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끝난 이탈리아 여행

로마 시내에서 맞은 여행의 마지막

by 사십리터


보통 이탈리아 여행은 로마에서 시작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베네치아에서 시작한 여행은 로마 시내관광으로 끝난다.


# 콜로세움 입성일

로마에서 "왔노라, 보았노라!"를 외쳐야 하는 콜로세움과 기타 등등의 유명한 장소들.

어쩌다 보니 로마를 떠나는 오늘까지도 랜드마크를 보지 못했다.

휴관일이나 예약 시간을 맞추다 보니 시내 관광이 제일 뒤로 밀리는 분별없는 일정이 되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지만 밤 비행기를 타서 하루를 온전하게 로마에서 보낼 수 있다.

드디어 콜로세움을 시작으로 로마 시내 관광을 한다.

콜로세움은 밤에 더 멋지다!

로마에 많은 유명한 것 중 상징물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콜로세움이다.

모두의 마블에선 '랜드마크 건설!' 효과음 한마디면 나타나지만 실상은 온갖 사연이 깃든 건축물이다.

콜로세움의 위대함은 거대한 크기 때문이 아니다.

역사적 배경 위에 지어져 역사적 사연을 담고 있어서다.

이 건축물이 지금은 좀 모공 같은 구멍이 뻥뻥 뚫린 흉물이라 대단한걸 잘 모를 수 있다.

오래된 만큼 전쟁과 반란, 약탈 등 너무 많은 사연을 품어 조금은 초라해진 탓이다.

하지만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하면 4층짜리 건물이 40층 정도로 보인다.

콜로세움은 72년에 만들기 시작했다.

172년 아니고 1072년 아니고 그냥 72년.

지저스!

예수가 태어난 지 72년 된 그때다.

한반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들이 서로 알 깨고 태어날 때 이들은 돌을 깨서 콜로세움을 만들었던 거다.

우리가 알에서 깨어난 조류(주몽을 비롯한 우리의 왕들)나 지렁이(야래자전설에 의하면 견훤은 지렁이가 여자를 임신시켜서 태어났다)를 왕으로 모실 때, 이들은 원형극장이란 걸 만들어 공공문화를 즐겼던 거다.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의 역사를 신성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우리가 지렁이를 왕으로 섬길 때 지구 반대쪽에선 예수가 박해당하고 있었단 사실이 놀라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콜로세움의 위대함에 대한 지식과 감동은 좀 별개다.

글래디에이터조차 보지 않은 나에겐 솔직히 그냥 좀 크고 멋진 건물 정도다.

그래서 처음 로마를 방문했을 땐 남아도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입장은 하지 않았다.

나의 역사 공감 능력이 이 정도인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번엔 콜로세움에 들어가는 긴 줄에 동참했다.

이 거대한 유적의 안이 궁금한 엄마와 한창 역사 공부할 나이인 동생이 있으므로.


# 긴 줄 끝에 콜로세움 온다

콜로세움의 줄은 듣던 대로 길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유독 길게 느껴진다.

이 긴 줄의 비결은 적은 직원이다.

들어오려는 사람은 수백, 수천인데 고작 2명의 직원이 티켓을 팔고 있다.

그리고 서양인들은 티켓 하나를 사면서도 참 많은 질문을 한다.

대체 뭘 물어보는지 창구 앞에만 서면 호기심 폭발이다.

로마는 모든 것이 느리다.

게다가 기다리는 동안 어디선가 날아온 모래바람이 따갑다.

그래도 힘든 와중에도 엄마는 콜로세움과 옆의 포로로마노까지 모두 감탄하며 봐줬다.

오히려 딸은 피로가 누적되어 콜로세움의 진짜 공포는 이 더운 날 갑옷을 입고 지하에 박혀 있어야 했단 사실이구나 이런 생각만 들었다.

머릿속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번쩍 했으나 이곳에 서있으니 그런 생각을 꺼내고 싶지는 않다.

네로황제의 진실이나 공공시설로서의 콜로세움의 가치, 이곳의 실제 용도,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콜로세움의 역사보다 중요한 건 딱 하나다.

이제 어디 가서 콜로세움 들어가 봤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이 안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테니 엄마는 만족했을 거야.

엄마, 이런 자격 없는 가이드랑 다니면서도 포로로마노의 공공수로에서 공짜 물이 나온다고 기뻐해 줘서 고마워.

콜로세움은 그 거대함 만큼 많은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하지만 이 그릇이 진짜 품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닌 거대한 역사다.
콜로세움 통합권으로 입장하는 바로 옆 '포로 로마노'. 로마 역사에서 굉장한 장소지만 사실 이런 유적은 로마 곳곳에 널려 있다.
팔라티노 언덕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포로로마노에선 콜로세움의 전경이 잘 보인다


# 먹고 다니기 힘드네요

'힘들다.'

'조금도 걷기 싫다.'

'나보다 엄마가 더 힘들 거다.'

'동생도 감히 말은 못 하지만 표정을 보니 매우 지쳤다.'

'하지만 엄마한테 마지막 로마일 수 있는데 마지막 날에 관광지 근처의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먹이기 싫다.'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가고 싶었던 맛집 중 하나인 '라 까르보나라(La Carbonara)'에 갔다.

가는 길은 좀 힘들었다.

특별한 재료 없이 맛있다는건 이 식당만이 갖는 노하우가 있다는 것! 지구상에 이 맛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딱 한군데란 사실은 언제나 즐겁다.

우리에게 익숙한 까르보나라는 미국과 일본을 거치면서 크림소스가 듬뿍 묻은 맛이다.

본고장의 까르보나라는 크림이 안 들어가서 한국인들에게는 좀 낯선 맛이다.

이탈리아 가서 까르보나라 먹지 말라는 말도 전해진다.

'라 까르보나라'는 리얼 까르보나라의 원조 식당으로 알려진 맛집이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실상은 현지 맛집에 가까운 오래된 레스토랑이다.

이 정도 타이틀이면 여행 마지막 날을 장식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찾아왔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눈에 띄는 현지 느낌 풀풀 나는 레스토랑이었다.

결과는 성공.

음식은 맛있었다.

바삭하게 튀긴 베이컨이 더해진 스파게티는 짭짤하고 고소해서 내 입맛엔 딱 좋았다.


# 이제는 체력이 없다

사실 우리는 모두 체력이 없는 상태다.

해외는 물론 한국에서도 택시를 타지 않는 나라서 멍청하게 엄마 생각을 안 하고 도보나 버스만 이용했던 거다.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짓이었다.

결과적으로 점심 이후 일정이 이렇게 되었다.

판테온에서 즐거운 일 : 고대 건축의 아름다움 느끼기 (X) / 긴 성당 의자에 앉아 있던거 (O)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서 보람찬 일 : 까라바조의 성 마태오 감상 (X) / 의자에 앉아 숨고르기 (O)

스페인 광장에서 제일 먼저 한일 : 광장의 여유를 느끼며 쇼핑하기 (X) / 계단에 앉아 뻗기 (O)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적절한 타이밍의 휴식이란 걸 뼈에 레터링 한 하루였다.

그렇게 우리의 이탈리아 여행은 스페인 광장에서 오드리 헵번 같은 우아함이 아닌 그녀가 먹던 젤라또가 푹 녹은 형상으로 끝났다.

우와 진짜 힘들었다!

판테온. 로마의 유명 관광지 중 입장이 제일 쉬운 것 같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까라바조의 그림 덕. 입장료는 없지만 그림 앞에서 동전을 넣어야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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