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가장 높은 곳 사파
15일의 베트남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하라면 판시판산 정상에 오른 순간을 말하겠다. 웨딩드레스를 닮은 구름 위에 올라 탄 순간엔 구름이 모두 내 것이었다.
사파로 가는 기차가 하노이역에서 기다린다.
사파행 기차는 칸마다 시설이 조금 다르다는데 내가 탄 칸은 그리 좋은 등급은 아닌 것 같다.
4개의 침대가 있지만 나와 베트남 로컬까지 두명만 탔다.
내가 신기했는지 아저씨는 말을 건다.
하지만 나는 베트남어를, 그는 한국어를 몰라서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내 핸드폰 충전기를 가리키며 빌려달라는 몸짓을 하길래 충전기를 내주었다.
선명한 베트남 발음으로 ‘땡큐’라고 하더니 기차에서 무료로 나눠 준 생수를 나에게 준다.
나도 한국식 발음으로 ‘땡큐’라고 말했다.
오늘 밤은 별 걱정 없이 잠들겠다.
미처 날이 밝지 못한 시간에 라오까이에 도착했다.
사파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기차역이 없고, 라오까이역에서 내려 다시 사파로 이동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보통 택시나 호텔의 픽업을 이용한다.
하지만 나는 로컬 버스를 탈 생각이라 미션처럼 기차 앞에 진을 친 택시기사를 피했다.
역에서 나와 왼쪽으로 가니 작은 버스가 있다.
앞에는 버스 출발 시간과 요금이 영어로 쓰여있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기사분께 '사파?'라고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어슬렁거렸지만 날이 제법 쌀쌀해서 금방 버스에 탔다.
앉아 있으니 노점상 아줌마와 버스 기사가 문 앞에서 커피를 반강요한다.
못 이기는 척 믹스커피를 사 먹었다.
제법 쌀쌀해서 커피 한잔이 간절하긴 했다.
버스는 정각에 출발했고 외국인은 나뿐이다.
산길을 올라서니 해도 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밝을수록 사파다운 모습이 드러난다.
안개를 지나, 구름을 지나 드러나는 산속의 사파.
매우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기대한 바로 그곳에 드디어 왔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사파 광장이 한눈에 보인다.
작은 성당과 가운데로 푹 꺼진 광장이 퍽 귀엽다.
그리고 그 위를 빠르게 스치는 구름들이 보인다.
광장에는 웨딩촬영 중인 커플이 있었다.
신부의 드레스에 구름이 안겨있다.
곧게 뻗은 몇 그루의 나무들이 더해져서 비현실적 풍경이 만들어진다.
구름의 이동 속도가 빠르다.
내가 지금 구름 옆에 있다!
구름이 가까이 있어서인지 빠른 이동 속도가 느껴진다.
선글라스가 필요할 정도로 해가 쨍하다 갑자기 어두워 지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사파는 날씨가 5분마다 변한다.
비행기에 탔을 때보다 하늘과 가까운 기분이다.
하늘과 수평으로 닿은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은 느긋하게 컨디션을 조절하려 했으나 계획을 바꿔 판시판산에 올라야겠다.
판시판산은 올라가는 길부터 다르다.
인공구조물 없이 좁은 도로 하나만 나있는 산길은 상상 이상의 풍경이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올라가며 느끼는 바람도 좋다.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너무 많은 걸 봤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은 이미 다른 세상이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케이블카 입구까지 갔다.
케이블카를 타는데 사람이 없다.
아주 큰 케이블카인데 혼자 탔다.
다낭 바나힐이 생각난다.
처음엔 여유롭게 과자를 먹다 어느 순간 뚜껑을 닫았다.
중간까지는 경치가 좋다는 생각만 했는데 어느 정도 올라오니 사람을 기다려서라도 케이블카를 혼자 타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서 케이블카 전체가 흔들린다.
바나힐과는 다른 차원이다.
내릴 때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카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여긴 신선의 세계다.
만화 속에서 신선들의 세계로 그리는 그 모습의 실사판이다.
구름 위에 산이 있어서 산꼭대기가 섬처럼 보인다.
나도 구름 하나쯤 렌트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노레일을 타고 도착한 정상은 그 이상이다.
동양적 건물 몇 개와 산, 구름이 전부다.
이토록 맑은 풍경은 처음이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다는 판시판산 정상에 지금 서 있다.
이곳에서 베트남 국기를 보는 순간이 동남아 여행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