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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Nov 24. 2017

암스테르담 가는 길

조금 힘들게 도착한 도시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는 꼭 가고 싶었던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예쁜 풍경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정에 문제가 생길까봐 당황했던 날이다.



#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고 싶다

쓸 일이 없어진 노르웨이 동전을 털어 쓰고 기차에 탔다.

이제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노르웨이에서 꽤 멀다.

비행기를 타야 마땅할 거리지만 나는 다시 야간기차를 선택했다.

중간에 예테보리에서 기차를 갈아타고도 덴마크에서 다시 기차를 바꿔 타야 하는 복잡한 일정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이 생겼는지 기차가 가던 길을 돌아간다.

중간에 역도 아닌 곳에서 뜬금없이 서더니 한참 후에 모두 내려서 버스로 옮겨 타란다.

다음 기차를 타야 해서 조금씩 초조해진다.

정확한 사연도 모르고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버스에 탔다.

결국 예테보리역에 2시가 넘어 도착했고, 2시 40분 코펜하겐행 기차에 간신히 탑승했다. 

6:28에 코펜하겐 역에 내려서 뛰어서 6:46 암스테르담행 기차에 탔다.

원래대로면 코펜하겐 시내에서 여유롭게 밥 한 끼 정도는 먹을 생각이었는데 내가 왜 뛰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차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지만 이때가 여행 중 제일 당황한 순간이었다.

기차에서 본 어느 들판


지금은 별 다른 기억도 없을 정도로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그 당시엔 적잖이 당황했다.

내 계획이, 내 일정이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상황을 처음 겪었다.

내가 대처 가능한 상황인지를 수십 번도 더 계산해야 했다.

계획이란 작은 변수 하나에도 흔들리는 불안한 존재다.

사실 이런 일은 장기여행에선 워낙 많다. 

몇 번 더 이런 일을 겪으니 나중엔 기차를 못 타도 아무 신경 안 쓰는 일도 가능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주일 이내의 상황까지만 티켓이나 호텔 예약을 마치는 버릇도 생겼다.

그러다 내가 사소한 일에도 당황하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은 건 몇 년 뒤 스페인에서였다.

엄마와의 여행 중 스페인에서 타야 하는 기차가 파업 때문에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말 그대로 내가 타려는 기차 전체를 운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직원은 다음에 출발하는 기차의 새로운 좌석을 배정해줬다.

나는 별생각 없이 임시 티켓을 받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계산했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한국에선 파업이 흔한 일이 아니다 보니 꽤 놀랬던 눈치다.

내가 몇 년 동안 사건, 사고에 얼마나 무뎌졌는지를 알게 된 사건이었다.


지쳐서 기차에 내동댕이 친 내 여행의 동반자님, 이날 탄 기차 중 하나는 해리포터에 나오듯 쇼파같은 긴 의자가 마주보는 좌석이었고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야간기차에 탔고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그때의 당황스러움은 참 긴 이야기지만 지금 보면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여행이 끝날 무렵에 별거 아닌 에피소드라 잊어버리고 네덜란드까지 가는 길의 아름다움만 기억에 남는다.

기차에 탑승하고 안심했던 탓인지 이날 네덜란드까지 가는 길은 유럽 기차에서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다.

바다 위를 달릴 때 정말 예뻤는데 사진으로 보면 폰카의 서러움만 느껴진다

      

# 드디어 왔습니다, 네덜란드

결국 기차 연착의 피로와 야간기차의 꼬질꼬질함을 온몸에 바르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자마자 기운을 얻어 중앙역으로 다시갔다.

오는 길마저 예뻤던 암스테르담은 얼마나 예쁜 도시일까.

평소에 네덜란드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나라로 생각해서 기대가 많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굶주린 배를 채워 준 피자, 맛은 없는데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처음부터 실패다. 

국립극장에 갔으나 입장 마감시간이 지나서 근처 폰델 공원으로 목표를 변경해야 했다. 

폰델 공원 입구를 지나니 상상보다 훨씬 크고 멋진 풍경이 보였다.

국립극장 따위는 싹 잊고 두 시간쯤 산책을 했다. 

이때 처음으로 유럽 사람들이 공원을 즐기는 모습을 봤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추운 공원과 달리 봄기운이 돌았다.

아직 꽃이 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러시아부터 시작한 일정 탓에 충분히 봄으로 느껴졌다.

잔디밭에 온몸을 던져 본격적으로 여행 기분을 느꼈다.

상상 속에 있던 전형적인 유럽여행의 이미지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핫도그 파는 트럭 하나에도 즐거워하며 공원을 돌아다니다 다시 중앙역 앞 번화가를 걸었다.

노르웨이까지의 일정에서는 느끼지 못한 밝은 분위기가 감돌아서 기분이 마구 올라갔다.

야간기차에서 내렸지만 피곤한 줄 모르고 왕궁 앞까지 걸어갔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국인도 만났다.

단체로 오신 분들인데 어린 여자애가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이 신기하셨나 보다.

이것도 인연이니 기념사진이나 한 장 찍자는 말을 거절하기가 힘들어 사진에 찍혔다.

사진 싫어하기로 유명한 나지만 너무 오랜만에 나누는 한국어 대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명물이라는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먹으며 돌아다녔더니 더 신난다.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는 한국인에겐 참신한 발상 덕에 별거 아닌 감자도 맛있다.

남은 감자튀김 한 조각을 비둘기에게 던져주니 네덜란드 여행이 즐거울 것 같은 느낌으로 가득하다.

신난다.

네덜란드 번화가엔 감자튀김 전문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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