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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Mar 04. 2018

베트남의 극한 겨울

가장 사파다운 사파

겨울에 사파를 찾는다면 동남아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 하나는 깨진다. 동남아가 덥다고? 겨울 사파의 필수품은 패딩과 군고구마다.


# 날씨 로또

아침을 먹기 위해 호기롭게 테라스 좌석에 앉았으나 이내 추위가 밀려온다.

따듯한 차로 몸을 녹여봤지만 사파의 추위는 상상 이상이다.

베트남 북부이자 높은 산 위의 마을 사파는 겨울에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기도 한다.

베트남이라고 믿을 수 없는 온도지만 하루 2만 원짜리 호텔에 난방기구는 없다.

그나마 이 호텔은 전기장판이 있어서 언 몸을 간신히 추슬렀다.

호치민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땀을 너무 흘려서 화장실을 안 갔을 정도라고 하는데 사파에는 패딩이 흔하다.

베트남의 지역별 특색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날씨에 있다.

호텔 조식으로 먹은 쌀국수. 날이 추워서 따듯한 국물이 소중하다.

사파의 날씨는 추울 뿐 아니라 변덕스럽기도 하다.

도착한 날에는 날씨가 좋아서 판시판산에서 놀라운 뷰를 봤지만 내려오는 순간부터 날씨가 바뀌었다.

산에서 내려와 저녁을 먹고 나올 즈음 비가 오더니 그 뒤로 사파는 나에게 맑은 하늘을 허락하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 첫날은 쉬고 둘째 날 판시판산에 갔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파를 떠날 뻔했다.

나보다 하루빨리 온 사람들은 눈부신 사파를 봤고, 고작 하루 늦은 사람들은 먹구름만 봤다.

사파를 찾는 여행자들은 하루 차이로 전혀 다른 사파를 기억하게 된다.

반나절이라도 맑은 사파를 본 나는 간신히 로또 4, 5등 정도는 한 셈이다.

사파는 급하게 개발 중이라 마을 전체가 공사 중이라 날씨가 안좋으면 이렇게 스산한 분위기가 된다


# 깟깟마을

소수민족과 함께 떠나는 트레킹은 사파의 매력을 가장 잘 느끼는 방법이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뚫고 계단식 논 사이를 거니는 트레킹 코스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동네 뒷산도 오르지 않는 내 체력으로 딱히 도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 보고 돌아갈 수는 없으니 사파 중심가와 가까운 깟깟마을만 다녀오기로 했다.

깟깟마을은 택시로 가기도 하지만 피곤하지만 않다면 걸어서 다녀와도 좋다.

여유롭게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산길을 내려가면 계단식 논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품에 안기듯 다가온다.

단, 사파는 마을 전체가 공사 중이라 내려가는 길에 흙먼지 날리는 트럭이 오가기 때문에 마스크가 필요하다.

안개가 껴서 멋진데 그래서 아쉬운 깟깟마을 가는 길

그렇게 길을 내려가면 천국이 눈 앞에 있는 카페들과 깟깟마을 매표소가 나온다.

관광지가 된 마을은 입장료를 내야 들어가는 곳이 되었다.

마을 입장료가 한국에서 확인했던 것보다 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관광지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아 조금 싸했다.

깟깟마을 입장료는 70000동

아니나 다를까, 마을 전체가 상점가다.

좁은 골목길 양옆은 똑같은 물건을 파는 기념품이 빼곡하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시켜 물건을 팔게 한다.

내 허벅지 정도 오는 어린 아이들이 전통복장을 입고 한 손에는 팔찌, 한 손에는 과자를 들고 의미 없이 관광객 사이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냥 귀엽지는 않았다.

결국 폭포까지만 내려가고 마을 더 깊은 곳은 생략했다.

풍경도 좋고 마을 한복판에 돼지와 닭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정겨웠으나 민속촌 이상의 특별함은 없었다.

# 사파의 겨울 풍경

사실, 사파에서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은 호텔에 누워서 창밖으로 풍경을 보며 늘어지기였다.

그래서 무려 17달러라는 거금을 호텔에 투자했다.

다낭이나 하노이의 호스텔이 보통 5달러짜리였으니 나로서는 엄청난 투자였다.

그러나 다른 숙소에 비해 비싼 것일 뿐 난방기구 없는 저렴한 호텔이다.

방은 냉랭했고 날씨 덕에 창밖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결국 호텔에서 머무는 계획은 포기하고 온기를 찾아다녔다.

사파가 더 추워지는 저녁

이렇게 춥다고 말해봐야 그래 봐야 베트남이 얼마나 춥냐고,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사파의 추위를 짐작하게 할 증거가 있다.

바로 군고구마.

길을 가다 익숙한 단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다 보면 어김없이 군고구마가 있다.

군고구마란 겨울의 상징 같은 음식이니 사파의 날씨가 군고구마와 어울린다고 설명하면 조금은 와 닿으려나?

다른 증거도 있다.

모닥불이다.

마을 곳곳에는 'fireplace'라고 쓴 가게가 있다.

식당이나 펍 몇 군데서 모닥불을 피워주는데 추운 날씨에 오래 앉아 있기 참 좋다.

펍에 들어가 뱅쇼 한잔을 들고 모닥불 옆에 앉아 있으면 여행자들이 모인다.

불가에 옹기종기 모여 맥주를 마시고 카드게임을 하는 가게 안에서 고양이가 노니는 따스한 순간.

판시판산 정상이나 트레킹보다 어쩌면 이게 진짜 사파다운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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