사는 근처에 있던 다른 택시 기사를 보더니 우리를 데려가라고 한다.

아마 우리가 말한 목적지가 어딘지를 제대로 못 알아 들어서 다른 기사에게 우리를 넘긴 것 같다.

얼결에 택시를 옮겨 탔더니 괜히 우습다.

옮긴 택시가 더 좋아 보이니까 넘어간다.




4. 양곤으로 출근

저녁 먹기도 이른 시간에 버스를 탔는데 양곤에 도착하니 출근시간이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양곤의 대단한 교통체증이 펼쳐진다.

버스정류장에선 정원을 한참 넘긴 만원 버스가 위태롭게 지나가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또 버스를 기다린다.

저 사람들은 양곤으로 출근하는 걸까?

난 양곤에 놀러 가는데.

참 유치하게도 뿌듯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참을 꽉 막힌 도로 속을 가다 보니 나까지 양곤에 출근하는 기분이다.


여행을 끝마치기 위해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양곤 여행의 시작, 그리고 미얀마 여행 마지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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