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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dfpark Jan 21. 2023

푸들영감의 인간산책

10살 강아지에게 산책당하는 삶


점심을 먹은 오후 시간대, 어디선가 조그맣고 하찮은 시선이 느껴진다. 핸드폰을 들여다볼 때도, 티비를 볼 때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다. 올해 10세 잡수신 푸들영감 덕구는 겨울 바람이 무서운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지 최대한 똘망하고 간절한 눈으로 묻는다. 산책 안 가니?


오늘도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켜 패딩과 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후 덕구 영감님과 밖을 나섰다. 요 며칠 추워진 날씨 때문에 산책을 거른 탓에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가는 모습이 총알과 다를 바가 없다. 보통은 여기저기 킁킁대며 마킹하는 게 먼저지만, 오늘은 모아둔 힘이 넘치는지 전력질주로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 나도 속수무책으로 뛰고 있었다. 이쯤되면 사람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강아지가 사람을 산책시키는 것 같다.


덕구 영감님과의 산책은 혼자 외출하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 일단 목적지가 없다는 점. 왔던 길도 험난한 길도 강아지가 가고 싶어하면 따라간다. 그리고 꽤 자주 멈춰서게 된다. 조금 갔다가 냄새 맡으러 멈춰서고, 조금 갔다가 마킹하러 멈춰서고... 영감님 산책을 하며 유산소 운동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산책의 반은 길 위에 덩그러니 서있어야 한다. 영감님 볼일이 끝나실 때까지.



오늘 산책이 퍽 맘에 드신 듯하다


날씨가 너무 추워 꼼짝도 하기 싫은 날, 푸들영감 덕구는 나를 기어이 끌고 산책을 나가신다. 덕구영감님이 아니었다면 휴일 낮 햇빛 볼 일도 얼마 없지 않았을지. 운동부족 INFP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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