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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Oct 18. 2017

하룻밤의 크루즈

실야라인 탑승기

북유럽 여행은 대부분이 '이동'에 대한 기억이다. 여행이라기 보단 기차부터 배까지 온갖 교통수단을 이용해 북유럽을 지나가는 일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이동은 '실야라인(Silja Line)'에서 보낸 하룻밤이다. 


러시아에서 시작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지나는 길.

이번엔 핀란드에서 스웨덴으로 넘어갈 순서다.

국경을 넘는 방법에 여러 가지 방법 중 내가 선택한 방법은 '실야라인(Silja Line)'이다.

실야라인이 뭐냐면 바로 이거다.

이 커다란 배가 바로 하룻밤의 크루즈를 경험할 수 있는 실야라인이다.

돈 없는 서러움을 온몸으로 체험 중인 학생 신분이지만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할인이 된다.

예약은 핀란드에 도착한 날에 시내의 실야라인 사무실에 해뒀다.

유레일(rail)패스인데 첫 개시를 기차가 아닌 배로 해버렸다.

티켓을 받고 배에 탑승하니 별세계다.

화장실 가기도 어려운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여기까지 온 터라 그야말로 대궐 같았다.

일단 배 내부의 으리으으리함에 한번 놀래주고 방을 찾아갔다.

진짜 크루즈선에 비하면 약소한 규모지만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탄 배에 비해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신난다!

유레패스로 예약 가능한 방은 4인실이고 창문도 없지만 예약비는 43유로였다.

대단히 싼 가격은 아니지만 샤워실 딸린 방이었고 조식 뷔페가 포함되어 있다.

이래저래 즐길만한 시설도 있어서 그 정도 예약비는 낼 만했다.

무엇보다 4인실 캐빈을 나 혼자 사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려가 아니라 동양인이라 격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시는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한 칸에서 자는 시베리아횡단열차 안에서 세수도 못 하며 1주일을 보내고, 호스텔에서 자는 생활 중이라 한국을 떠난 뒤 한 번도 개인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하룻밤이라도 혼자 보낸단 사실이 좋았다.

밖에 나를 부르는 유흥시설이 있었지만 한참을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한 이유다.

원래는 4개의 침대가 펼쳐져 있겠지만 혼자 쓰기 때문에 침대가 1개만 오픈되어 있고 나머지는 접어서 벽에 붙어 있다
수건과 일회용 양치컵도 있는 화장실. 좁지만 청소상태 좋은 개인 화장실이 생겨서 행복했다.

방 구경을 마치고는 신나서 배 안을 돌아다녔다.

양옆에 늘어선 면세점에서 물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맥주였다.

실야라인은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를 오가는 국제선이기 때문에 내부에 면세점이 있다.

북유럽의 눈물겨운 물가 사이에서 음료 한잔 사 먹는 것도 두려웠을 때라 면세 맥주 넌 감동이었다.

(환타 500밀리 한 병이 4천 원씩 하던 물가 속에서 난 편의점만 가도 손을 떨고 기침을 했다)

맥주와 미트 파이로 저녁을 해결하고 조금씩 은밀한 곳으로 이동했다.

식당과 상점들이 펼쳐지고 작은 공연도 열린다

한국에선 할 수 없는...

은밀한 그런 것...

법에 저촉되는...

카지노로 갔다.

실야라인 구석에 있는 오락실에 가까운 카지노

하지만 배 안에 있는 카지노는 규모부터가 오락실 수준이고 이용객도 단순 관광객이라 라스베가스나 마카오의 카지노와는 전혀 달랐다.

그래도 카지노 입장이 아무 때나 가능한 건 아니라 조금 기웃거려봤다.

물론 간단한 도박조차 할 줄 모르고 낭비할 돈이 1유로도 없기에 초미니 카지노에서 재빨리 나왔다.

카지노를 벗어나 향한 곳은 사우나다.

핀란드의 상징 중 하나인 사우나.

정작 헬싱키에선 즐기지 못했지만 실야라인 안에도 사우나가 있다.

요금에 비해 대단한 시설은 아니지만 배 안에서 긴 밤을 보내는 방법으로는 제법 탁월했다.

비수기라 찾는 사람도 없어 혼자 즐길 수 있었다.

먹고 쉬고 유흥을 즐기고 에헤라디야 잠자리에 들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독방 찬스 속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엔진 소리가 시끄럽고 밖에서 단체여행객이 술을 먹고 난동을 부렸지만 그래도 잘 수 있었다.

피곤하니까.

캐빈 요금에 포함된 조식 뷔페

유레일패스 뽕 한번 뽑아보겠다고 별 생각 없이 탄 실야라인.

의외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여행 속의 여행 같은 기회였다.

언젠가 초대형 크루즈선을 타고 장기여행을 떠나는 꿈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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