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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Oct 21. 2017

스웨덴을 스쳐 노르웨이로

스톡홀름에서 보낸 짧은 시간, 그리고 노르웨이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몇 개 나라나 다녀왔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퍽 난감한 질문이다. 한 도시에서 1주일씩 머무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곳도 있지만, 주막에 들리듯 시간관계상 잠자리가 필요해서 스치기만 했던 나라들도 있다. 그중 하나가 스웨덴이다.



#  눈 떠보니 스웨덴

핀란드에서 잠들었는데 일어나니 스웨덴이다.

실야라인의 창문 없는 컴컴한 캐빈에서 눈을 떴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라 서둘렀다.

창문이 없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보름 만에 깊이 잤다.

배는 이미 정박했지만 여전히 레스토랑에 앉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여유로워지고 싶지만 내일 바로 노르웨이로 떠나는 촉박한 일정이었기에 바로 지하철로 가야했다.

스톡홀름 시내 풍경


# 스톡홀름 한바퀴

숙소에 짐을 뱉어내듯 놓고 스톡홀름 시내로 나왔다.

사실 별다른 스톡홀름엔 관광지가 없다.

그냥 왕궁과 시청사 주변, 구시가지를 둘러보는 정도다.

아무래도 관광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

내 관광도 유난히 키 크고 잘생긴 사람들 사이에서 난쟁이가 된 기분으로 두리번거리는 게 전부였다.

옷이라도 좀 예쁘게 입었으면 키 작은 동양인 요정 흉내라도 내봤을 텐데 현실은 바람막이였다.

부슬부슬 비가와서 스산했고 덕분에 감기기운이 왔다.

컨디션이 최악으로 다다랐다.

그래도 스톡홀름의 올드타운인 감라스탄(Gamla Stan)은 예뻤다.

유럽인들은 서울이 현대적 건물과 전통 건물이 섞여 있어서 좋다는데, 나는 이렇게 옛날 건물만 모여 있는 유럽 도시의 풍경이 신기하다.

차는 다 아스팔트 위에서만 다니는 줄 알았기에 도로가 돌로 되어 있는 모습도 재미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오래된 유럽의 건물들은 대충 찍은 사진도 엽서로 만들어준다.

처음 맛보는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바람막이 속으로 살랑살랑 들어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 반질반질해진 돌바닥의 느낌이 좋았다


# 스웨덴 왕궁 앞에서 이방인이 되다

감라스탄을 돌아다니다 왕궁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처음 보는 유럽의 왕궁은 동양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스웨덴 왕궁은 왕이 떠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아직 왕실이 남아 있는 나라의 왕궁 앞에 선다는 사실이 오묘한 기분을 선사했다.

왕이 있는 나라의 국민이 우리나라의 빈 궁전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내가 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왕궁이 신기해서 바라봤지만 여기서 제일 이질적인 존재는 나다!

사실 그날의 왕궁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는 혼자 다니는 동양인 여자, 바로 '나'였다.

잠시 앉아 있으니 남자아이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 아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과제를 받아 외국인과 인터뷰를 하고 싶단다.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스웨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을 물어보고 녹화를 했다.

비록 내 영어 실력이 아이들보다 많이 부족해서(...) 긴 대답은 못 해줬지만.

스웨덴에선 어린아이들도 이런 과제를 수행할만한 수준의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새삼 내가 서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나와 다른 교육을 받은 다른 사람들임이 느껴진다.

뜻밖의 관심을 받아보니 내가 이방인이란 사실도 더 크게 느껴진다.

고작 한국에서 2주 정도를 멀어졌는데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다.

내가 어디까지 타인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감라스탄을 지나다 발견한 빅토리녹스의 거대 맥가이버. 이케아보다 먼저 유명했던 스웨덴의 대표 브랜드다.


# 스웨덴을 스쳐 노르웨이로

볼거리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스웨덴을 스치듯 떠나 다음날 또다시 기차에 탔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 도망치듯 다녔나 모르겠다.

여행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 참 티 난다.

지겹게 탄 기차지만 의미부여를 해보자면 이 기차는 유레일 패스를 이용해서 타는 첫 번째 기차다.

8:29.

이른 시간에 스톡홀름에서 오슬로에 가는 기차였다.

역 안에는 김밥천국만큼 익숙한 맥도날드가 있었다. 

기차를 오래 타야 해서 뭐라도 먹어야 했기에 무려 46SEK(크로나)짜리 맥모닝세트를 주문했다.

(지금 환율로 6,400원 정도)

잠깐의 시간 동안 역 안에 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어서 구경하다 기차에 올라탔다.

북유럽의 기차들은 하나같이 깔끔해서 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기차 안에서 만난 댕댕이. 이정도 대형견도 기차에 함께 탈 정도로 개와 사람 모두 사회화가 되어 있단 점이 신기했다.

6시간 정도 걸려서 노르웨이 오슬로(Oslo)에 도착했다.

지금 보니 엄청난 시간이 걸렸지만 당시엔 기차든 배든 타기만 하면 하루 자는 게 기본이었기에 그리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루하다면 지루한 시간이 흘러 나는 또 다른 나라의 땅을 밟고 있었다.


# 노르웨이의 첫 일정은 '절규'

오슬로는 스톡홀름에 비해선 활기가 있어 보였다.

중심가의 쇼핑거리를 걷다 보니 도시느낌이다.

새로운 호스텔에 짐을 풀고 바로 오슬로 국립미술관(Oslo National Gallery)으로 갔다.

스웨덴에서 워낙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서 뭔가 하고 싶었다.

오슬로 시내. 북유럽에서 자주 보이는 긴 버스들은 트램보다 신기했다. 대체 어떻게 운전하는걸까?

주관적으로 오슬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고르면 뭉크의 '절규(The Scram)'를 꼽겠다.

제목부터 와닿는 이 작품은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패러디가 많아서 익숙하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지만 실물로 보고 싶은 그림이 몇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절규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뭉크의 다른 그림도 봐야겠다 싶어 학생 할인을 받아 전시실로 들어갔다.

미술관에 깊은 곳, 뭉크의 방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오르세미술관전 같은 해외 명화전을 가끔 봤지,만 화가의 고향에서 대표작을 보는 건 느낌이 달랐다.

제목과 터치에서 보여주는 간결한 메시지는 그림 감상 방법을 모르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은, 그림은, 아름다운 것이라고만 배웠던 것과 달리 우울한 형상이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16일.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모르던 것, 낯선 것들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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