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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dfpark Jan 03. 2023

생일 선물 스포하기

복세편살


중학교 3학년 생일, 친구들에게 봉투에 든 삼겹살과 신라면 5개입을 생일 선물로 받았다.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음… 먹을 거?’라고 두루뭉술 대답한 것의 결과였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파격적인 생일 선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들이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 그 마음이 이해된다.


생일 선물을 하는 것에 단순한 축하의 의미만 담겨있지는 않은 것 같다. 선물을 건네며 ‘우리 친한 거 맞지?‘의 관계 확인, ‘내 생일에도 줄 거지?’의 기대, ‘지금은 아니지만 너와 더 친해지고 싶어!’의 관계 발전의 신호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일종의 사회적 교류라는 것을 나는 2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을 거치며 매년 누군가와 생일을 챙겨주고 챙김받으면서, 20+a년이 지난 지금은 ‘확실하게 개인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


그중 6명 정도로 이루어진 대학 동기 모임이 있는데, 햇수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동기 모임에서는 얼마 전부터 암묵적인 선물 문화가 생겨났다. 바로 갖고 싶은 것을 직접 물어보는 것. 생일이 12월이라고 치면 11월부터 슬슬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해두라는 협박(?)이 시작된다. 평소 갖고 싶은 물건이 많지 않거나 있어도 잘 잊어버리는 나는 그제서야 허겁지겁 나의 위시리스트를 짜낸다. 주로 직접 사기에는 망설여지지만 누가 사주면 좋은 것, 그러면서도 가격대가 괜찮은 선에서 골라 제보를 한다. 심지어 서로의 혼란한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제품까지 직접 골라 보내준다. 그렇게 내가 갖고 싶던 선물들이 집에 하나둘 쌓이게 된다.


선물의 미덕이 서프라이즈라고 한다면 조금 비낭만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측 가능하고 100% 보장되는 선물도 즐겁다. 이 친구가 뭘 갖고 싶어할지, 더이상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선물을 주고받는 게 당연한 것 까지는 아니 사이에 이걸 사달라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올해도 챙겨줬고 내년에도 챙겨줄 사이라면 당당하게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그랬다면 내 중학교 친구들도 덜 고통받지 않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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