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면접을 3번이나 봐요
취업 준비 중인 한 친구는 채용 면접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 말을 듣다가 문득'지금 회사는 어땠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 다니고 있지만, 채용 과정을 돌이켜보니 꽤 험난했던 것 같기도 한 지금 회사. 1차 실무진, 2차 임원, 3차 회장(!) 면접까지 겪으면서 인상깊었던 상황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또 어떻게 위기를 넘겼는지도! '면접을 세 번이나 본다고?' '면접에서 저런 질문도 한다고?' 하며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지도?
참고로 지금 다니는 회사는 직원 2-300명 규모의 중소-중견기업이고, 나는 사내 유튜브 PD로 현재 9개월째 재직 중이다.
1. 실무진 면접 (1:1)
면접 시간은 오후 2시. 서울에서 꽤 고급진 동네에 있는 회사인데 생각보다 건물이 너무 후져서(...) 놀랐다. 예전에 대학교 다닐때 제일 오래되고 낡았던 건물의 복도를 걷는 느낌. 사무실 밖 회의실에서 지원한 팀 팀장과 일대일로 면접이 진행됐다.
일단 나는 이 면접에서 여지껏 봐온 면접들 중 가장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는데, 이유는 면접관이 아주 성의있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먼저 면접 자리에서 자소서&포폴 뒤적거리지 않기. 면접을 여러 번 가보면 생각보다 지원자의 지원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면접 자리에서 훑어보는 면접관이 많다. 반대로 이곳의 면접관이 들고 나온건 질문 리스트 종이 한 장. 내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미리 정독하고 면접에 나온 것이다. 거기다 내 전 회사 이름이 국내에서는 생소한 편이었는데, 정말 정확하게 기억하고 말을 해줬다. 사소한 것 같지만 굉장히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더 자신감있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인상적인 포인트는 1차 면접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원자 없이 딱 나 하나만 불렀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차피 한 명만 뽑을 건데 왔다갔다 시키기 싫어서라고. 그때는 오 꽤 배려심 있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나 말고 그다지 부르고 싶은 지원자가 없었나 싶기도 하다.
나를 맘에 들어한 이유 중 하나가 내가 경력을 부풀리기 없이 '정규직' 경력과 '인턴' 경력을 분리해서 기재했다는 점이라고도 했다. 그걸 보고 이 사람이 굉장히 정직한 사람이구나를 느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다른 사람들은 합쳐서 내는구나... 내가 순진했군...' 생각함. 아무튼 내가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가 '정직함'은 맞으니까, 그게 지원서에도 묻어나는구나 싶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 외 질문들은 아주 곤혹스럽거나 압박적인 느낌 없이, 그냥 내 실무능력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아, 제일 난감했던 질문은 갑자기 여기 들어오면 얼마나 오래 일할 거냐고 물었는데, '...최소 3년?' 이라고 대답해서 면접관이 정말 솔직하다며 껄껄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3년이면 진짜 오래 다니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한건데 보통은 한 번 들어오면 계속 다닌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때 속으로 '아 망했나?' 싶었는데, 이것도 앞에 말한 '정직함'과 얼렁뚱땅 연결이 됐는지 그냥 좋게 넘어간 것 같다.
아쉬웠던 점은 1차에서도 희망연봉을 말했는데, 이때 협의된 연봉에 비해 실제 연봉이 좀 낮았다는 점? 그걸 제외하고는 1차 면접 자체는 굉장히 수다를 떨고나오는 수준으로 편하고 재밌게 진행됐었다. 1차에 떨어지면 그 면접관은 진짜 싸패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사실 처음에는 이 회사가 규모는 큰데 일이 재미없어 보여서 여기 붙어도 가야되나 고민하면서 면접장에 왔는데, 1차에서 인상이 꽤 좋아서 합격하면 입사하기로 결심한 것도 있다. 이래서 사람이 중요한가 봄.
기억에 남는건 회의실 벽에 MBC 로고가 박힌 시계가 걸려있었는데, 이유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아서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2. 임원 면접 (1:1)
본제목에도 쓴 '우리 회사가 왜 널 뽑아야 되냐?' 이 말을 하는 면접관이 진짜로 있을 줄은 몰랐고요? 1차 면접을 너무나 순조롭게 보고 와서 약간의 방심을 한 것도 있다. 서치해본 바로는 대체로 1차에서는 실무 위주, 2차에서는 비전 위주로 질문을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연히 그럴 줄로만 알고 2차 면접에 덜렁 갔더니, 어째 분위기가 좀 달랐다.
같은 회의실에서 면접을 봤고, 면접관은 회사의 상무 되는 분이었다. 일단은 기운부터가 냉담했고, 내가 앞에서 말한 그 '면접 자리에서 자소서 뒤적거리기'를 몸소 실천하고 계셨다. 자소서와 포폴을 실시간으로 훑어보면서 (내 기준) 알맹이가 없는 질문을 계속 던졌는데, 그렇게 느낀 이유는 내가 무슨 대답을 해도 시큰둥해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
Q. (뒤적) 전 회사에서 가장 크게 낸 성과가 뭐예요? (뒤적)
A. 이 프로젝트에서 이 조회수와 이 랭킹을 기록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Q. (관심없음) (뒤적) 기획, 촬영, 편집 중에 제일 자신있는 부분은 뭐예요?
내가 무슨 대답을 해도 관심이 없고 시선을 단 한 번도 마주쳐주지 않는 태도를 보고 이건 뭐지? 싶었다. 1차에서 분위기가 너무 좋게 통과돼서 2차도 당연히 수월하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꽤 당황스러웠고.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여기서 떨어지면 열받는데? 하며 복잡해하던 도중에 '그 질문'이 들어왔다.
Q. 예를 들어서 블랙핑크 지수 유튜브가 있는데, 그 채널을 보면 유튜브는 PD 역량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지수가 매력이 있어서 잘 되는 거 아닌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실제로는 앞뒤로 장황하게 설명을 하셔서 처음엔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 되물으며 생각해보니 지금 나한테 '우리 회사가 유튜브 PD를 왜 뽑아야 하냐? PD 필요없는 거 아니냐?'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냥 포토샵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면 되지, 굳이 디자이너가 왜 필요하죠?' 같은 수준. 아니 본인들이 공고 내서 사람 불러놓고 '유튜브 PD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라고요? 너무 예상치 못한 범위의 질문이라 혼란스러웠다.
뭐라도 입은 털어야겠고. 그때 문득 남자친구가 들려줬던 디스커버리 코리아 채널 썰이 떠올랐다.
A. 디스커버리에 방영된 베어그릴스의 다큐를 국내 모 제작사 인턴이 유튜브용으로 편집했다. 그 분이 빠른 컷편집과 재치있는 드립, 짤, 자막으로 영상을 재미있게 재구성했고, 조회수가 1000만이 넘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유튜브에 적합한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편집자(PD)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대답을 할 때 면접관이 처음으로 내 눈을 봤던 것 같다. 이 질문을 끝으로 면접은 어찌저찌 잘 마무리 되었고, 얼마 후에 2차 합격 통지를 받았다. 역시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지식을 내 것인 척 하는 게 중요하단 것을 느낌.
3. 회장 면접 (2:2)
마지막으로 대망의 회장면접(...!) 날이 다가왔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봐도 회장님과 면접을 보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후기도 없으니 그냥 운에 맡길 수 밖에...) 무슨 질문을 하실지 전혀 감이 안 잡히니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일찍 면접장으로 갔다. 대기실에는 같이 면접을 볼 것으로 추측되는 면접자 한 분이 계셨고, 면접 시간이 한참 지나 임원면접 때 뵀던 면접관 분과 함께 회장실로 들어갔다.
면접 후기를 한 줄 요약하자면 그냥 관상 평가 같았다고 해야할지....? 고요한 회장실에서 내 자소서만 넘겨보셨고 (+어딘가 흐뭇한 미소 장착하심) 질문은 ㅇㅇ대학교네? 정도 밖에 없었다. 그것도 찐 질문이라기 보단 나를 두고 옆의 면접관 분과 대화하는 느낌이었고. 그렇게 싱겁게 회장 면접은 끝났고 3차까지 이어진 모든 채용 과정은 끝이났다.
결과는...? 지금 퇴근 1시간 남은 사무실에 앉아 열심히 마무리 멘트를 적는 중. 3차까지 면접을 본 소감을 말하자면, 규모가 있는 회사는 평가할 임원이 참 많구나 정도. 실무진과 임원진의 관점은 영 다르구나 하는 것도. 다음에는 워라밸 있는 회사의 장단점 같은 걸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