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더럽힐 수 있는 자유

물과 모래의 마법 - 런던 그리니치 공원 놀이터

by 준규네 홈스쿨

저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당연하게, 그리고 충분히 누려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실컷 뛰어놀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뒹굴고, 흙냄새나 나무 냄새를 맡고, 비를 맞고, 흙장난이나 모래 장난을 하며 오감을 느끼고 감각을 발달시키는 경험어린아이에서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바쁜 엄마 아빠 덕분에 아이들끼리 동네에 모여 흙장난이나 숨바꼭질 등 각종 놀이들을 하며 놀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흙바닥에 뒹굴거나 먼지 가득한 곳 등에 숨으며 옷이 더럽혀지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제 친구는 엄마가 새로 사준 옷을 입으려면 이 옷이 더러워져야 한다며 모래더미에서 뒹굴며 옷을 더럽히며 뒹굴기도 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무서워지고, 익명성이 과하게 보장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어린아이들끼리 놀이터에 나가 노는 경우는 더 드물어졌습니다. 거주 환경이 주택 대신 아파트로 대부분 옮겨가면서 아파트의 놀이터 문화가 예전의 골목 문화를 대신하면서 생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그 놀이터마저도 바닥재료는 환경호르몬 가득한 폐 타이어로 만들어진 고무칩 우레탄에 천편일률적인 플라스틱 놀이기구들로 구성되어, 지나치게 안전 및 관리 위주의 놀이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놀이터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장소마저도 고양이 분변으로 인한 위생, 관리상의 문제가 크다며 없어지고 마는 상황입니다.


유럽을 여행하며 만났던 놀이터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놀이터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들 대부분이 자연재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바닥은 모래나 흙, 나무껍질로 구성되어 있고, 놀이기구 또한 가능한 한 자연재료들로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연에서 비롯되는 재료들은 불균일합니다. 그리고 그 불균일한 재질들을 발로 밟고, 손으로 만지고 놀면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운동감각의 기회들은 더 증가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실 생활 환경과도 더 닮아있습니다. 놀이터에서 자연이 주는 불균일한 재질들을 발끝에서, 그리고 손끝으로 매 순간 느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감각운동이 어디 있겠나 싶었습니다.


P20140811_222529068_F8663E27-97A8-4A86-8716-4EF7A0CC7B66.JPG 흔들리는 나무다리
P20140811_223309602_060C1F2C-E3D3-4B66-B50B-CA2CA62D3144.JPG 나무를 깎아 만든 정글짐
P20140811_224648291_1BBBCABA-2EE5-4A87-9C4D-B90C6B9C99BD.JPG 떨어져도 푹신푹신한 나무껍질 아래라 안전~



아이가 5살 이전까지 살았던 아파트의 놀이터 한편에 마련된 모래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을 따라 나온 할머니나 아이 돌봐주시는 아주머님들(연변 아주머니들이 많음) 이 연신 '지지' 라며 아이들이 모래밭에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자기 혼자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집의 마당도 아니고, 숲 속도 아닌 지나치게 안전한 놀이터인 것도 아쉬운데, 그 마저도 옷이 더럽혀 질까 봐 모든 활동들이 보육자로부터 제지당하고, 중단당하기 일쑤이니 말입니다. 그저 그네 몇 번, 미끄럼틀 몇 번 타고 어른 손에 끌려 들어가며 우는 아이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상상력을 더 동원하면, 그렇게 더 놀고 싶어 울음이 터진 아이들에게 선심 쓰듯 TV로 재미있는 영상물을 틀어주며 달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아이들은 아무 데나 철퍼덕 앉고, 아무 데나 엎드리고, 자기 편한 자세로 사물들을 관찰하며 놉니다. 충분히 그래도 됩니다. 특히 몬테소리에서 이야기하는 민감기(6세 이하) 어린이들의 경우를 보면, 같은 활동들을 반복해서 하려 하고, 작고 사소한 것들에 몰입하고 관심을 가진다고 합니다. 가령 하수구 그릴, 흙 속에서 열 지어 가는 개미들처럼 지속적인 관찰을 위해서 아무 데나 앉거나 엎드리는 행동은 유아기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허락되어야 하는 양육 태도이기도 합니다. 불타오르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느라 몰입된 상황에서 옷 더럽혀지는 것쯤이야 중요한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 호기심 충족은 커녕,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 당하고, 제지 당하는 경우들은 너무나 흔합니다. 최소한의 존중은 커녕 절대복종의 굴레에서 꼼짝 못하는 힘없는 어린이에 불과하겠지요. 이런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유년기 경험을 통해 '모래=더러운 것, 모래=불쾌한 것'와 같은 이상한 논리가 자리 잡을 확률도 커집니다. 그냥 한번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더럽혀 진 옷을 갈아입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발에 붙은 모래가 불쾌해지고, 오감 발달보다는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게 우선이 될 테니 정서적인 건강 면에서도 그리 좋은 결과는 아닐테지요.


이렇게 우리나라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놀려면 환경이나 양육자들의 제약이 많은 데 비해, 영국 런던 여행 중 그리니치 천문대 근처에서 마주한 놀이터는 너무나 아이들 입장을 고려한? 놀이터라는 점에서 한눈에 반하고, 너무나 부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규모 면에서도 어마어마하고, 신기한 놀이 기구들이 있었던 것도 매력적이었고, 넓은 공원과 숲 속 산책길까지 뒤편에 접해 있고, 오리배를 탈 수 있는 커다란 연못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일반 동네 놀이터에 비해서는 규모가 컸습니다. 그런데 규모가 큰 것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바로 모래놀이터였습니다.


우리나라 모래 놀이터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물 사용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금지 표지가 없더라도 일단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간혹 생수병을 이용해서 화장실에서부터 물을 담아 나르는 모습이 관리자에게 포착되면 못하게 금지당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모래가 젖고, 관리상의 문제라는 황당한 이유로...


그런데 물 사용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ㅎㅎㅎ

펌프를 통해 아이들이 물을 끌어올려 쓸 수 있게 해 놓았을 뿐 아니라, 물길까지 만들어 놓아서 모래와 물의 가소성을 최대로 높여준 곳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하는 모래놀이가 매력적인 이유는 적당한 습기와 항상 쓸 수 있는 물이 옆에 있어서 모래가 더 잘 뭉쳐지고, 상상하고 의도한 것들을 더 잘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이터에서도 물을 이렇게 쓸 수 있다면 모래로 못 만들 것이 없으니, 이런 천국이 또 어디 있으랴 싶었습니다.


당연히 모래와 물까지 섞이니, 옷이 더럽혀지고, 발이 더럽혀지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 하나 더럽다느니, 지지라며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예 신발 벗고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저 부러웠습니다. 당연히 내버려 두는 부모들의 의식이 부러웠고, 이런 놀이터가 당연한 환경이 부러웠습니다.



P20140811_222805184_A69DECC2-3CEC-4A25-8C38-F1786EFF2795.JPG 물과 모래가 만나 마법을 부리는 순간들~


모래놀이는 아동 심리치료의 도구로도 쓰일 만큼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재료입니다. 모래 놀이 치료는 영국의 아동심리 치료자인 Margaret Lowenleld 가 자녀들과 마루 바닥에서 놀잇감을 놓고 놀이하는 모습을 보고 놀이치료의 한 형태로 시작한 심리치료 방법이라고 합니다. 모래 놀이 치료는 모래와 작은 모형들을 매개체로 아동의 무의식과 의식을 연결 지어 치료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합니다. 또한 모래놀이 치료학회 연구에 따르면 집단 모래놀이는 아동들에게 불안을 감소시키고 자아 탄력성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내용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스스로도 모래 놀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외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자가 치유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그네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상의 모습들이 이방인인 제 눈에는 신기하고 낯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강요당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환경, 문화의 고칠 점들이 보이기도 하고, 우리가 가진 환경에서 미흡한 부분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여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극받게 되는 부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또 어느 곳에서는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해지는 장소들도 있겠지만...



장소 정보

Greenwich Park Playground

Greenwich, London SE10 8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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