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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Nov 01. 2017

노벨에서 왕궁까지

노르웨이 마지막 일정

피오르드에서 돌아와 오슬로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이제 북유럽 여행이 정적인 여행이란 걸 잘 알겠다. 오슬로의 마지막 일정도 소동 하나 없이 얌전하다.


# 컴백, 오슬로

6:29.

꼬박 하루 만에 오슬로 중앙역에 돌아왔다.

야간기차 치고는 운행 시간이 짧아서 자다 만 느낌으로 기차에서 내렸다.

오늘 바로 다음 목적지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좀 무리다.

오슬로에 온 첫날 머물렀던 호스텔로 돌아가 오늘 예약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다행히 빈방이 있어 숙소 문제를 해결하고 오슬로에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한다.

트램이 지나가는 오슬로 한복판

첫 목적지는 오슬로 대성당이다.
역시 유럽 관광은 성당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성당보다 주변 풍경눈길이 간다.

트램이 지나가는 길, 유모차를 끄는 사람, 카페의 테라스.

일상은 어느 도시를 가도 존재하지만,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성당에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조금 걷다가 시청 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 옛날 옛날에, 노벨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다이너마이트 때문에 돈을 벌었지만 자신의 발명품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어느 위인.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은 노벨 이야기는 다이너마이트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해 노벨상을 만들었다는 결말로 끝맺었다.

어린 나이에도 기승전결의 이상함을 느꼈다.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사람들을 죽게 했는데 왜 위인이고, 죽은 사람들과 노벨상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어린이용으로 압축한 노벨의 일대기로는 의문만 남았다.

노벨은 부는 충분히 누리고 살았으니 죽어서는 명예를 누리고자 노벨상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조금 머리가 크고 든 생각이었다.

본인 재산을 털어 그런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건 더 나중의 일이다.

뭐, 오슬로에서 중요한 건 노벨의 일대기가 아니니까 별로 상관은 없다.

핵심은 오슬로 시청사가 노벨평화상의 시상식장이란 사실이다.

노벨상이 만들어지던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합병한 상태라 시상식도 두 나라에서 하게 되었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나머지는 노벨의 고향인 스웨덴에서 한다.

한국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기서 시상했다.

시청사는 큰 행사에 알맞은 화려한 모습이다.

촌스런 화려함이 아니다.

노르웨이의 역사적 사건과 국민들의 모습이 담긴 작품이 벽을 감싸서 장엄한 화려함이 느껴진다.

2층으로 올라가면 뭉크의 방이 있다.

과연 뭉크의 도시답다.

이곳에 있는 그림은 '일생'이다.

`뭉크하면 절규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이 방에선 시민들의 결혼 언약이 있기도 하다는데 뭉크의 이미지 때문에 그런 축복이 어울리는 장소인지는 좀 의문이다.

'절규'만큼은 아니지만 '일생'도 밝은 느낌은 아니다.

뭉크의 작품 '절규'가 걸려 있는 방


# '킹'덤 노르웨이

시청을 나와 주변을 걸었더니 비둘기가 보인다.

유럽은 비둘기도 한국 비둘기보다 큰 것 같다.

비둘기를 피해 다시 트램에 올라타서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은 생각보다 좀 참(?)했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색도 화려 하지 않다.

몇 주 뒤 베르사유궁전을 볼 때쯤엔 완전히 잊혔을 정도다.

건물이 하나 뿐이라 더 조촐하게 느껴졌는지도...
왕궁의 유일한 이벤트인 위병교대식

하지만 왕궁을 둘러싼 공원은 좋다.

잔디와 나무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여유가 유쾌하다.

왕의 공간인 궁전보다 시민들의 터전인 공원이 더 좋다고 의미 부여를 해본다.

국토의 3%만이 경작 가능한 땅이라는 노르웨이.

그런 노르웨이의 국가(國歌) 제목은 '그래, 우린 이 땅을 사랑한다'이다.

이 정도면 한국의 텃밭에서 키우는 농작물이 노르웨이 전체에서 나는 작물보다 많지 않을까?

이런 땅을 최고의 복지국가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지 짐작도 안된다.

이런 척박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원이란, 땅이란 더 큰 의미를 갖지 않을까?

입헌군주제인 척박한 국가의 왕궁 옆 공원.

노르웨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에 느긋하고 복잡한 생각을 즐기기 좋은 장소였다.

왕궁 근처 공원엔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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