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모드로 세팅

현지인 코스프레하기

by 사십리터

아직 생소한 나라 '미얀마(버마)'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그곳을 여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갖춰나갔다


1. 같은 풍경도 달리 보게 만드는 ‘첫’ 순간의 힘


미얀마 여행자들의 첫 기억은 양곤에서 시작한다.

육로 입국에 제약이 많다 보니 외국인은 대부분 비행기를 타고 양곤으로 들어온다.

양곤은 수도는 아니지만 미얀마의 제1도시다.

대도시가 다 그렇듯 몇 가지 관광지를 빼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인구밀도, 교통체증, 쇼핑몰이 있는 표준형 도시가 양곤이다.

심지어 미얀마에서 한류가 정말 있긴 있는지 롯데리아, 지오다노 같은 익숙한 브랜드부터 신한은행 같은 의외의 기업까지 보여서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도심의 육교에서 찍은 사진, 멀리 양곤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술레 파고다'가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은 모두 다녀왔기에 할 수 있는 대사!

이렇게 끼적이는 나는 미얀마의 첫 아침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행성에 온 기분을 느꼈다.

온 우주에 하나뿐인,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일 본 그 태양을 보면서 말이다.

양곤의 첫날을 보낸 게스트하우스는 식민지 시대에 지은 낡은 영국식 건물의 4층에 있었다.

좁고 험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본 첫 풍경은 대단했다.

바로 전날까지는 건기인 양곤에 비가 오는 이상기후가 벌어졌다는데,

이날 날씨는 매우 맑음, 지나치게 맑음, 칭찬할 정도로 맑음, 맑음이었다.

이쯤 되니 비둘기 우는 소리도 지저귀는 카나리아 소리로 들린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조심해야 했지만 술 없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분이었고

나는 미얀마를 걷기 시작했다.



2. 현지인의 첫 번째 조건, 돈

미얀마에서 나의 첫 번째 임무는 환전이었다(미얀마의 화폐인 짯은 한국에서 직접 환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달러를 구입한 뒤 현지에서 달러를 짯으로 환전하는 이중환전이 필요하다).

사야할 것이 많았지만 환전소가 문 닫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내 수중엔 미얀마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용감하고 무식하게 최소한의 정보도 없이 가이드북만 들고 떠나서 스마트폰 유심이 절실했다.

은행과 사설 환전소의 환율을 비교하고 싶어서 은행을 찾아다녔으나 문 닫은 은행을 3개쯤 보고서야 깨달았다.

오늘이 토요일이라는 걸.

평일 주말 구분 없는 여행자 달력을 쓰다 보니 첫 계획부터 예상 밖의 전개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래도 신난다.

오늘은 여행 ‘첫’ 날이니까.

결국 눈에 보이는 제일 가까운 사설 환전소에서 첫 환전을 시도했다.

여행자들이 많은 시내여서인지 ‘Money Exchange'라고 영어 간판을 내건 사설 환전소는 여기저기 보였다.

내가 들어간 환전소는 금은방과 환전소를 겸하는 곳이었고 100달러 지폐를 내밀었다.

집에서 있는 돈 없는 돈 긁다 찾은 구권 달러였다.

지폐를 받은 직원은 감정을 시작했다.

환전했던 사설환전소의 환율

수십 번 환전을 해봤지만 미얀마의 환전은 특이하다.

미얀마에서 환전을 하려면 점하나 찍히지 않은 빳빳한 100달러가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낡은 돈이거나 100달러 이외 화폐는 환전 거부당하는 일도 종종 있다(하지만 야간 버스와 호텔비를 달러로 결제했을 때 거스름돈은 낡은 돈을 주더라...).

구권 환전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두근거렸다.

진품명품 쇼를 마친 직원은 다행히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려 환율을 설명했고 환전을 해줬다.

짯(k)이라 부르는 미얀마의 화폐는 동전도 있다고 하지만 유통이 되지 않는 듯 본 적이 없다.

짯은 단위가 신기할 정도로 우리나라 원과 비슷해서 물가 파악이 쉬웠다(대략 만짯=만원).

다만 미얀마는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미얀마만의 글자로 쓰고,

구권 화폐의 경우 굉장히 낡고 지저분해서 화폐 구석에 쓰여있는 아라비아 숫자를 읽기 힘들기 때문에 화폐 구분이 어렵다(달러와 달리 짯은 낡아도 거래에 문제가 없지만 딱 한번 조금 찢어진 50짯을 거부당했다).



3. 현지인의 두 번째 조건, 또 하나의 번호

책이나 블로그에는 미얀마의 인터넷 사정을 매우 나쁘게 말한 곳이 많던데 현지 사정은 다르다.

4G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정도고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서울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론 컴퓨터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스마트폰의 보급률은 꽤 높았다.

(구식 가이드북에서 미얀마의 인터넷 사용률이 세계 최저라는 말이 맘에 들어서 여행을 결심한 내 입장에선 조금 김 빠지는 말이지만.)

환전 후 유심 살 돈이 생긴 나는 바로 옆에 있는 휴대폰 가게로 들어갔다.

직원은 영어로 이야기해줬지만 내 부족한 영어실력으로는 알아듣지 못했다.

대충 눈치로 미얀마에서 가장 큰 통신사라는 MPT 이름을 말했고 5,000짯짜리 탑업카드도 구입했다.

유심과 탑업카드를 모두 구입했더니 직원이 알아서 핸드폰 설정을 맞춰줬다.

시골에서도 쉽게 구입 할 수 있는 스마트폰 충전카드 탑업카드라고 부른다

나는 현재 쓰고 있는 갤럭시폰과 그전에 쓰던 아이폰을 모두 가져가서 공기계인 아이폰에 미얀마 현지 유심을 넣고, 갤럭시는 자동로밍된 상태로 와이파이가 될 때만 사용했다.

2개의 번호가 있는 상황이라 카톡 아이디를 하나 더 만들었고 내가 여행 중인 사실을 알고 있는 5명의 사람에게만 아이디를 알려줬다.

처음 유심을 끼웠을 땐 속도가 너무 느려서 휴대폰의 고장과 유심의 불량 중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을 좀 했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이나 특정구역에서는 작동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시골길을 달리는 야간 버스에서도 사용이 가능했고,

난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행자였기에 잘 쓰다 왔다.



4. 현지인의 세 번째 조건, 전통의상 론지

미얀마 사람들은 전통의상을 일상생활에서 입는다.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불편하겠지만 ‘론지’라는 미얀마 전통의상은 꽤 편한 복장이다.

천을 긴치마 형태로 두르듯 입는데 여자와 남자 모두 같은 생김새의 론지를 입고 묶는 방법만 차이가 난다.

여중, 여고를 다닐 때 겨울에 교복 치마에 담요를 둘렀던 모습과 똑같다.

론지를 입은 현지인, 보통 론지를 입을 때는 상의는 서양식으로 셔츠나 티를 입고 신발은 쪼리를 신는다

터키를 여행할 때 스카프가 햇빛을 막아줘서 두르고 다녔던 기억이 있어 론지도 하나 사기로 했다.

바람이 솔솔 통하는 다리에 쓰는 양산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미얀마의 사원은 맨다리가 보이면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원에 출입할 때 덧입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론지의 가장 큰 역할은 담요가 된다)

양곤의 중앙시장인 보족마켓에서 기념품 삼아 살 생각이라 길을 찾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대중교통은 여행자들에겐 최악이다.

지하철은 없고 시내버스는 현지 숫자로 번호가 쓰여있고, 트럭버스는 일일이 소리를 질러 목적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래서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택시를 타게 되는데 이마저 미터기가 없고 타기 전에 흥정을 해야 해서 불편하다.

(물론 조금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현지 교통수단도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에 양곤에 돌아왔을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하지만 양곤의 교통체증에서는 차보다 사람이 빠르기 때문에 여행 첫날의 남아도는 체력을 이용해서 하루 종일 걸었다.

아직 신호등 없이 눈치로 길을 건너야 하는 미얀마의 교통이 익숙하지 않아서 걷는 게 쉽지는 않았다.

길 찾는 일 자체는 일직선으로 정확하게 구분된 도로 형태 때문에 쉬운 편이다.

표지판에 영어로 쓰여있는 길 번호를 보면서 따라가면 보통은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이국의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양곤의 전통시장인 보족마켓에 도착했다.

현지인들의 터전이자 관광지답게 외국인들도 종종 보였다.

노점을 지나 조금 들어가니 론지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상인들은 ‘쏘 매니 칼라’라고 콩글리시만큼 투박한 발음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론지, 보석, 노점을 구경하면서 마음에 드는 론지를 하나 발견했다.

흥정에 소질이 없기에 12000이라고 쓰여있는 글씨를 보고 핸드폰 계산기에 10000을 써서 보여줬다.

한 번에 알았다고 하는 걸 보니 더 많이 깎았어야 했나 싶었지만 만 원짜리 옷 하나 샀다 생각하고 계산했다.

어린 점원은 론지를 펼쳐서 내 허리에 둘러준다.

론지를 입고 가니 론지는 슬리퍼와 함께 입어야 한다며 자기 가게에서 슬리퍼도 사라는 호객꾼이 따라붙는다.

론지를 입은 나에게 현지인들이 조금 더 친절한 미소를 보여준다는건 내 착각일까?



5. 미얀마의 첫 끼니

시간은 대충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정신은 더없이 기분이 좋았으나 더위를 많이 타는 내 몸은 갑자기 온 여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입맛을 잃었다.

점심을 먹을지 말지 고민하며 시내 쇼핑몰인 팍슨센터 지하에 있는 약국에서 모기퇴치 스프레이를 샀다.

(바로 옆 나라 라오스엔 모기가 없었는데 미얀마에선 모기와 벌레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야간 버스를 타기 전에 한 끼는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가이드북에서 본 국숫집을 찾아갔다.

미얀마 샨 지역의 전통 국수인 ‘샨 누들’을 파는 곳인데 면을 좋아하기도 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미얀마의 첫 끼니로 정했다.

인기 있는 식당인지 사람이 가득했다.

4인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먹기는 좀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아침에 마주친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한국인들이 먼저 와있었다.

합석을 하고 2가지 종류의 누들과 스프링롤을 맛볼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다양한 메뉴를 시키기 어렵다는게 제일 아쉬운데 뜻밖의 행운이었다.

샨 누들은 ‘숩’과 ‘샐러드’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숩은 국물도 있고 향신료가 덜한 느낌이라 맛있게 먹었는데 샐러드는 즐기지 않는 향이 풍겨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스프링롤은 맛은 무난했으나 미리 만들어진 식은 것을 줘서 조금 아쉬웠다.

풍성한 식사를 즐기고 사람들과 헤어진 뒤 주변에 있는 빵집에 들렸다.

입맛도 크게 없고 야간 버스를 타려면 저녁 먹을 시간이나 장소가 애매할 것 같아서 빵이나 좀 사서 버스에 탈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목이 말라서 에어컨이 나오는 매장에서 시원한 과일주스가 먹고 싶었다.

그렇게 주스와 빵을 사고 유유자적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나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못다 한 양곤 관광은 일정을 마치고 다시 양곤에 돌아오면 하기로 기약한다.

숙소에 돌아와서 야간 버스를 타기 위해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겼다.



6. 강남 출퇴근 경험자도 당황하게 만드는

양곤의 교통지옥

양곤의 교통체증은 여행자 입장에선 아주 고약한 녀석이다.

버스시간이나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아주 넉넉한 시간을 잡고 가야 한다.

한집에 열명씩 모여 산다는 인구밀도와 무단횡단이 그냥 횡단인 교통질서는 길 막힘을 부르는 완벽한 하모니다.

양곤의 교통은 베이징의 교통체증을 보면서 더 이상 차가 막히는 걸 보고 감탄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8시 야간 버스를 타기 위해 5시 반에 숙소를 나선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후회한다.

‘아, 더 빨리 나왔어야 하나보다.’



7. 첫 번째 야간 버스

그렇게 창문을 열고 먼지 속을 달리는 택시를 1시간 반쯤 타고 ‘아웅 밍글라 터미널’에 도착했다.

어느 순간 지름길로 가기 시작한 택시는 예상보단 빨리 도착했다.

미얀마의 야간버스는 여러 등급이 있는데 제일 좋은 버스는 대부분 우리나라 우등버스 정도 되는 좌석이 제공되고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함께 탑승해서 음료를 나눠주고 도시락을 챙겨 준다.

목적지가 같아도 버스 회사에 따라 시설, 가격, 시간이 모두 다른데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버스회사는 JJ익스프레스다.

다른 버스들을 보니 대부분 기종도 같고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는데 인기 있는 이유는 역시 페이스북으로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 같다.

여행자 입장에서 확실한 예약과 비용 절약은 굉장히 중요한데 JJ는 페이스북에 영어로 메시지를 보내면 예약이 가능하다.

다른 버스 회사들도 여행사나 숙소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지만 페이스북을 이용해서 JJ버스를 예약하면 수수료가 없다.

나도 한국에서 3개의 버스 노선을 예약했고 양곤 터미널의 사무실에서 모든 노선의 요금을 미리 내고 티켓도 한 번에 받을 수 있었다.

JJ버스의 사무실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직원들이 커피도 나눠준다.

고리를 접으면 손잡이가 만들어지는 JJ의 종이컵

나도 커피를 한 잔 받아 낮에 산 빵과 함께 먹으며 내가 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에 탑승하라는 안내를 받고 숙박과 이동을 해결해줄 버스에 올라탔다.

야간기차는 많이 타봤지만 야간버스는 별로 타보지 못했기 때문에 불편함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푹 잠들었고 휴게소에서 강제 기상을 했을 때 빼고는 깨지 않고 잘 잤다.

비행기 10시간을 타도 잠 한 숨 못 자는 나인데 그 뒤로도 타야 할 2번의 야간버스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힘든 바간 일정을 직감한 몸이 푹 쉬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12시 가까운 시간에 도착한 미얀마의 휴게소, JJ버스의 유일한 단점은 휴게소에 정차하면 강제로 내려서 30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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