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한달 유럽에서 살기
마리엔 다리에서 아이와 싸우다
마리마리마리엔 다리에서 아이와 싸우다
아이와 여행을 하다 보면 난감한 일이 참 많이 생깁니다.
당시에는 아이 때문에 당황스럽고, 여행을 매끄럽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아이 때문이라는 생각에 화가 날 때도 많지만, 곱씹어 보면 아이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해서 생기는 갈등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7살 되던 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행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뮌헨 시내에 머물며 퓌센 근교에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구경하러 다녀오던 날이었다.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1~2시간여를 가서, 다시 산중에 있는 성까지 30분 넘게 걸어 올라가야 하고, 워낙 관광객이 많아서 성 tour를 위한 티켓을 예약해놓고 기다려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기차가 끊기기 전 뮌헨으로 안전히 돌아와야 한다는 상황이 저도 모르게 일정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이 조급하니 모든 상황들에서 여유가 없어지고, 돌발 상황이 묘미가 되는 여행의 목적이 흐릿해지고 스트레스로 여겨지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퓌센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는 이국적인 전원 풍경 사이로 보이는 옛 건물들도 감상하고, 옆에 앉은 외국인 삼촌들과 묵찌빠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경치 그림도 그리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역에 도착해서 성까지 가는데 말을 타고 가자니 비용도 만만찮고 그냥 30분, 산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성 앞에 도착하니 이번엔 수많은 관광객들로 앞이 혼잡스러웠습니다. 티켓팅 줄을 한참 기다리고 나서야 입장권을 끊었는데, 1시간 반 이후에나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랍니다. 당일치기로 뮌헨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조급 해지지만, 가장 빠른 입장시간이니 어쩔 수가 없어 입장하는 계단 한편에서 남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서성이다 우연히 발견한 것은, 멀~~ 리 보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아찔한 높이로 놓인 브릿지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들이 멀리서 보여 이리저리 물어보니,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한눈에 보이는 최고의 뷰포인트이자 사진을 찍으면 그림같이 나오는 장소라고 했습니다. 편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다녀오면 딱 한 시간~ 시간도 때우고,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아이에게 다리를 가리키며 30분 정도 걸리는데 가보겠냐고 하자, 흔쾌히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오솔길마다 세워진 표지판을 따라서 마리엔 다리까지 가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샛길도 있고, 산책로로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길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마리엔 다리까지 바삐 다녀와야 할 것 같은 제 마음과는 달리 목적지를 향해 직진 모드가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계곡마다 내려 가보자 하고, 보이는 곳마다 구석구석 가 보겠다는 아이 때문에 계속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휭~하고 시간도 때우고 다녀오리라는 애초의 제 계획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자꾸만 펼쳐졌습니다. 늦지 않게 다녀 오라며 계곡 아래로 내려가 보는 아이를 채근하며 기다렸습니다. 은근히 신경질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눈치를 주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둘러 둘러 우여곡절 끝에 마리엔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산과 산 사이, 계곡에 연결된 아찔한 높이의 다리 중간까지 가서 보니 정말로 영화에서 보던 디즈니 성 같은 모습으로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바라 보였습니다.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아찔한 다리를 잠시간 즐기고는 시계를 보며 급한 마음으로 다리 중간에서 되돌아가려는데, 아이는 다리 끝을 향해 성큼성큼 가고 있었습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래 다리 끝까지 가보고 싶은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그 정도야 하는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리 끝 연결된 산길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엥?????"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어디 가냐고 묻자,
다리를 건넜으니 이 길 끝까지 가 봐야죠!
라고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너무 예상치 못한 아이 행동과 대답에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투로 '휴... 입장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은 되돌아가야 하는데, 어딜 가니?'라고 채근하듯 물었습니다.
아이는 제 눈치를 살피며, 기가 꺾이고 당황해하며 '이 산 너머에는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가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황당함과 조급함을 누르지 못하고 화를 내며, '저기 추락 위험 표지판 안 보이냐, 다른 사람들은 다 저 다리 위에 있는데 위험하게 혼자 어딜 가려고 그러냐'며 아이를 다그치고 다리를 다시 건너오고 말았습니다.
성까지 되돌아오는 내내, 저는 저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짜증이 나 있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이없어했고 화가 나 있었습니다.
서로 싸늘한 분위기를 뿜으며 곧장 걸어 성 앞에 도착해보니 20분쯤 여유가 있었습니다. 계단에 앉아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마음이 불편했던 저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났는지 뾰로통해 들은 척도 안 하고 잠자코 있던 녀석이 조금씩 입을 뗐습니다. 자기는 엄마가 그 다리에 가보자고 했고, 당연히 다리니까 건너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건너다보니 그 산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에 왜 꼭 들어가 봐야 하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본인은 이제 더 이상 성 안은 궁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데, 화나고 짜증 났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아이한테 노이슈반슈타인 성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가보고 싶냐고 물었지 오늘의 일정에 대해 상세히 알려준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 왔으니 당연히 입장권을 끊고 안에 들어가 봐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쩌면 저 혼자만의 고정관념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묘하게 아이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틀렸을지도...
이런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조급했던 일정에 대한 변명들을 준규에게 늘어놓았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아이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계획한 여행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너한테 한마디 상의 없이 당연히 따르라고 강요했던 것 같다고...
그리고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아이와 전 관람시간이 되어 성안을 건성건성 돌아보고, 아무 변수 없이 뮌헨으로 돌아오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날은 여행을 다녀와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어쩌면 마음에 오래도록 걸리는 날이기도 합니다. 곱씹어 보아도 그날의 저는 참 어른스럽지 못했고, 어른으로서 제가 무조건 다 맞다고 생각한 그 아집스런 모습이 참 부끄러워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연스럽다 여기며 아이도 그럴 거라고 기대하는 생각들이
어쩌면 내가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는 잘못된 "틀"일지도 모른다고...
여행은 일상보다 훨씬 더 자주,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들과 끊임없이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황스러움을 어떤 식으로 대처해 가는지에 따라 그 여행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잘 보이고... 타인과의 관계가 더 잘 들여다 보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