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십리터 May 18. 2018

여행과 미니멀라이프의 공통점

캐리어보다 배낭이 좋은 이유


브런치 첫 페이지를 장식했어야 마땅한 글을 이제야 쓴다.

브런치 작가로 지원하기 전, 닉네임을 정하기 위해 참 많이 고민했다.

진짜 작가는 아니지만 아무 이름이나 쓰긴 싫었다.

정작 작가로 지원하기 위한 글은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서 수월하게 써냈으나, 닉네임을 못 정해서 지원하지 못하고 며칠을 맴돌았다.

작가 지원이야 떨어지면 다시 쓰면 된다는 생각이라 그냥 했지만 닉네임은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내 이름을 만든다는 사실이 어려웠다.


임팩트 있고 정체성이 드러나는 닉네임을 가진 작가나 만화가들을 보면 역시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작품보다 그들이 가진 닉네임이 부러울 때가 많다.

이름은 남이 주는 것이라 삶의 방향성일 뿐 삶 자체를 담기는 힘들지만 닉네임은 다르다.

내가 나를 생각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브런치 작가로서 만든 이름은 ‘사십리터’다.

여행 중 내가 들고 다니는 배낭의 용량이 40L다.

여행 중 느끼는 내 삶의 무게가 40L다.

크게 만족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여행한 이야기를 쓰는 브런치에서 사용하기엔 나쁘지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기차에 팽개친 내 여행의 동반자


유럽여행을 결심하고 처음 맞닥뜨린 상황은 배낭과 캐리어 사이의 갈등이었다.

‘두 달이 넘는 여행을 하려면 꽤 많은 짐이 생길 테고 무거울 테니 캐리어가 좋겠지?’

‘하지만 역시 배낭여행이라면 배낭이 있어야 하지 않나?’

기타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배낭을 들었던 이유는 반은 허세였다.

막연하게 배낭여행엔 배낭이 있어야 멋있지 않겠나 싶었다.

유럽은 처음인지라 캐리어와 배낭 중 뭐가 편할지 잘 몰랐고, 배낭은 캐리어처험 돌바닥 때문에 망가지는 일이야 없겠지 싶어 챙겨 들었다.

물론 출발과 동시에 후회했다.

캐리어는 바퀴에 짐의 무게를 흘려 도움을 받지만, 배낭을 이면 모든 무게가 나에게 닿는다.

내 두 달짜리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여행 초반엔 배낭을 꽉 채워 등에 지고, 작은 백팩을 보조 가방으로 써서 앞으로 메고 다녔다.

그 속엔 두달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필품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생필품이란게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가 흐려졌다.

떠나기 전엔 분명 필수라 생각했던 물건들은 한 달이 지나도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자물쇠를 종류별로 챙겨온 이유를 고민해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쓰지 않는다고 무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없는 물건을 들고 다니느라 몸이 힘들었다.

내가 참 쓸모없는 것들이 만든 무게에 짓눌려 사는구나 싶었다.

작은 가방의 거추장스러움이 못 견디게 무거워졌을 때쯤 짐을 줄이고 가방을 버렸다. 

그런 식으로 버리기를 반복하니 여행 끝 무렵엔 오히려 짐이 줄었다.

나중에 돌아올 때는 배낭 밑에 달고 다니던 침낭을 배낭 안에 넣을 정도로 무게도 부피도 줄었다.

그렇게 버리는 것에 너그러워졌다.

작은 배낭을 버리고 더 작은 가방을 샀다


초등학교 때 쓰던 지우개 하나까지 버리지 못하던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방법을 배웠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기쁨을 알았다.

진짜 필요한 것들만이 나를 밟도록 허락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어도 알 수 없었던 깨달음이 생겼다.

아직 미니멀리즘, 미니멀라이프 같은 말이 유행하기 전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느꼈다.

배낭을 선택한 의도는 하찮았지만 결과적으로 깨달음은 얻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십리터’란 이 이름은 내가 사는데 필요한 무게를 담은 이름이다.

평소 성격과 관계없이 여행 중에는 간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여행 중 필요한 물건이 삶 자체라면 내 인생을 부피로 계산한 것이 사십리터다.

배낭을 멘 나를 보면 캐리어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놀랜다.

160cm도 안 되는 여자애가 커다란 가방을 들쳐 맨 모습이 꽤 힘들어 보이는 모양이다.

가끔 짐을 들어보고는 무겁다며 호들갑도 떤다.

하지만 내 짐이 특별히 무겁지는 않다.

저가항공 무료 수하물 무게를 넘지 않는 수준이다.

오히려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보다 가볍다.

짐의 모양을 바퀴의 도움 없이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모양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삶이란 모양만 바뀌어도 힘들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걸 지탱하는 사람에겐 그쪽이 더 편하기도 하다.

오늘 집에 가면 나는 또 무언가 버리길 시도할 것이고 정말 필요한 것들만으로 살아가기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여행을 하고, 짐을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소유를 포기하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택배를 포기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는 것은 버리는 것 이상으로 즐겁다.

내가 무소유하는 것은 여행하는 순간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